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달리기

땀이 비 오듯... 그래도 좋다!

by 정루시아

7월 31일 토요일 아침. 태양이 쨍하다. 어쩌면 그리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란지... 아침 열기에 집은 열기구처럼 두둥실 떠오를 듯하다. 침대 끝머리에 앉아 무심히 커피를 마시던 남편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 오늘도 찌겠다. 오늘 뭐하나? 여보! 은파호수 한 바퀴 뛸까? 딱히 할 일도 없는데 한번 달려?

덥지 않겠어? 그냥 앉아 있어도 후덥지근 한데.... 달리다 죽는 거 아냐?

걱정 마~. 사람 그리 쉽게 안 죽어. 가자 살살 달려보자.

오래간만에 달려봐? 알았어. 그럼 기다려 옷 좀 입게.


이층 안방 창문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잠시 봤다. 파란 하늘이 뜨겁다. 남편은 TV 화면 가득 건강하고 탄탄해 보이는 4명의 비치 발리볼 여 선수들을 보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쉴 새 없이 공을 토스하고 스파이크를 때리는 멋진 여 선수들을 보니 숨이 찼다. 그 열기가 브라운관을 넘어 내게 들어붙는 듯했다. 보기만도 더웠지만 샘이 났다. 그들의 의지와 날쌤과 젊음이 그리 부러울 수 없었다. 아주 잠깐 나는 한참 단물을 다 빼먹고 아무 데나 뱉어버린, 지나가는 행인들 발에 밟혀 인도에 쩍 하니 넙데데하게 뭉그러진 컴 딱지처럼 느껴졌다. 나이 듦은 젊음을 보기만 해도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가 보다. 뜨거운 모래판서 양손바닥으로도 가리기 어려운 작은 스포츠 비키니를 입고 여 선수들은 공을 향해 죽자고 뛰며 몸을 날렸다.


감색 긴팔 티와 남색 반바지를 입은 남편은 미동도 않고 화면에 빨려 들 듯 경기를 보고 있다. 부산하게 옷을 바꿔 입는 내게 남편은 무심한 듯 말을 던졌다.


모래밭에서 걷기도 어려운데 저리 뛰어다니니 정말 대단해! 체력 소모가..... 그거 알아? 비치 발리볼 선수들은 복장 규정이 있다네. 반바지 스타일은 벌금을 내야 한다네. 저렇게 짧은 팬티 스타일을 입어야 된대. 왜 그러는지 몰라. 맘대로 입게 하지.


옷을 갈아입으며 그럼 중동의 여 선수들은 참석이 아예 불가능하겠구나 생각하다 아니 아예 그런 스포츠는 시도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모래판에서 공을 주고받는 재미난 운동을 그들은 복장 때문에 애당초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걸 생각하니 씁쓸했다. 화면 가득 여선수들의 팽팽한 복근과 엉덩이 모습이 지나갔다. 남편은 작년 가을 나와 은파호수를 뛰러 가자 할 때 너무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게 아니냐며 내게 레깅스 팬츠를 입고 싶거든 위에 넉넉한 길이와 품의 티를 권했었다. 운동을 할 때는 누가 보는가를 생각지 말고 운동효율에 집중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 넉넉한 품의 긴 티를 입고 나갔더랬다.


운동복이 신체에 밀착될 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동작의 정확성을 위해, 여유로운 옷이 동작을 방해하고 옷이 피부를 지탱하지 않아 근피로도를 증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적당한 의복압은 근육을 보호하고 근 피로도를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2014년 미국 연수기간 동네 테니스장과 가까운 산책로를 운동 삶아 돌아다녀보면 여자든 남자든 정말 편한 복장으로 돌아다니길래 나도 한여름엔 스포츠 브라에 밀착 반바지 레깅스를 입고 살랑살랑 뛰어다녔었다. 온 가족이 동네 테니스장에서 공을 치기보단 줍기에 바빴던 때도 스포츠 브라에 반바지 레깅스를 입었는데 누구 하나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없어 편안하게 스포츠를 즐겼더랬다. 2015년 여름 막상 군산에 돌아와 은파호수를 뛰자 할 때 남편은 긴 레깅스 바지와 밀착된 상의를 입고 안방을 나서는 내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너무 눈에 띄지 않겠어? 여긴 미국이 아니잖아. 그냥 몸매가 덜 보이는 옷을 입지!


