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엄마의 쿠키
최근 베이킹을 배우는 것에 푹 빠져 있다. 베이킹이라는 단어는 나와 평생 붙지 않을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떠나기 직전부터 지금까지 베이킹에 취미를 붙이고 있다.
베이킹을 하면서, 특히 버터를 다루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좋은 버터에서 나는 기름지면서 고소한 향을 맡다 보면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버터 향을 따라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본다. 그때 그 오래된 빌라에서 건강하고 젊었던 엄마는 나를 위해 쿠키를 구워줬다. 가지각색의 쿠키를 오븐에 넣으며 기대에 가득찬 얼굴을 했던 엄마. 오븐 주변에서 나던 그 버터 향. 정신을 차리고 지금으로 돌아오면, 그때 건강하고 밝았던 엄마는 없고 버터만 남아 있다.
부엌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그 오븐은 그 빌라에 있기엔 너무 화려했다. 세상에 이 촌구석에서 오븐이라니. 우리가 저 큰 녀석을 감당할 수 있을까. 툭 하면 고장날까 폭발할까. 나에게 오븐은 무서움과 두려움의 존재였다.
하지만 엄마는 무섭지도 않은지 가스 오븐을 들이자마자 한동안 쿠키를 구웠다. 엄마가 만들어준 쿠키는 초코맛 쿠키였다. 초콜렛 칩이 박힌 요즘 나오는 청키한 초코칩 쿠키가 아니라, 그냥 초코맛이 나는 밋밋한 모양의 초코맛 쿠키. 반죽을 만든 다음에 모양 틀로 찍어서 오븐에 구우면 완성되는 간단한 쿠키였다.
나는 쿠키 반죽을 만들 때, 그리고 쿠키가 구워질 때 나는 버터의 냄새를 너무 좋아했다. 그 기름지면서 고소하면서 어디서도 맡아 보지 못했던 향. 몸이 절로 말랑말랑해지는 그 향. 버터 향에 취해 그 큰 오븐 안에서 조그만 쿠키들이 구워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 쿠키들처럼 그 오븐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듯했다.
그때의 나는 쿠키를 만들어주는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친구들 엄마 중 쿠키를 만들어 준다는 엄마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우리 엄마 쿠키도 만들 줄 알아,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다. 버터의 이 좋은 향을, 쿠키의 이 맛을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으면 싶었다.
지금 그때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된 내가 베이킹을 배우고 보니 그 때의 엄마가 자랑스럽기 보다는 안쓰럽다. 한가로운 오후에 빵이나 쿠키를 구우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는 로망. 엄마에게도 그런 로망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걸 나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것일지 아니면 나로 인해서 이룬 것일지 모르겠지만.
베이킹을 하면서 버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엄마에게 오늘은 이걸 만들었다고 사진을 보내면서 자랑도 하고, 엄마에게 맛 보라면서 가져다 주고, 엄마에게 나 어릴 때 만들어준 쿠키 너무 맛잇었다고, 그때 엄마도 기억하냐고 수다 떨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한다. 가상으로 내가 만든 엄마와의 하루를 떠올리다 같이 떠오른 슬픔을 애써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