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동안 딸의 시간(1_14편)을 쓰며 행복했다. 글의 문을 여는 딸 그림이 좋아서, 나의 회상과 딸의 상상이 만나 빚어내는 우리 가족의 색깔이 고와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림 속 나는 젊고, 그림 속 딸은 어여뻤다.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던 딸이, 글과 그림 속에 숨어 어여쁜 눈을 빠꼼하게 내미는 듯했다.
딸은 작가 서랍에 있던 딸의 시간(14)을 읽고, "엄마, 걱정하지 마~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 했다. 주책없는 걱정이기를 바란다. 딸이 딸의 시간(14)을 올리며, 다음 시리즈(작가의 서랍에 있는 딸 같은 며느리 1,2,3)를 읽고는 "엄마가 왜 그리 걱정했는지 알겠어요. 나는 함께 살았는데도 몰랐네요." 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도 하고, 볼 수 없는 나이 때가 있기도 하고, 보이는 것과 실 세상이 다름은 인간의 겉과 속 같기도 하지!" 했다. 딸은 웃으며 "힘들었겠어요.~~ 편안한 주말 오후를 보내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이 통화내용을 듣다 "당하는 것과 보는 것은 정말 다르지." 했다.
딸의 시간을 쓰며 나를 반성했다. '조금 더 딸에게 사랑한다 말해줄 걸, 조금 더 길게 놀아줄 걸, 조금 더 예쁘다고 말해줄 걸, 조금 더 귀 기울여 딸의 얘기를 들어줄 걸, 조금 더 많은걸 경험하게 해 줄 걸.' 하고 말이다. 내가 부족하고 잘못했던 소소한 일들이 떠올라 최선이란 참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딸 같은 며느리를 쓰며 '이런 글을 굳이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 분 단위로 올라오는 글을 보며, 사람과 관심, 판단과 선호의 다양성을 보았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가 좋았다. 예쁘게 포장된, 거칠게 표출된, 어이없게 던져진, 절제되어 감탄이 나오는 멋진 글을 읽고,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일까? 브런치는 '모래사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에 들어오면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것 같았다. 그냥 넋 놓고 걷다 예쁜 조약돌을 줍기도 하고, 환하게 빛나는 다이아 보석을 만나는 하얀 모래밭 말이다. 어떤 날은 푹푹 들어가는 모래밭에 널브러진 구멍 난 검정 봉투에 발가락이 끼는 것 같기도 하고, 간혹은 잊고 있던 닮은 듯한 내 그림자와 만난 것 같기도 했다. 내 글이 그 모래밭에 이름 없이 던져진 모래 알갱이 같은 글이라 해도 좋을 듯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떠랴. 내가 모래 알갱이 같은 얘기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바닥에 밟힌다 한들 그게 뭐 대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미리 써 놓은 몇 편의 딸 같은 며느리의 글을 읽고는 가슴이 아팠다며 나를 꼭 안아줬다. 정말 고생 많았다면서 말이다. 광활하게 펼쳐진 빛나는 모래사장 한가운데서, 나 스스로 위로의 시간을 갖는다 한들 누가 뭐라 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없던 것을 있다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글을 쓰며 시부모님을 생각하니 그분들이 걱정과 사랑으로 우리 가족을 돌보아 주었음에도 난 늘 겉돌았음을 알게 되었다.
시부모님께 난 솔직하지 않은 며느리였다. 솔직하지 않은 나의 태도로 그분들과의 대화는 늘 일방적이었음을 미리 밝혀 두어야겠다. 나는 계속 겉돌았고, 비겁했다. 그건 그분들이 나를 보려 하지 않았다 생각해서였고, 사실이 그랬다.
난 당구를 못 칠뿐더러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부모님과의 관계는 늘 당구를 치듯 하였다. 내 두 손을 거쳐 그분들을 모시고, 대접하고, 예를 다했지만, 내 의견은 늘 남편의 입을 빌어 3, 4, 5, 6 쿠션을 치듯 그분들에게 전달됐으니 말이다.
남편은 당구를 아주 좋아한다. 시간만 나면 당구 채널을 보고, 3쿠션 대회를 넋 잃고 관람한다. 그는 당구를 좋아하고 가끔 당구를 치지만, 난 큐대도 없이 다만 그의 입을 빌어 당구를 십수 년 쳤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자라며 배운 유교의 예와 학교에서 배운 평등과 꿈을 이루는 인간이, 나의 결혼생활 속에서 끝없이 맞섰기 때문이었다. 두려웠다. 나를 키운 엄마가, 엄마 말이, 엄마 행동이, 늘 내 머릿속에서 말을 걸었다. 착하며, 순종적인 엄마가 늘 어른거렸다. 딸이 결혼을 2개월 앞둔 지금도 엄마는 시댁에 예단, 예물을 하지 않으면 딸이 시집가서 고생한다는 의견을 고집하고 있다. 문화는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시스템이 바뀌어 옛 문화가 그 자리를 잃어도 늘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죽음에 과정과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듯 말이다.
딸 같은 며느리를 작성 중, 브런치 존재에 대한, 반복돼 보이는 소재에 대한 글을 읽었다. 퇴사, 이혼, 시집살이, 독박 육아 등, 너무도 지겨운 스토리가 반복된다는 평을 말이다. 정확한 평이다. 닮은듯한 이야기들이 반복적으로 브런치를 장악하니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소재는 싫지 않을뿐더러 아마 한 세대가 지나도 끝나지 않을 소재라 확신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와 문화는 시간을 응축해 개인의 삶에 개입하고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짧게는 몇백 년 유교적 삶을 감내한 여자들이 몇십 년 그 얘기를 풀어낸들 그게 쉽게 풀릴까 싶다. 문화권력에 소외된 사람들의 하소연이든, 한풀이든, 도돌이표 같은 토해냄이든 고통받은 사람들의 얘기를 우리가 듣지 않는다면 그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딸의 인생엔 늘 엄마의 삶이 그림자처럼 숨어있다. 싫어하든, 좋아하든 어느 구석엔가 숨어있다 모습을 나타난다.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에도 나의 엄마가 늘 어른거렸고, 딸도 살아가며 수없이 나의 그림자를 만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최소한 그 그림자의 정체를 밝혀주는 것이, 그것이 아름다운 것인지, 폭력적인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 나의 일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모래밭에 모래 알맹이 같은 글이니 볼 사람만 볼 것이기에 말이다. 모래 알갱이가 바람과 햇볕과 파도에 일렁이다 분해되듯, 나를 억압하던 실체를 펼쳐, 브런치란 모래밭에 펼쳐놔, 바람과 햇볕과 파도에 일렁이다 분해되도록 하여 딸에게 남겨질지도 모를 내 그림자를 지워버리고 싶다. 그림자를 죽이는 과정에도 절차와 예가 있으니 나로부터 시도해봄직하다 결론 내렸다.
딸 같은 며느리 시리즈는 이런 맘으로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