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떠나고, 1년이 지났다

by 정물

엄마가 떠나고 1년이 지났다. 사실, 이렇게 쓰고 있지만 엄마가 내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잘 믿지 못한다. 엄마의 몸이 깨끗히 씻겨지는 것도, 엄마가 하얀 재가 되는 것도 다 두 눈으로 봤는데도 말이다. 아직도 병원에 있을 것 같고, 아직도 집에 있을 것 같고, 전화하면 바로 전화를 받을 것 같다.


엄마가 떠난 지 딱 1년이 되던 날 엄마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 갔다. 엄마가 이 조그만 병에 가루가 되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직도 볼 때마다 이질감이 든다. 우리 엄마 아니야, 우리 엄마는 집에 있어. 이런 헛된 믿음 때문에 엄마 생각만 하면 그렇게 나던 눈물도 막상 납골당에 가면 나지 않는다.


엄마를 붙잡아서 살아 돌아오게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제발 가지 말라고, 이제 잘 할 테니까, 속 썩이는 일 없을 테니까, 항상 옆에 있을 테니까 제발 가지 말라고. 엄마를 붙잡지 못했다면 엄마와의 추억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다. 엄마가 어떤 음식을 해줬고, 어떤 말을 해줬고, 어떤 것을 좋아했고 싫어했고. 엄마의 모든 것을 붙잡아 두고 싶다.


엄마가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것도 엄마가 이제는 영원히 내 곁에 실물로 없다는 사실을 조금은 자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잘 믿어지지 않고, 믿지 않아도 된다면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엄마가 내 옆에 없다는 것은 사실이니, 엄마와의 추억이라도 곁에 두고 싶었다.


엄마와의 추억 중에서 유독 기억하고 싶은 것은 엄마가 해준 음식이다. 워킹맘이었던 엄마는 집에 있으면서 자식들의 밥을 차려 놓고 있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몸이 갈릴 때까지 일을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자식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짓는 엄마였다.


어릴 때는 엄마의 요리를 많이 먹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엄마가 차려준 집밥을 먹는 일은 점점 줄었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엄마가 병상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마의 밥상은 점점 희소해졌다. 하지만 희소할수록 더 특별해진다고 할까. 배가 고플 땐 다른 것보다 엄마의 밥상이 고팠다.


나는 엄마가 너무 좋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떠난 연인에 미련을 가득 안고 전화하는 사람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 대해 미련과 미안함과 고마움과 그리움을 가득 품고, 엄마와의 추억을 한 자 한 자 쓰면서 엄마에게 안부를 전하고자 한다. 엄마가 떠나고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엄마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