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00에 힘을 주셔야죠

아들: 에피소드 2

by 정루시아

군산에는 호수가 많다. 논농사의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호수들! 이젠 사람들의 산책로로 즐거움을 주고 있다. 군산, 월명, 은파 등 대표적인 세 개의 호수가 모두 아름다운데, 남편과 나는 세 개의 호수를 번갈아 가며 산책을 하곤 한다. 호수는 그 전경과 함께 그곳을 살아있게 하는 사람들의 색깔로 다르다. 한 바퀴를 돌아 나오는데 세 시간가량 걸리는 군산호수는 대나무 숲, 소나무 숲, 아슬아슬 호수 경사로를 지나 굽이굽이 호수의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어 큰맘 먹고 가곤 한다.


빽빽이 들어찬 대나무 숲속, 좁은 길을 따라 화강석 원형 디딤돌을 밟을 땐 나도 모르게 군산의 근대사가 떠오른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 느낌이 일본풍 같달까? 그래서 일제강점기 쌀을 긁어가던 일본사람들이 점심 도시락을 싸서 이곳을 총총히 걸어갔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도 물어 본 적 없고, 그 근원을 찾아본 적도 없지만 말이다.


산행하듯 나서는 군산호수와는 달리 은파호수는 늘 관광객이 찾는 호수라 선글라스에 커피 홀더를 갖고, 사람 구경을 할 요량으로 산책하러 나간다. 군산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영화동의 근대문화유산을 돌고, 은파호수의 물빛다리를 걸으며 아이들과 부담 없이 솜사탕을 즐기며, 탁 트인 호수 전경을 감상하기 때문이다. 월명호수는 시원스레 서해안을 볼 수 있고, 능선과 호숫가를 넘나들며 다양한 산책로를 선택할 수 있어 군산 시민들이 늘 찾는 호수다. 산 중턱을 걷다 언뜻언뜻 햇볕을 품은 물 알갱이가 보이는 월명호수는 다른 호수보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이 많이 찾는 곳인데, 남편과 나는 심신이 지치고 피곤해 살짝 뛰듯이 빠르게 걷고 싶을 때 찾아간다. 호수에 어찌 나이를 먹일까 하지만, 은파호수는 아동청소년과 같은 생기가 가득한 젊은 호수라면, 군산호수는 품이 넓고 깊어 속을 알 수 없는 장년의 호수로, 월명호수는 잔잔하지만 숨겨진 편안함과 위로를 베푸는 노년 같은 호수이다. 그건 월명호수가 유독 나이 드신 어르신이 편안하게 찾고 머물러서 일 게다.


월명호수 곳곳의 편백 나무숲 평상에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나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있어 산책하다 보면 나이 듦, 노년의 삶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월명호수를 산책할 땐 그저 경계가 풀어지는 듯하다. 간간이 젊은 사람들이 조깅하고, 나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걸어가도, 세 호수 중 가장 평균연령이 높아 그저 몸과 맘이 풀어진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다른 호수보다 월명호수를 걸을 때 유독 방귀를 꾼다. 사람들이 걷고 있는 사이에 한 번도 아니고 연거푸어 방귀를 뀔 때면 풀어진 맘이 깜짝 놀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눈을 크게 뜬다. 아이고 좀 참지! 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짝 웃고 있는 남편은 왠 유난이냐는 투다.

“아니 체통을 지켜야지 여기가 안방도 아니고”

“참으면 안 좋아”

“그래도 사람들이 있는데, 당신하고 떨어져 걸을래, 창피해서” 남편은 손을 꽉 잡고 아이같이 웃는다.

40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런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 50대에 들어서선 가끔씩 방귀를 꾸더니 그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 한번은 어찌나 요란하던지 난감함과 함께 무안함이 컸다. 주말에 모처럼 집에 온 딸과 기숙사에서 나온 아들에게 월명호수 산책을 말하니, “아빠 그건 좀 심했네” 하며 딸이 웃는다.

“몸에 안 좋아 참으면” 남편이 머쓱한 듯 말하고, 딸은 그래도 “아빠, 엄마랑 같이 걷는데 좀 그렇지” 하며 웃는다.

아들은 얼굴이 잠시 굳더니 “아빠! 항문에 힘을 주셔야죠” 한다.

너무도 엄한 얼굴로 말해 웃음보가 빵 터졌다. 아들은 그 와중에도 웃지 않고 있다. 남편은 크게 웃으면서도 아들과 나를 번갈아 보고는 항문에 힘을 주는 척한다.

“항문에 힘! 음”


자연스런 늙어 감일까? 경계의 허물기일까? 정말 힘을 꽉 주고 사는 삶으로부터 힘을 푸는 삶으로의 전환일까? 늙어가는 우리의 삶을, 힘이 빠져가는 우리의 괄약근을 10 후반,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할까? 힘이 빠져 저도 모르게 나오는 방귀를 이제는 그저 삶으로부터 힘을 푸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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