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엄마의 고구마케이크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벌써 겨울이다. 사계절 모두 엄마가 그립지만, 가장 엄마가 많이 생각나는 계절이 있다. 바로 겨울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 겨울도 아니었는데 유독 겨울이 되면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다. 우리 가족이 모두 행복했던 때가 겨울이어서 그런가.
몇 해 전 겨울. 그 날은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모여 동생의 생일을 축하했다. 온 가족이 좋아하는 고구마케이크에 촛불을 붙여 어색하면서도 기분 좋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너무 행복했다. 이 행복이 앞으로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와 소파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면서 딱 지금만큼의 행복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건강한 아빠와 엄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동생, 그리고 나, 가을이까지. 딱 지금처럼만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이후 얼마 안 가서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다. 아빠는 서울과 제주를 왔다 갔다 하며 엄마의 간병을 했고, 동생은 집에 남아 아빠의 일을 도맡아야 했다. 당시는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때였기 때문에 나는 서울에 있으면서도 병실에 가보지도 못하고 매번 퇴근한 후에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면회장 앞에 두고 갔다.
엄마가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요즘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암 쯤이야 항암 열심히 받으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항암 치료를 받고나서 맞이하는 첫 번째 동생의 생일에는 엄마가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 이때도 고구마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다 같이 동생의 생일을 축하한 뒤, 케이크를 나눠 먹었는데 엄마는 평소에는 잘 안 들어가는 밥이 동생 생일이라 잘 들어 간다면서 케이크까지 싹싹 비우셨다. 이제는 진짜 좋아질 일만 남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엄마의 상태는 더더욱 안 좋아졌고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진짜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매정할까 싶었다. 이렇게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다같이 고구마케이크를 나눠 먹던 때는 정말 두 달도 안되었단 말이다. 그때 순진하게 눈을 꼭 감고 가족의 건강을 바랬던 내가 바보 같았고, 나의 소원을 촛불 끄듯 쉽게 날려 버린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엄마가 떠난 이후로 고구마케이크를 앞에 두고 가족이 다같이 모이는 일은 없어졌다. 각자의 생일은 각자가 조용히 보내고 있다. 가족이라는 절대 갈라지지 않을 것 같은 케이크가 조각조각 갈라져 있다.
딱 지금처럼만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지금의 행복에 만족하고 앞으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 나에게는 우리 가족이 고구마케이크 앞에 모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지금의 행복에 만족하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을 일으키는지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라는 단어밖에 없다더라. 이 말이 틀린 말이길 바랬던 순간이 있다. 지금의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엄마와 이야기했던 그때만큼은 틀렸더라면. 지금의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