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엄마의 우뭇가사리 냉국
오늘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엄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도 나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다.
외할머니는 나의 두 번째 엄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업어 키우셨다. 다른 곳에서 말했지만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다 외할머니 덕분이다.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을 보면 대부분 외할머니 집에서 내복 바람에 활짝 웃고 있는 내가 있다. 그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엄마도 있다.
외할머니를 가만히 떠올리고 있노라면 여름이 같이 떠오른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외할머니가 여름에 돌아가셨나.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이기고자 더욱 자신의 빛을 발산하는 푸른 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이 우거진 마당, 소박한 마루와 주방, 오른쪽 구석에 있던 할머니의 침실, 손으로 다락다락 돌렸던 옛날 텔레비전, 외할머니 냄새에 이어 외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외할머니 집에서 먹었던 우뭇가사리가 떠오른다. 요즘은 제주도 음식이 토속 음식까지 유명해져서 우뭇가사리를 아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우뭇가사리는 해초로 묵으로 만들어 먹는다. 투명한 우무묵을 길게 썰어 콩가루랑 같이 먹거나, 상큼하게 식초를 넣어 냉국으로 먹거나, 정사각형으로 썰어서 간장 양념장과 같이 먹는다.
나는 우뭇가사리를 외할머니 집에서 처음 맛봤다. 외할머니가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준 우뭇가사리 냉국. 나는 새콤한 국물에 아삭한 오이, 말캉한 우무묵을 먹고 있고, 외할머니는 냉장고 앞에 앉아 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장면이 여름 내내 떠오른다.
외할머니는 몸집이 있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건강하셨다. 3층에 있는 계단도 없는 우리집을 80의 나이에 지팡이를 집고 오르락 내리락 하셨을 정도다. 하지만 갑자기 집에서 넘어지면서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졌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누워서 생활하셨다. 80 초반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이 정도면 진짜 오래 사신 거다'라고 했지만 나는 오래오래 나와 함께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것 같아 슬펐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이 잘 안났다. 엄마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처음 보는 외삼촌이라는 사람은 상복을 입고 곡을 했다. 너무 어릴 때라서 그런가. 외할머니의 죽음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외할머니를 땅에 묻고, 흙을 덮자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제 진짜 외할머니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엄마는 지금 외할머니가 잠들어 있는 장소에 같이 있다. 엄마를 납골당에 모시고 온 날 아빠는 "엄마는 이제 외할머니 곁으로 간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지금 엄마와 함께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까. 자신의 딸이 이렇게 빨리 자신의 곁으로 올 것이라고 외할머니는 예상이나 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