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가지 않던 유일한 엄마의 음식

03. 엄마의 전복볶음

by 정물

내가 첫째여서 그런지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치는 생각보다 높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에게 옷도 가장 좋은 것으로, 타는 것도 제일 좋은 것으로, 먹는 것도 제일 좋은 것으로 해줬다. 촌구석이었던 우리 동네에서 카시트를 처음으로 탄 사람도 나였고, 처음으로 브랜드 아동복을 입은 사람도 나였다.


내가 커가면서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감도 커졌다. 특히 내가 유명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는 그 기대가 최대치에 달했다. 한 지방에 공부로 날고 긴다는 애들은 다 모인다는 그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엄마는 '이제 우리 딸은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나의 대학 입시는 엄마의 기대에 한참 뒤쳐졌다. 어떻게든 이름 난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갖은 방법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좀처럼 나에게 문을 열어주는 대학은 없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나는 엄마의 보살핌에, 나의 자만심에 가려져 있던 큰 벽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나는 진짜 안 되는 애구나. 이 정도 그릇의 사람이구나. '성과는 좋지 않지만 열심히 하는 아이',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것 그대로 나는 실력도 되지 않으면서 눈만 높아서 열심히 하는 척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20살을 몇 개월 남겨두고 깨달았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한 대학에 수시로 합격해 수능을 보지 않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그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는커녕 수능을 보라고 나에게 화를 냈다. 왜 엄마는 이 정도에 만족하지 못할까. 당시 나의 대학 합격을 축하해주지 않는 엄마가 너무 미워서 싸이월드에 엄청나게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내 딸이 그 대학교보다 더 좋은 대학교를 갈 수 있는데, 내 딸이 이 정도가 아닌데. 나는 그 벽을 마주했지만, 엄마는 그 벽을 엄마는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것 같다.


수능이 내 대학 입시를 좌지우지하지 않음에도 엄마는 수능 전날 나와 함께 수능 시험장에서 가까운 동생 자취방에서 새우잠을 잤다. 나에게 침대를 내어주고 땅바닥에서 대충 이불을 펴고 자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를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 뻔뻔하게 수능을 엄청나게 잘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분주하게 점심 도시락을 쌌다. 그 때 유독 눈에 띄는 반찬이 있었으니, 전복구이였다. 전복볶음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엄마가 해 준 적도 없고 먹어 본 적도 없었다. 전복내장에 간장 등으로 짭쪼름하게 구워진 전복볶음은 맛있었지만 왠일인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귀한 전복구이를 도시락으로 넣을 정도로 엄마는 나의 앞날에 진심이었구나. 하지만 나는 그것을 걷어 차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목구멍을 가로막고 있었다.


수능철이 될 때면 그때의 전복구이가 생각난다.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꿈을 붙잡으려고, 딸이 기운을 낼 수 있돌고 새벽에 전복을 볶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생각해보면 엄마의 꿈이 곧 나였지 않았나 싶다. 내 아이돌만큼은 누구보다 멋있어야 하고, 누구보다 잘 돼야 한다는 팬의 마음처럼 엄마는 어디서든 내가 항상 최고이길 바랐다.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잘 컸는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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