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싫어했던 일과 경험은 나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나는 수학을 사랑했었다.
수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여러 반대로 갈 수는 없었다. 취업이 잘 되고 졸업 후 연봉이 좋고 대체 의무복무를 할 수 있는 해양대학교를 갔다.(2년간 가야 하는 군대를 대체 복무할 수 있고, 경력도 되며 연봉도 높으니 좋은 선택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사촌 형 두 명이 해양대학교를 거쳤고 그에 따라 여러 사람의 권유로 가게 되었다. (다시 1년을 재수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
해양대학교는 아무 의미도 없이 암기만 하고 강압적인 분위기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질문을 많이 하곤 했는데, 항상 사람들은 질문 좀 그만하라는 소리를 했었다. 그래서 대학교에 가기만 하면 질문을 마음껏 하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해양대학교는 내가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보다도 못한 낮은 수준의 지식과 질문을 원하지 않는 교수들의 집합소였다. 그리고 선배들의 과한 술 강요와 문화는 나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죽는 것은 싫었지만, 정말 살아야 할 모든 이유와 존재의 가치를 다 잃어버렸다.
너무 힘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어른들은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만날 수 있는 많은 어른들을 만났지만, 결론은 그냥 해라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내가 상담을 요청했는데, 대부분 오히려 내게 상담을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에 분명히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 들르게 되었다. 어떤 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도 몰라서 그냥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펴서 몇 줄 읽고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책을 집어 들고 어느 페이지를 읽었는데, 현재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놓은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바로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다 읽어보니 생각했던 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생각과 고민이 생겼다. 다시 서점에 가서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읽는 것을 반복했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그 책을 사서 읽었다. 정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않던 시기에 유일하게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책에 빠져들었고, 책을 읽다 보니 책을 읽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다. 유일한 내 진정한 친구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후 군 의무 대체복무를 위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인턴 때도 느끼는 거였지만 너무 안 맞았다. 다만 내가 새롭게 도전을 하기엔 너무 나약했고 의존적이었다. 또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군대를 가는 것보다는 회사에 취업해서 일하는 것이 시기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돈을 벌 수 있고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능력이나 선호도는 고려하지 않고 좋아 보이는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24살이 되어서도 완벽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일을 시작하면서 번 돈으로 수백 권 의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경제, 금융, 투자, 과학, 공학, 역사, 문명, 종교 등 다양한 분야로 책의 카테고리가 확대되어갔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도 쌓이기 시작했다.
첫 7개월간의 승선을 마치고 2개월의 휴가기간 동안 유럽여행을 갔다. 선진국 사람들은 어떤 삶의 양식을 갖고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유럽여행을 가서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일반적인 통념을 더 이상 믿지 않기 시작했다. 책을 더 많이 읽고, 휴가 때마다 더 다양한 국가로 여행 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는 기존에 내가 만난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 주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생각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나아가 기존에 당연하고 또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고 호기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 생각 자체가 바뀌기 시작했다. 학교에 입학할 때쯤에는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을까?'와 '졸업 후 경력을 어느 정도 쌓은 후, 석사과정 등을 거쳐 몸값을 올리고 돈 많이 버는 것'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많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얻은 느낌과 새로운 생각들이 결합하고, 그게 어느 수준을 넘어서자 나는 나만의 비전을 만들게 되었다. 물론 이 비전이라는 것도 언제 다시 바뀔지도 모르겠다. 다만 다른 점은 최초로 내가 확신할 수 있고 자신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다양한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몸담고 있는 일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 자세나, 기존에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과 책은 서로 결합하며 계속해서 나를 발전하게 해 주었고, 자살 직전까지 생각했던 나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이 스토리에서 무엇이 key point 일까? 어떤 감정이 모든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리고 자살 직전까지 간 나를,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정말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죽자 라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는가?
어떤 감정이 20년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그 존재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주었는가?
