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참외를 사야 겠다.

02. 엄마의 참외

by 정물

여름이다. 여름하면 생각나는 과일은 단연 참외. 나는 왠지 여름에는 수박보다는 참외를 더 찾는다. 시장에서 참외가 보이면 사서 냉장고에 넣고 두고두고 먹는 편이다. 요즘에는 SNS에서 한창 유행하는 참외샐러드를 아침으로 먹기도 한다.


엄마도 여름이 되면 참외를 찾았다. 여름 냄새가 날락말락 할 때부터 엄마는 참외를 찾아 나섰다. 우리 집 텃밭에는 참외가 자랐는데 참외 크기가 사람 머리통만 했다. 엄마는 여름 때마다 텃밭에서 참외를 가져 와 참외가 시원해지도록 냉장고에 넣고 두고두고 먹었다.


"참외 깎아 줄까?" 엄마는 나와 TV를 보다가 주방으로 나가더니 큼지막한 참외 껍질을 과도로 슥삭슥삭 깎았다. 그리고나서 반으로 가르지도 않고 그대로 원 모양으로 나오게 잘라 한 입에 먹는 것이 엄마의 스타일이었다.


그때 엄마와 항상 보던 TV 프로그램은 '전원일기'. 한 케이블TV 채널에서 매번 방송해주는 것을 엄마는 하루종일 봤다. 지금 시대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지만 엄마는 '전원일기'가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제일 재미있다며 TV로도 보고 핸드폰으로도 봤다. 엄마와 나는 소파에서 참외를 먹으며, '전원일기'를 보면서, '전원일기'에 나오는 이야기나 배우들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는, 그런 여름을 항상 보냈다.


엄마는 암으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참외를 찾았다. 코로나19로 가족의 병문안도 쉽게 되지 않았던 때에 환자에게 필요한 물품을 병원 1층에 맡기면 보호자가 가져가도록 할 수 있었다. 엄마는 여름이 가까워지면 나에게 항상 참외를 보내달라고 했다. 주방에 서서 과도로 참외 껍질을 까고, 통으로 참외를 써는 나에게서 엄마가 보였다.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드린 음식도 참외였다. 그것이 엄마에게 드리는 마지막 음식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참외가 나오기에는 조금 이른 때에, 내 곁을 너무 일찍 떠나 버렸다.


엄마의 장례식에 올린 과일도 참외였다. 원래 파인애플 이런 말도 안 되는 과일을 친척들이 준비했길래 동생이 "엄마는 참외 제일 좋아했으니까 참외 올려야지"라고 해서 참외를 올렸다. 4월에 노랗게 익은 여름 과일 참외가 나온 것만큼 엄마가 내 옆에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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