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 수연, 덕희, 성미, 숙이
소도시에 살던 주미, 수연, 덕희, 성미, 숙이는 부모 모두가 성당에 다녔기에, 사는 환경이 달라도 일요일 오전이면 오전 어린이 미사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만나기 좋든 싫든, 그 지역을 떠나기 전까지 다섯 아이들은 주말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마다 함께했다. 작은 읍에는 성당이 하나뿐이었고 인생에선 언제나 선택할 수 없는 시간, 상황, 관계들이 있고 그 소녀들의 만남이 그랬다.
일요일 아침 9시 미사가 끝나면 다섯 소녀는 수녀님이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 그림책에 색칠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제자들이 탄 배를 향해 우아하게 바다 위를 걸어가는 예수님, 물고기 몇 마리와 빵을 사람에게 나눠주는 예수님, 아픈 병자를 치료하는 예수님 등, 굵은 선으로 윤곽만 그려진 그림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색을 칠했다.
11시가 되면 아이들은 성당 마당으로 뛰어나가 공깃돌 놀이를 했다. 어른 미사가 끝나는 11시 30분까지 아이들은 성모 마리아가 지켜보는 성당 마당 한 켠에서 동그랗게 모여 앉아 놀았다.
부잣집 딸인 주미는 좋은 공깃돌을 갖고 있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공깃돌을 던지면 찰싹 바다 소리가 났다. 촉감도 야무지고, 손에 쥘 때마다 찰진 느낌이 들었다. 특히 작은 손등 위에서 공중으로 올라간 공깃돌을 손바닥으로 잡아챌 때면, 다섯 개의 공깃돌 속에서 파도 소리가 났다.
공깃돌이 날아오르면 다섯 소녀는 숨을 죽이고 그것을 바라봤다. 열 개의 까만 눈동자 옆으로 구슬 같은 땀방울이 작은 뺨을 타고 흘렀다. 한낮으로 향하던 성당 마당은 젊고 싱그러웠다.
덕희는 유독 공깃돌 놀이를 잘했다. 작은 체구에 작은 손이었지만, 손놀림이 야무졌다. 가끔 덕희가 공깃돌을 살짝 건드린 것 같다고 성미가 벌떡 일어나 따지면, 덕희는 손에 공깃돌을 움켜쥐곤 “아니거든!” 하고 맞섰다.
숙이와 수연은 땅바닥에서 작은 돌을 모아 놀다가 시큰둥하게 두 아이를 바라봤고, 주미가 최종 결정을 내렸다. 공깃돌의 주인이기도 했지만, 주미는 욕심이라곤 없는 아이였고 언제나 차분하게 놀이를 지켜보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주미를 바라보면, 주미는 무심한 표정으로 짧게 말했다.
“손이 닿은 것 같아.”
덕희는 주미가 그렇게 말하면 “닿지 않았어!” 하고 우기다가도 순순히 공깃돌을 내려놓았다.
“그래? 그럼 뭐, 할 수 없지.”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극성맞은 덕희가 차분한 주미에게는 꼼짝 못 했다.
성미는 빨간 고무 대야를 팔던 집 딸로, 까칠한 성격에 따지기를 좋아했다. 재잘거리며 놀기는 좋아했지만 집안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숙이는 ‘놀이는 그냥 되는 대로 되라’는 성격으로, 공깃돌이든, 땅따 먹기든, 고무줄 놀이든 점수는 늘 뒤처졌지만 잘사는 집의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무엇보다 욕심이 없었다.
수연은 예쁘장한 얼굴에 공부도 잘했지만, 무엇보다 발랄한 성격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수연처럼 잘 웃는 아이도 드물었다. 해맑은 얼굴로 까르르 웃을 때면, 마치 작은 앵두가 툭툭 떨어지는 것 같아 어른들은 유독 수연을 예뻐했다.
다섯 아이는 성격이 모두 달랐지만, 성당에서 만난 소녀들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주말마다 함께 놀았다. 더운 여름 성경학교 때도, 추운 성탄절 행사 때도 한 명도 빠지는 일이 없었다. 부모들의 사는 형편은 달랐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세계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