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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고기 Apr 16. 2021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팀장님께

회사에서 제대로 적응 못하고 이리저리 헤메다 2019년 가을에 다시 모교 교학팀 사무원으로 들어와 팀장님을 만났네요. 

 제가 업무시간에 딴짓하고 있을 때 처음 교학팀에 오셔서 후다닥 화면을 바꾸고 인사를 드렸죠. 팀장님의 첫인상은 무서웠어요. 날렵한 눈, 작은키. 팀장님이 저희 상사가 되시면 이제 옴짝달싹 못하고 긴장속에서 일해야겠구나 싶었죠.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팀장님은 제가 사회에서 만난 어른 중에 누구보다 따듯한 분이었는데. 

 제가 제일 말 안듣고 사고뭉치였죠. 민원 제기한 학생이랑 같이 싸우고 전화받는 말투는 불친절해서 몇번이나 학생들이 팀장님한테까지 항의 전화를 하고. 심지어 제가 맡은 학과 교수님하고도 싸우고. 그만두겠다고 엉엉울고 진짜 제가 제일 주접도 많이 부리고 팀장님 속썩였어요. 근데 왜 제대로 화도 안내시고 다 감싸주시고 저보고 남이랑 많이 싸우지만 본성은 순하다고 하셨어요? 화좀 내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팀장님 담배 많이 뺏어 펴서 이제서야 더원 블루 한보루 사드려요. 근데 그걸 빈소에 계신 유가족 분들에게 전하게 하세요. 왜 제가 직접 드리고 싶은데 갑작스럽게 이렇게 가셨나구요, 너무 갑자기... 

밥 먹을 때도 왜 그렇게 죄송하게 먼저 살며시 같이 먹자고 그러셨어요. 그냥 항상 같이 먹자고 하시지. 해산물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갈꺼면 그냥가지 맨날 투덜투덜 대면서 가서 죄송해요. 투덜투덜대는 저 그냥 버리고 가시지 왜 달래면서 다른 메뉴 먹겠다면서 데리고 가셨어요. 

제가 좋아하는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냥 팀장님 드시고 싶은거 드시지. KFC 치킨 좋아히시지도 않으면서 저 떄문에 느끼한거 잔뜩 드시고... 

 점심 때 말 없이 계실 때 혼자 걸어가실 때... 말 없이 계셔도 혼자 걸어가셔도 괜찮은 줄 알고 외면했던거 죄송해요. 교학팀 분리된 사무실 팀장님 의자에서 하루가 혼자 무료하고 지루하셨을 텐데 업무적인 거 아니면 안 찾아간 거 죄송해요. 

 저희 아버지 알콜 중독이라고 걱정해주시면서 화학주가 얼마나 나쁜지 얘기해주실 떄 예전에 하던 이야기 또 하신다고 제대로 안들었던 것도 죄송해요. 저희 아버지 지금은 괜찮아지셨어요. 

 담배 끊었다고 혼자 담배피실 때 기다려달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핑계 만들어서 먼저 올라간거 죄송해요. 

 많이 아프실 때 병원 꼭 가시라고 말씀드리지 못한거,  병문안 간다고 주소 한 번 더 여쭤보지 않은 거 죄송해요. 아프시면서 출근하면 새로 생긴 돈까스 집 꼭 가자는 말은 왜 하셨어요... 죄송해요.

 왜 승진 스트레스 그렇게 많이 받으셨는데 아무 내색도 안하셨어요. 그렇게 힘드시면 저희한테 털어놓으셔도 되잖아요. 왜 그런 서류는 꼭 감춰놓고 혼자 끙끙 앓으셨어요... 죄송해요. 그렇게 혼자만 앓고 계시게 해서.

 팀장님 사비로 까지 저희 밥 사주실 때, 디저트 사주실 떄 왜 한번도 학장님처럼 이번에는 너희들이 사냐? 000선생이 사는거 아니야? 이런 말씀도 안하셨어요. 왜 섭섭하다고 안하셨어요? 이제서야 제가 너무 환멸스러워요. 팀장님은 정규직이고 나는 계약직이고 팀장님은 나보다 월급 더 많으니까 점점 당연스럽게 생각했어요. 죄송해요. 

3일 동안 연락 안되셔도 워낙 미스테리한 팀장님이시니까... 주소 여쭤보면 한반도 어딘가라고 말씀하셨으니까 괜찮은 줄 알았어요. 팀장님 잘 계시는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저 원망해주세요. 많이 원망해주세요. 목소리 안좋으실 때 어떻게든 병원 가시라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죄송해요...

퇴직하면 파리 시골집에서 사실꺼라고 하셨죠? 꼭 그곳보다 좋은 곳에서, 거기서는 외롭지 않게 행복하세요. 이번생에 안하셨으니까 웬만하면 결혼도 꼭 하세요. 몇 년에 한번씩 새 옷사지 말고 예쁜 옷도 사시고 저한테 자랑하셨던 워커 같은 신발도 몇 켤레 사세요. 좋아하는 해물도 실컷 드시고... 공정함과 정의가 가득한 곳에서 아무 갈등 없이 마음 편히 사세요. 

저한테 늘 따듯하게 인간적으로 잘해주셔서 감사해요. 제일 사고뭉치였고 실수투성이 어리버리였지만 팀장님은 왜 항상 제 좋은 면만 보려고 하셨어요?. 저는 팀장님한테 아무것도 해드린게 없는데.  너무 죄송한게 많아서 죄송해요. 저는 팀장님 점점 제가 편할 때 이용만 했었어요. 아프실 때 휴가 당일날 올리고 아프실 때 빨리 결재해달라고 재촉하고, 제 생일 말씀드리면서 팀장님 생일은 한번도 챙길 생각 못하고. 2월 25일 목요일이셨네요. 

팀장님, 절대 외롭지 마세요. 제가 드린 담배 한보루는 천천히 피시고 담배는 끊으세요. 파리 시골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곳에서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들으시면서 맛있는거 드시면서 그렇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종교가 없지만 지금은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팀장님. 나중에 뵐 수 있으면 꼭 다시 뵈어요. 속만 썩이고잘해드린게 하나도 없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편안하세요. 제 가슴속에서 팀장님 계속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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