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했지?
주미는 건조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영양 크림과 핸드크림을 얼굴과 손에 덧발랐지만, 그때뿐이었다. 종일 기운이 없었다. 무슨 정신으로 집안일을 하는지 껍데기처럼 집 안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가끔 낮잠을 자고 나면 식은땀을 흘리며 깼다.
꿈속에서 주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한 액체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갔다. 죽기 살기로 팔을 휘저었지만, 결국 그 액체를 입안 가득 들이켰고, 알 수 없는 메스꺼움에 잠에서 깼다. 아랫배는 얼음처럼 차고, 가슴은 헛헛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엔 특별한 이상이 없다며, 배를 따뜻하게 해주라고 조언했다.
화창한 주말, 대학생인 딸이 도서관에 간다며 주미 얼굴을 보며 말을 던졌다.
“엄마! 그냥 집에만 있어서 기운이 없는 거 아녀요? 얼굴에 핏기도 없고. 날도 좋은데 좀 나가세요. 뭐, 취미활동 같은 거 하시고요!”
딸은 주미가 정성껏 빨아 놓은 흰 운동화를 신고,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듯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그 뒷모습이 부러웠다. 주미의 하루는 언제나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른 날들의 연속이었다.
가끔 아들도 주미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며 말을 보탰다.
“엄마, 하루 종일 집에 계시면 안 답답해요? 요즘 걷는 사람들 많던데요. 산책이라도 하세요.”
주미를 빼고 가족 모두가 힘이 넘쳤다. 알 수 없었다. 진액이 다 빠져나간 듯, 몸은 허하고 아랫배는 싸늘했다.
불을 붙이면 한순간에 타버릴 듯, 몸 전체가 메말라 있었다.
남편이 상무로 승진해 직원들과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날, 그는 충혈된 눈으로 넥타이를 풀며 크게 말했다.
“당신, 이제 고생 끝났어. 하고 싶은 거 다 해. 갖고 싶은 거 있음 말만 해.”
주미는 메마른 얼굴로 남편 곁으로 다가가, 그가 벗어 놓은 와이셔츠와 바지를 챙기며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당신이 고생했지.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남편의 두툼한 손이 주미 손을 잡았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남편은, 주미 손등에 얼굴을 비비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술 냄새에 주미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고, 손이 이렇게 마르고 건조하네. 내가 고생시켜서 그렇지~. 고생했네, 정말. 윤기는 다 어디 가고...”
주미는 남편의 옷가지를 옷걸이에 걸며, ‘건조해서’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렇게 핸드크림을 바르고 또 발랐지만… 주미의 아랫배와 가슴엔 찬 바람이 지나갔다.
남편은 잦은 회식과 많은 일에도 얼굴과 몸에 윤기가 흘렀다. 30년 넘게 헬스를 해온 남편이었다. 결혼 당시엔 빼빼 말랐지만, 30년이 지나자 근육도 붙고 살집도 불어 다부진 중년 남자가 되어 있었다. 꾸준한 운동과 식단 조절은 기본, 모든 생활이 자기 목표에 맞춰져 있었다. 남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눈에 띄지 않게 새 옷을 샀고, 항상 ‘지금 주어진 자리’와 ‘앞으로 올라갈 자리’ 사이 그 어딘가에 딱 맞는 모습을 갖췄다. 타고난 비즈니스맨이었다. 승진할 때마다 “다 당신 덕이지”라는 말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주미에게 거울처럼 반사되어 튕겨 나갔다. 기쁘긴 했지만, 주미는 늘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뭘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