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마지막이었다는 걸

18. 엄마의 소고기

by 정물

엄마는 돌아가시기 몇 주 전에 우리 집에서 아빠와 잠깐 머물렀다. 당시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병실이 모자라 잠시 외부에서 쉬다가 다시 입원을 하는 시기가 있었다.


엄마는 딸 집에 왔는데 고기도 안 사주냐며 잔소리를 했다. 위암에 걸린 사람이 웬 소고기? 살짝 기분이 나빠서 짜증을 냈더니 엄마가 되어서 딸에게 빌빌거려야 되겠느냐는 핀잔만 받았다. 엄마는 꼭 같은 말도 저렇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고기 사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은 것이었다. 이런 엄마의 안 좋은 대화 방식까지 그리운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냥 짜증 내지 말고 바로 소고기 사러 갔다 올 걸. 아쉬움이 남는다.


소고기 큰 팩을 사 와 굽는 나를 보며 엄마는 너무 많이 구우면 안 된다, 애매하게 남기지 말고 다 구워 버려라, 튀는 기름은 좀 닦아라 등등의 잔소리를 했다. 누워 있으면서 뭐 그렇게 말이 많아 툴툴대면서 고기를 구웠다.


엄마의 잔소리 덕분인지 고기는 맛있게 구워졌다. 아빠와 엄마, 나 모두 작은 한 상에 둘러앉아 소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소고기를 다 얻어먹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둥, 네가 결혼하는 것은 보고 죽어야 한다는 둥 여러 말들을 계속했다. 소고기를 먹어서 그런가 엄청 신나셨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앞으로 엄마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음을.


잠들기 전 엄마와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정말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쥐어 짜내서 엄마가 웃을 만한 이야기를 했다. 엄마 얼굴에 크림을 발라 주면서, 엄마 얼굴 진짜 작다면서 손바닥으로 엄마 얼굴을 가리면서 장난을 쳤다. 진짜 엄마가 건강했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엄마도 건강해질 수 있겠지? 그러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작은 희망을 가졌다.


자기 전에 엄마는 나보고 옆에서 같이 자라고 했다. 혼자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내가 옆에 있으면 엄마가 불편해할까 봐 일부러 따로 자겠다고 했다.


엄마는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해서 새벽에 자꾸 아빠를 깨웠다. 화장실에 가다가 속옷에 실수를 하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서 있지도 못하는 엄마의 모습, 그런 모습을 자식에게는 감추려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엄마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나는 꾸역꾸역 그 생각을 눌렀다. 나쁜 생각을 하면 실제로 이뤄질까 봐.


그때 엄마 옆에서 자면서 손 한 번이라도 더 잡아 볼걸. 한 번이라도 더 안아볼걸. 사랑한다고 한 마디라도 더 해 볼걸. 엄마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그때 엄마 옆에 눕지 않았던 것을 가장 많이 후회한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건강했었던 그때. 그때 먹었던 소고기가 오늘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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