남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누가 나만 쳐다보고 있겠어? 살살 뛰던 걷던 운동하기 편한 복장으로 나가는데 왜? 눈에 거슬려?


미국 생활의 연장선처럼 자연스럽게 말한 내게 남편은 조금은 침울하게 말했었다.


아니~ 내 눈에는 예쁘고 좋지만 어디 한국 남자들이 그래? 위아래로 훑어볼게 뻔하니까? 그냥 편하게 눈에 띄지 않게 입는 게 좋지 않겠냐는 거지!


남편 말이 일리 있었다. 아직도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한 남성들이 하는 말들이나 기사를 보면 여자가 너무 짧은 치마를 입어서, 가슴이 너무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어서 자신들이 도발당했다 말하니 말이다. 이런 생각은 남성 우월적 시각에서 남성의 욕구는 당연한데 남성을 자극한 여성이 결국 문제라는 즉, 가해자를 피해자에 의해 시각적 피해를 입은 듯 교묘히 시각을 바꾸는 일이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도 일어나니.... 자신의 욕구 조절 실패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자세는 너무도 일상적이고 다반사다. 정숙성과 관련된 자물쇠를 여성에게 끝없이 채우기 위한 논조들은 아직도 살아있다. 여성과 관련된 사안에서 자신들의 탓보다는 여성들의 탓으로 수많은 면죄부를 받았던 세월과 문화가 아직도 저변에 있는 것을 보면 남편 말을 무조건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는 옷을 바꿔 입었다. 남편 말이 옳아서라기 보다 현실적 수용이었다. 한국이란 사회가 나 자신보다 남들에 비친 모습, 남들의 말들에 조심하는 사회니 말이다. 조깅복 하나도 잠시 생각을 해 입어야 하는 사회임을 잠시 잊고 살았더랬다.


그게 벌써 6년 전 일이다. 요즘은 남편도 무슨 옷을 입던 상관 안 한다. 그 6년의 기간 은파호수를 걸으며 나이가 어릴수록 몸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의복을 자유롭게 입고 다니는 것을 함께 보았으니 말이다. 최근엔 30-40십대 여성들도 레깅스 스타일에 동참하고 심지어 50대 아주머니들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레깅스 패션이 보편화된 것은 동네 여기저기 있는 요가센터의 영향이 크다. 한번 탄성력과 밀착력이 높은 요가 복을 입어본 여성이라면 어떤 동작도 구속치 않고 내 몸을 받쳐주는 의복에 맘을 홀딱 빼앗겨 버리니 말이다. 편안한 탄성 밀착 의복을 입어본 사람이라면 불편했던 의복과 편안하고 기능적인 의복의 비밀을 단박에 이해한다.


TV에서 죽자고 뛰어다니던 비치 발리팀 선수들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경기를 하고 있다.


몸매가 드러나는 레깅스와 밀착 티셔츠를 입은 나를 남편이 쳐다봤다. 모래판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여성들에 비해 난 이집트 미라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남편은 옅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얼른 가서 뛰자. 날 더 더워지기 전에. 아직 바람은 선선하네.


KakaoTalk_20210802_152752614.jpg


남편과 함께 뛰니 뛸만했다. 사실. 몸매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뛰지 말라고 말하던 6년 전 남편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어떤 옷을 입던 잘 뛸 수만 있다면, 함께 땡볕에 목이 타고 숨이 턱턱 막혀도 뛰고 싶다. 한번 사는 인생 땡볕이면 어떻고 우중이면 어떻고 밤이면 어떻겠나! 무얼 입고 뛰던, 어떤 날에 뛰던, 뛸 수 있을 때 실컷 뛰는 게 살만한 인생 아닌가?


땀이 비 오듯 한다. 얼굴이 달아올라 빨간 사과 같다. 그래도 좋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