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유전자의 자기 패배 선언이죠

아들 : 에피소드 3

by 정루시아

고등학생 아들은 토요일 오전 7시 40분 학교에서 집으로 온다. 익산에서 군산까지 오는 통학 버스가 있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들을 데리러 간다. 토요일 아침,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작은 캐리어와 큰 책가방을 매고 성큼 주차장으로 걸어오는 아들은 반갑다. 토요일 아침 아들의 입가엔 반가움의 미소가 있다. 말이 많지 않은 아들도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선 이것저것 한 주일 있었던 얘기를 펼친다. 학교에 막 들어가 적응을 하던 일학년 때는, 친구가 백만 원 가까운 비싼 이어폰을 잃어버린 이야기, 지갑을 포함한 소소한 도난 사건으로 학생과 선생님 모두 신경이 날까롭다는 얘기를 약간은 흥분하여 하였다. “너는? 뭐 잃어버린 것 없고?” 했더니 “제가 돈이 없어서요!” 하며 웃는다. 어떤 날은 “돈 벌기 쉽데요” 하기에, “무슨 소리야?” 하니, 어떤 “친구는 스포츠 토토 같은 내기를 해서 돈을 벌고”, 또 어떤 아이는 “비트코인을 사서 돈을 벌었다”며, 요즘 남자 고등학생들의 자금운용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시험을 보고 난 후에는 “시험을 보는 데 엄청 떨렸어요, 그냥 성적은 비슷하게 나왔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해, “그러니” 하고 “힘들었구나, 잘했다”, 나도 무심한 듯 운전대를 잡고 말했다. 가끔 수업에 대해 물어보면, “정말 졸린 수업이 있어요. 참으려고 ‘정말’ 노력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한다.

“다른 애들은?”,

“다 자죠!”

“그럼 선생님이 안 깨워?”

“아니, 선생님이 재우려고 하는 건 아닌데, 너무 졸려요!”

“너는?”

“노력은 하죠, 근데, 수업을 듣다 보면 그냥 눈이 감겨요”라고 대답해 함께 웃으며, “그래도 집중해야지!” 하니, “그래야지요”한다. 또 어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교과목 내용보단 자기 얘기가 반 이상”이란 얘기며, “영어 선생님은 정말 잘 가르친다”라고 감탄을 하기도 한다.


토요일에 이런저런 얘기를 잘하는 아들도, 일요일 저녁 짐을 싸들고 학교로 들어갈 땐 피곤해한다. 집을 출발하면, 한 5분 앉아 있다 의자를 천천히 눕히고 스르르 잠을 잔다. “군산에 있는 일반 고등학교를 가라” 할 때 아들이 익산에 있는 자율형 사립고로 간다 하였기에, 아들은 누구를 원망할 처지도 아니고, 제법 잘 적응하여 감사할 뿐이다. 2학년 봄 아들을 데려다주며, “아들, 너는 나중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겠니?” 하고 물었더니 “글쎄요” 한다. “아니 요즘 정책적으로 지원을 한다고 난리잖니!”, 아들은 살짝 누우며 “그게 지원한다고 쉽게 되나요?”한다. “엄만 네가 나중에 너 닮은 애를 낳아 할머니, 할아버지랑 여행 갔듯 함께 여행도 가고, 캠핑도 하고, 그러면 좋을 듯한데”, 아들은 “생각 안 해봤는데요” 한다. 내가 “그래? 하여간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도 마다 않고, 혼자 살고, 결혼해도 애는 안 낳고 한다’ 해서, 너는 어떤가 싶어서”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근데 왜 그런 것 같니? 엄만 너희들이 순해 키우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그거야 엄마시대니까 그렇죠!”

“엄마 시대라서?”

“그럼요, 지금은 모든 게 경쟁이고 어렵잖아요,

“엄마 때도 경쟁은 늘 있었어”

“엄마가 예전에 그랬잖아요. 인간이던 동물이던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를 전달하려는 기본 욕구가 있다고, 그래서 그 욕구를 이용해 자신의 DNA를 자식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그랬지, 그게 왜?”

“그러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애를 안 낳는 것은 자신의 DNA를 이 시대에 남기기를 스스로 포기한 거죠. 그건 유전자의 자기 패배 선언이죠, 스스로의 패배를 사회적으로 인정한!”, 아들은 달리는 차 안에서 지나가는 나무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그걸 뭐라 할 수 없죠” 한다.

“그런가?”

나는 DNA이의 포기, 패배란 단어에 순간 멈칫했다. 아들은 이제 눈을 감고 말한다. “그럼요”. 몇 천 년을 유지해온 본능을 거부하는 세대란 말이 무서웠다.

“무섭다 아들! 본능을 무시한 패배의 선언이라!”

아들은 마저 의자를 누이곤 이제 10분이면 도착하는 학교를 기다린다.


“아들 다 왔다”

아들은 소리 없이 일어나 무거운 캐리어를 꺼내곤 잠시 서서 날 쳐다본다. 늘 가벼운 포옹과 볼 뽀뽀를 하는 나를 기다리며, “조심이 가세요” 한다. 구부정하게 어깨를 숙이는 아들 얼굴을 보며, ‘세대가 어쩜 이리 각박할까’ 한다. 유전과 본능을 포기하여 살아가는 선배들을 보고, 그 세대의 한 중앙에 서서 대입 경쟁을 준비하는 아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들어왔다. “아들 힘내고, 잘 지내고, 다음 주에 보자,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연락하고”

“네, 가세요” 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들은 기숙사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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