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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꿈'이 없지만

#브런치10주년작가의꿈

by 정민쓰





활자들의 배열은 의미가 없다.

그저 아이들의 블록놀이처럼 활자를 끼워 맞춰 만들어낸 단어들은 생명력이 없어서, 문득 죽은 눈을 한 채 신체기관과 염기서열로 이루어졌을 뿐인 공허한 나와 닮은 듯했다.



내 불행하고 자조적인 상념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속삭이듯 불어넣었고 욕지기가 올라 그것들을 활자로 내뱉자, 그것들은 내가 쓴 '글'이 되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글들에 ''을 불어넣어 생명력을 부여하는 듯했지만, 나에겐 글이 '' 자체였기에 조금이라도 의식하지 않으면 언제든 허공에 흩어지는 위태로운 것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글'이 '꿈'에 한없이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다둥이 아빠다.

내가 쓴 글들은 나의 관념적 유전자를 가득 담고 있는 나의 일부이자 자식들이다. 다만 의미 없는 활자의 배열이고 아직 숨을 쉬지 않고 있을 뿐. 외로운 아이들이다. 나는 무력한 아버지이고.

요컨대 내가 쓴 글은 나에게 있어 기록보단 잉태에 가깝다는 것이다.



혼자 블로그에 글을 썼었다. 혼자만 간직하더라도 내 영감들을 내뱉고 싶어서.

어떠한 예술적 허영심과 고집이 창피한 글들을 낳았고, 버려진 자식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은 것은 내 글들이 생명을 갖기 위해선 누군가에게 읽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쓸모를 다 한 이후에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많이 보았지만, 글은 다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방향을 모르고 방황하던 글쓰기의 목적지와 행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 글은 누군가에게 읽힘으로써 생명을 부여받고, 읽히는 한 영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이핑한 글자 속에 내가 담겨 나는 영원히 읽힌다.' 내 숙원사업과 꿈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아름다움 뿐만이 아닌 나의 가장 음침하고 추한면까지 모두 적어 내려간다. 글 안에서 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우니까. 더 이상 내 오물 같은 부정을 내 안에서만 순환시키지 않으리라. 내 주제에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다.



글에는 꿈이 없다. 다만 글이 숨을 쉬는 한 나는 꿈을 꿀 수 있다. 내가 꿈을 꾸는 한 글은 숨 쉴 수 있다.


나를 써 내려간 글에서 독자들이 나의 맥동을 느낄 수 있길 오늘도 바라고 바란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도 바닥에 끌리워진 의자자국에, 구리스가 벗겨진 힌지사이에, 셔츠의 미세한 섬유조직 사이에도, 더 나아가 세상만물 모든 것에, 활자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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