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남편을 바꿔요

아들: 에피소드 1

by 정루시아

결혼기념일은 의미를 크게 부여하자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기념일이다. 결혼하여 십년,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내가 안정된 직장을 얹기 위해, 힘들고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결혼기념일은 지나치기 일쑤였다. 살이가 바쁘고 정신 없어 그날의 의미를 크게도 작게도 잡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10년이 지난 후에서야 결혼기념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맛은 좋으나 가격이 비싸 일상처럼 쉽게 갈 수 없는 식당들을 찾아가곤 했다. 그렇게 결혼기념일을 보내다, 결혼 20주년에는 장장 20년을,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화목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에, 제법 성장한 아이들을 데리고 만족에 겨워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즈음이었을까? 내가 “25년에는 결혼생활 총괄평가를 하자”고 한듯하다. “아이들도 그때면 어느 정도 성장하였을 테고, 우리도 각자의 삶에 대한 바람이 분명할 터”이니 말이다.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나의 말에, 남편은 “에이 뭘, 25년은 너무 짧어, 하려면 30년에 총괄평가를 하지” 한다. “아니, 무슨 30년, 강산이 세 번 바뀐 후? 다 늙어서 무슨 기운으로 총괄평가! 한 살이라도 젊어서 해야지, 안돼, 여하간, 25년인 걸로” 하며 호탕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의 시원한 웃음에, 남편도 활짝 웃으며 “그런가?” 했다.


제 작년 결혼기념일은 23주년 차였다.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딸아이를 빼고, 아들과 남편, 나, 이렇게 셋이서 저녁 식사를 하며 결혼기념일을 보냈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아빠만큼 키도 크고 덩치도 자라 얼핏 보면 대학생 같지만, 얼굴은 딱 중딩이다. 고기를 좋아하고, 게임과 일본만화를 좋아하며, 말이 많지 않고 짧으며, 좀 근사한 레스토랑을 좋아하고, 신형 핸드폰과 컴퓨터에 열광하는 중딩! 그래도 엄마인 내겐, 이것저것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며, 늘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생각해주는 아들과의 대화는 즐겁다.

셋이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고선, 아들의 하루가 어땠냐고 물으니, “뭐, 그냥 그렇죠” 한다.


“수업 시간에 얘들이 잘 듣니?”

“거의 자요, 특히 수학 시간에 많이 자요.”

“너는?”

“저는 듣죠.”

“그렇구나. 참 너희들은 좋을 때다.”

“뭐가요?”

“얼마나 좋니! 젊고…”

“엄마도 젊어요.”

참 예쁜 맘이고, 예쁜 말이다. 남편이 “당신 와인 한잔할래?” 하기에, 나는 “그럴까? 그냥 당신이 아무거나… 시켜줘.” 하며, 레스토랑 정면에 펼쳐진 은파 호수를 눈에 담으며 얕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남편은 와인을 시키고 난 깊은숨을 쉬며, 조용히 “여보 23년이네” 했다. 남편이 “뭐가?” 하며 핸드폰에 눈을 붙이고 대답하여, “아니 결혼한 지 벌써 23년이라고, 참 많이도 살았네.” 했더니, 그제서야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며 “무슨 소리, 난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10년도 안 산 것 같아!”한다. “아들이 17살인데 무슨 소리! 딸이 23살이고. 참 오래 살았지.” 남편은 딸아이의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나 싶어 혼잣말로 “23살이던가?” 한다.


와인 한 모금에 호수 속 물 알갱이 같은 쓸쓸함이 마음속에 모여들어,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부러움이 가득 든 목소리로 “넌 참 좋겠다.” 했다.

“뭐가요?”

“넌 네가 하고 싶은 게 뭐든지 하면 되잖아? 대학도 가고 싶은 곳 가고, 전공도 그렇고, 여자 친구도 맘껏 사귀고, 아 여하간 원하는 직장도 구하고 말이야.”

아들은 현실감 없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오로지 너만의 인생을 살, 엄청난 시간이 기다리고,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말야”

스테이크를 이제 막 썰어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아들은 오물쪼물 고기를 씹으며 무심한 듯 나를 바라봤다.

“그니까, 네가 하는 모든 일이 새롭고 신기하고 설레는 일이지 않겠어? 아들.. 생각해봐. 엄마가 이제 직장을 새로 잡겠니, 애를 다시 낳겠니, 집을 막 바꾸겠니, 연예를 막 하겠니,,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냥 만들어진 것들 속에 있잖아… 뭘 바꿀 것도 없고, 네가 너무 부럽다”하니, 아들은 “그런가요? 엄마는 엄마 일을 재미있게 하잖아요.” 한다.

“그렇긴 하지. 그래도 개척할 것이 너무 많은 네가 너무 부럽다 아들!”

와인을 함께 마시던 남편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엄만, 네 나이 때가 가장 좋다고 하는데, 난 지금이 더 좋네. 아휴!, 내가 네 나이 때는 그냥 참 모호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좋냐, 엄마랑 이렇게 맛난 밥도 먹고”, 하기에 나는 남편을 쏘아보며, “당신은 중학교 시절이 재미없었나 보내, 내 말은 그 시절이 마냥 좋다는 게 아니라 꿈이 있고, 그냥 그 무한한 가능성이 좋다는 거지 뭐” 했다.

“그런가요?” 아들은 진지하게 나를 보며 말한다.

“엄마, 남편을 바꿔요. 그럼”

남편과 나는 스파게티를 포크로 잡아 수저에 돌돌 말다 말고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남편의 황소만 해진 눈이 내 눈에 가득 들어와 순간 웃음이 폭발했다.

“뭐라고 아들?”

“아니 바꿀 게 없고 새로운 것이 없다면서요, 엄마 말대로 자식을 바꾸기도, 힘들게 자리 잡은 엄마 직업을 바꾸기도, 집을 지은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럼 남편을 바꿔보세요. 나야, 뭐. 아빠는 그냥 아빠니까? 변할 게 없고” 한다, 난 웃음이 나와 그저 웃고, 남편은 놀람과 함께 화가 난 얼굴로 ‘이놈 봐라’ 하며 아들을 쳐다본다. 나이프로 고기를 잘게 썰면서 아들은 에둘러 모른 척하며 호수와 내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곤 그저 잔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게, 아들은 바뀌는 게 없는데, 엄마는 크게 변할 수 있네. 인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