나는 정식으로 문예 창작 과정을 거친 적이 없는 독학 작가이다. 그냥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쓰기 시작했고, 쓰다 보니 쓴 글이 아까워서 종이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그냥 쓰기만 하려니 뭔가 싱숭생숭한 것도 같기에 몇몇 문예지에 투고해서 글을 싣기도 했다.
나는 창작과 관련한 책을 정확히 두 권 읽었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오규원의 <현대 시작법>이다. 겨우 두 권에 불과한 도서를 밑천으로 그동안 시와 산문을 써왔으니, 책 두 권의 가성비는 상당히 높았던 셈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드디어 세 번째 책을 샀다. 두 권이 시 창작과 관련된 책이었기에, 이번에는 소설 창작에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 골랐다. 고른 것이 로널드 B. 토비아스가 지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이라는 책이다.
글을 쓰면서 <시학>에서 처음 플롯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전에는 몰랐으니 얼마나 무지했던가? 플롯을 입에 달고 지내니까 뭔가 조금 아는 글쟁이 같았다. 실속은 하나도 없는 사이비 문인 처지였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글머리가 막혔다. 소설은 쓰고 싶은데, 이야기를 어떻게 설계하고 전개해야 할지 도무지 발전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플롯에 관한 공부였다. 물론 책 한 권으로 플롯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리저리 도서 검색을 통해 마음이 끌리는 책을 한 권 정했다.
“명작과 졸작의 경계에 플롯이 있다.”
역자의 서문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역시 플롯을 한마디로 정의하지는 않는다.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여전히 눈앞에는 뿌연 안개뿐이었다. 그러다가 책장을 넘겨 가면서, 점점 책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이 책에는 플롯에 대한 오해와 올바른 이해, 그리고 좋은 플롯의 원칙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플롯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자신에게 ‘이 장면(또는 대화, 묘사)은 나의 플롯에 정말 기여하는가?’라고 물어봐야 한다. 대답이 긍정적이면 작업을 계속한다. 그러나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문서 화면을 닫아야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을 얻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글을, 왜? 쓰고 있는지를 잊을 때가 많았는데(물론 운문이든 산문이든 마찬가지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이제야 글을 잘 쓰는 길은 쓴 글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잘 덜어내는 일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나로서는 아주 기초적이고 중요한 원칙을 배웠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앙드레 지드가 지적하기를 예술의 첫째 조건은 불필요한 부분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잘 압축된 작품만이 작고도 좁다란 문을 빠져나갈 수 있다. 헤밍웨이는 우선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좋은 부분을 다 버려야만 이야기가 남는다고 했다. 헤밍웨이가 말한 ‘좋은 부분’이란 작품을 쓴 후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작가 혼자서 사랑하는 부분을 말한다.”
작품에서 묘사도 좋고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라 해도 플롯과 무관하다면 “독자나 관객이 잠시 샛길로 빠져나가도 좋을 만큼 잘 쓴 장면인가?”라고 한 번쯤 물어보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는 스무 가지 플롯을 소개하면서 그 구성 원칙과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플롯의 독창성에 대해 주의를 주고 있다. 독창성이라고 해서 아무도 사용해 본 적 없는 새로운 플롯을 찾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플롯은 인간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만큼, 독창성은 플롯의 창작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플롯을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소설을 구상해 보았다. 책에서 알려주는 전개 방법이 아닌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는 연습을 한 것이다. 물론 스무 가지 유형 중 내가 마음이 끌리는 유형으로 소재를 찾아 플롯을 구성한 후, 책에서 제시하는 플롯의 전개 방향과 비교해 보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습작은 나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처지의 작가 지망생에게 효율적인 창작 시도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보여주는 대표적 플롯을 예시로 들자면, 추구, 모험, 추적, 탈출, 복수, 희생자, 유혹, 변신, 변모, 성숙, 금지된 사랑, 지독한 행위 등이 있다. 혹시라도 플롯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작가님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창작에 있어 정형화된 어떤 이론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수록,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후 자기만의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만의 플롯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다.
책 한 권으로 나의 작가적 소양이 급작스럽게 발전할 리야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만큼은 읽기 전과 후의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