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결혼한 지 3년이 지나고, 아들까지 일을 찾아 홍콩으로 간 후에야, 주미는 늘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날도 주미는 집 앞 호수길을 걷다가, 햇살 좋은 벤치에 앉아 우두커니 호수를 바라봤다. 어쩌면 그리도 반짝이는지, 눈이 시렸다.
문득 눈물이 났다.
햇살 가득한 호수에 잔물결이 일자, 작은 물알갱이들이 촐싹대며 꿈틀대다, 물아지랑이가 춤을 추듯 호수 위를 들썩이며 일어났다. 할머니와 산책 나온 여자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주미 앞을 지나갔다.
그때 문득, 성당 마당과 공깃돌 놀이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주미는 친구 수연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 중이었다. 주미는 한참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수연의 카톡을 찾아 메시지를 남겼다.
“수연아, 잘 지내니? 나 주미야. 시간 되면 연락 줘.”
거의 10여년을 못 만난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간단한 메시지였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수연이 전화를 걸어왔다.
“야~~ 주미! 정말 오랜만이다! 반갑다. 어떻게 연락할 생각을 했어?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잘 지냈지?”
통통 튀는 수연의 목소리에, 주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넌 여전하구나. 여전히 활력이 넘치네.” 주미가 건조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제 늙었지! 근데 지금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오래 통화는 어렵고, 이번 주 토요일 점심에 얘들 보기로 했거든. 기억하지? 숙이랑, 성미, 덕희! 우리는 1년에 두 번은 꼭 만나고 있는데~. 너만 괜찮으면 같이 보자. 다들 너 보고 싶어 했어. 좀… 그런가?”
수연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주미는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당연히 기억하지. 그런데... 내가 가도 되나?”
“그럼! 그럼~ 야, 우리가 맨날 너희 집에서 놀았는데! 너희 집 큰 마당에서 말이야. 너만 괜찮으면 얼마나 좋냐?. 내가 문자 넣을 게. 함께 보자, 옛날처럼!”
수연은 어릴 때처럼 딱 부러지게 말했다. 주미는 느릿하게 말을 받았다.
“그래, 그러자. 그럼 토요일에 보자.”
“정말 반갑다, 주미야. 내가 장소랑 시간 문자로 보낼 게. 얘들도 깜짝 놀라겠네. 드디어 모두 모이다니!”
수연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통화는 몇 분 되지 않았지만, 그 몇 분 만에 10여년 넘게 보지 못한 친구들의 모습이 주미 앞에 달려왔다.
수연과 통화를 끝낸 후, 주미는 한동안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연락처를 들여다봤다. 아이들 과외 선생님, 학원 선생님, 아이들 친구 엄마, 학교 담임 선생님들…. 전화 번호는 가득했지만, 그 목록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미보다는 남편과 시댁식구들, 아이들과 관련된 이들이었다. 처음으로 깨달었다. 자신의 연락처조차 자신을 외면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때 카톡이 울렸다.
장소: 서울프랑스(프랑스식 가정요리 집)
시간: 2019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메시지: 너무 반갑다 주미야. 토요일에 보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을 때, 수연이 단체 톡 방에 주미를 초대했다. 수락 버튼을 누르자마자 친구들이 빛의 속도로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수연은 곰 두 마리가 볼을 비비는 이모티콘을,
숙이는 팡파르를 부는 머리 곱슬 아줌마 이모티콘을,
성미는 귀여운 곰이 하트를 날리는 이모티콘을,
덕희는 강아지가 “방가방가” 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반가워, 주미야!”
“대환영~”
“이제 드디어 완전체 되는 거야?”
친구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주미는 짙은 고동색 개가 입을 화들짝 벌리고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날 저녁, 주미는 친구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하나하나 눌러 보았다. 모습은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