그것은 놀랍게도 이것이다. "죽는 것은 싫었지만, 정말 살아야 할 모든 이유와 존재의 가치를 다 잃어버렸다."
극단의 궁지에 몰려서 정말 인생의 마지막 의미까지 잃어버렸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하는 것도 없고 즐거운 것도 없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의미 없게 느껴지는데, 그럼 내 존재는 뭐지? 왜 존재하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살아야 하지? 그 이전의 나는 '수학을 잘하는 사람' '댄스 안무를 잘 만드는 사람'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 등 내가 잘하는 것에 내 존재의 가치를 두었다.
하지만 해양대학교에서는 수학을 잘하는 것, 댄스 안무나 악기는 의미 없는 것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선배들과 술을 잘 마시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주어진 문장을 잘 암기하는 사람이 의미 있는 것이었다. 잘하는 것에 존재의 가치를 두어왔던 나는, 그것이 쓸모없어지자 존재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학교 성적은 잘 받았으나, 그것은 내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존재 가치를 살려주진 못했다.
즉 다시 말해, 나를 극단적으로 힘들게 만든 상황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하는 것처럼(even a worn will turn), 기존에 내가 믿어왔던 것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이 충분히 버틸만하다면, 우리는 그 프레임을 고수할 확률이 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라면, 우리는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나는 많은 양의 책을 읽음으로써 생각과 사고방식을 재 디자인할 수 있게 되었고 책에 대한 첫 접근은 내게 주어진 극한의 환경 속에서 시작되었다.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내가 만약 적당한 대학을 가서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힘들었다면 과연 책을 읽기 시작할 수 있었을까? (아마 여자 친구를 사귀고 놀러 가고, 클럽을 가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았을 것이다. 시험기간에만 잠깐 힘들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버틸만하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만약 극단적으로 본인이 싫어하는 그 환경의 안 좋은 점만 보기보다는, 생각을 다르게 해 보자는 것이다.
오히려 만약 30%만 좋고 70%가 싫은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은 싫은 부분이 더 크더라도 그래도 좋은 부분이 있네? 하고 그것을 고수할 확률이 크다. 그게 최종적으로는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100% 싫은 환경 속에 있다면 너무 싫어서 때려치우거나,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평하면서 지속할 확률이 클 것이다. 그것을 나쁘게만 보고 불평만 하지 말자. 오히려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다. 사람들이 30%의 좋은 점으로 70%의 안 좋은 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여러분은 완전히 여러분들이 속해 있는 룰과 필드 자체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나는 정말 대학 생활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다른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좋은 점에 초점을 두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당연한 질문에 의문을 던져보자. 역설적으로 안 좋은 점에 초점을 맞춰보자. 그리고 그것에 '긍정적인 화'를 내보자. 여기서 끝나면 더 안 좋아진다. 우리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그 화가 왜 나는지 민감하게 느껴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보자. 내게 적당한 용돈이 100달러라고 생각해보자. 만약 부모님이 90달러를 주거나, 110 달러를 준다면,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지는데 우리의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다.
만약 부모님이 10달러를 주거나 아예 안 준다면? 반항을 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안 좋은 조건을 활용하는 쪽으로 생각해보자.
나는 100달러가 필요한데, 왜 10달러밖에 안 주는 거야? -> 화나네 -> 왜? -> 100달러가 필요하니까 -> 그럼 나는 90달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 지금 내가 90달러를 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지? -> 잘 모르겠는데… -> 그럼 내가 그나마 제일 잘하는 것은 뭐지? -> 잘 모르겠는데… -> 그럼 그나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뭐지?)
극한의 환경 속에서 여러분을 포장하는 마지막 한 꺼풀까지 벗겨지고, 나체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는 그 시기가 오히려 진실된 여러분을 돌아보고 가짜가 아닌 진짜 자신을 마주하고, 뇌를 적극적으로 굴리는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좋게 좋게 가자. 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과 여러분을 지옥으로 몰고 가는 것들이-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오히려 우리를 완전히 바꾸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