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엄마의 김밥
보통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그러니까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결혼할 나이'가 되면 보통 엄마들은 자신들의 레시피를 알려준다고 한다. 엄마의 레시피를 딸이 배우고, 그 딸이 자기 자식에게 해주고, 그 자식이 그 레시피를 또 배우고. 이렇게 엄마의 손맛은 수많은 손에 손을 거쳐 후세에 전달된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배운 레시피가 없다. 엄마는 "결혼하면 다 해"라며 굳이 요리하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얼핏 들었던 엄마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떠올리면 "어차피 결혼하면 다 한다"라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어릴 때는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도 내가 태어났을 때는 엄마가 처음이었다. 20대 초반이었던 엄마는 명절음식 준비도 할 줄 몰랐고, 어르신들이 말하는 심한 사투리도 못 알아 들었다. 그랬던 엄마는 우리를 키우면서 드센 사투리로 어르신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됐고, 명절 음식을 혼자서도 척척 준비하게 됐다.
결혼하면 다 배운다는 엄마가 딱 하나 가르쳐 준 음식이 있다. 바로 김밥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자 소울푸드도 엄마가 만들어준 집 김밥이다. 집 김밥이 사 먹는 김밥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먼저 들어가는 재료부터 다르다. 엄마 스타일의 김밥은 무조건 다 크게. 계란도, 오이도 두껍게 썰고 맛살과 햄, 어묵도 크게 들어간다. 계란은 팬에 크게 둘러 부쳐서 지단을 두껍게 만든 다음 김밥에 들어갈 길이로 세로로 썬다. 오이와 맛살, 햄, 어묵도 등분해 썬다. 맛살과 햄, 어묵은 한 번 팬에 구워준다.
재료가 다 준비되면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한 밥을 김 위에 얹고 편다. 밥도 물론 많이 넣는다. 엄마는 항상 진밥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김 위에서 조금만 힘을 줘도 밥알이 다 뭉게졌다. 그래도 뜨끈하고 고소한 진밥이 김에 쫙쫙 붙는 맛이 있었다. 질퍽하고 두껍게 펼쳐진 밥 위에 준비한 재료를 하나하나 얹어서 김발 없이 돌돌 힘있게 말면 엄마의 참기름칠로 마무리된다.
엄마가 보기에는 내가 김밥을 곧잘 쌌나 보다. 엄마는 김밥이 먹고 싶은 날이면 재료 준비만 다 해주고 김밥을 말라고 시켰다. 평소 요리를 하나도 시키지 않다가 김밥 하나만큼은 나에게 맡겼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면서 섭섭하다. 엄마에게 배운 레시피가 달랑 김밥 하나라니.
그래서 이 김밥 레시피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사회인이 되고 자취를 하면서 엄마의 김밥을 만드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가끔 혀 중간 쯤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이 들어온 듯한 느낌이 맴돌 때가 있다. 뜨끈한 진밥이 가득 펼쳐진, 재료들이 뭐든지 크게 들어 간,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나는, 그 투박한 김밥의 존재감이 달랑 하나지만 얼마나 무거운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