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엄마의 순댓국
엄마는 지난 2022년 4월 26일, 위암으로 내 곁을 떠났다. 위암. 처음 엄마가 위암 판정을 받았다고 했을 때 제발, 제발, 제발 아니길 바라면서 얼마나 검색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검색을 하면 할수록 엄마가 말한 증상이 위암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려는 나의 머리를 세게 부여잡고 '자 봐, 너의 업보다'라고. 나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위암을 진단 받고 엄마는 한동안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고 했다. 몸에서 음식을 막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던 엄마가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순댓국이었다.
엄마는 평소에도 순대나 순댓국을 좋아했다. 집 근처 오일장에서 팔았던 쿰쿰하면서도 매콤한 순댓국. 물론 위암 환자가 먹어야 하는 것들과는 현저히 거리가 멀다. 엄마는 위암 환자가 먹어야 한다는 이른바 양배추, 감자, 브로콜리 등이 아니라 그때 그때 먹고 싶은 것을 나에게 부탁했다. 속으로는 환자를 위한 음식을 줘야 하는 것이 암 환자를 가족으로 둔 보호자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이 없다던 엄마가 무언가가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귀하고 소중했으므로, 그 소망을 이뤄주는 것이 엄마를 낫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순댓국을 사면서 문득, 엄마가 이제까지 뭐를 먹고 싶다는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울컥했다. 먹고 싶은 게 없어진다는 것도 큰 질병의 한 신호였는데. 그것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의 상황을 막을 수 있진 않았을까. 왜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엄마에게 왜 그렇게 무심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책감과 후회가 쌓여 손에 든 순댓국이 더 무거워졌다.
혼자서 자책과 후회를 하다보면 어느새 엄마가 있는 병원에 다다랐다. 엄마에게 순댓국을 주고 돌아오면서 순댓국과 함께 차마 담지 못한 자책감과 후회를 거름 삼아 희망을 심었다. 엄마는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다시 내 곁에 와 줄거야. 그러면서 바랐다. "먹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해줘"
하지만 그렇게 심은 내 희망은 2022년 4월 26일, 잔인하게 짓밟혔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도 먹고 싶은 것을 나에게 이야기해줬다. 거기에는 순댓국도 한결같이 자리했다. '봐, 너희 엄마 이렇게 잘 먹잖아. 엄마는 금방 일어날 거야' 이렇게 속삭이던 순댓국의 뜨끈한 몸뚱아리도, 내 간절한 바람도, 엄마의 차가워진 몸을 데우는 데는 턱없이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