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나 봐, 잊을 수 없나 봐

16. 엄마의 김치어묵국

by 정물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아빠가 코로나에 걸려서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낸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한 번도 아빠와 단 둘이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낸 적이 없기에 당황했다. 무엇보다 제일 걱정이었던 것은 삼시 세 끼를 차리는 것이었다. 혼자 간단히 때우는 것으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야 했다. 평소에는 절대 밥, 국, 반찬 이런 식으로 제대로 갖추고 먹질 않는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한 그릇 요리나 금방 데워서 먹을 수 있는 것들로 해결하곤 했다.


하지만 아빠가 있던 일주일 동안은 이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없었다. 특히나 코로나로 아빠가 입맛도 잃었던 상황이었기에 뭐를 해야 할까 진짜 고민이 많았다. 정말 진짜 내가 엄마가 된 느낌이었다. 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사고 밥은 햇반으로 때운다고 해도 국이 문제였다. 국이 없으면 밥을 잘 먹지 않는 전형적인 아재 입맛. 국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컸다.


그러다가 엄마가 자주 해준 국이 생각났다. 배추된장국과 더불어 엄마가 가장 많이 해줬고 아빠가 잘 먹었던 음식. 김치어묵국이었다.


어묵이 탱탱 불 때까지 삶다가 김치를 넣고 팔팔 끓이는 정말 간단한 요리인데도 아빠는 이 국을 제일 맛있게 먹었다. 나도 아빠와 같이 먹으면서 엄마의 맛이 생각났지만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던 말이 더 많이 떠올라서 울컥했다. 한 그릇을 다 비우는 아빠를 보면서 아빠가 잘 먹는다고 좋아하시던 그 목소리.


생각해 보면 엄마는 아빠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같이 이야기를 해보면 아빠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크게 웃으신다. 아빠가 이렇게 이야기했고 저렇게 이야기했고. 아빠가 자기가 해준 음식을 다 먹었고 좋아해 줬다는 것. 아빠가 이런 것들을 선물해 줬고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가장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김치어묵국을 보면 그런 엄마의 모습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자신이 만든 국을 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빠를 보며 뿌듯해하는 모습. 그리고 아직 밥을 먹고 있는 딸과 도란도란 속 이야기를 하는 모습. 둘이 뭘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냐며 투덜대는 동생, 부엌에 있으니 뭐라도 줄까 봐서 엄마 가까이 앉는 가을이까지. 어마가 암 판정을 받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절대 깨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행복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를 제일 좋아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빠가 엄마한테 나쁜 짓도 많이 했고, 엄마가 아빠 때문에 속상했던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항상 아빠를 제일 좋아하고 아빠의 반응을 제일 궁금해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에게만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구나 하는 생각이 지금까지도 든다.


그런 엄마의 마음까지 다 담지 못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아빠 정말 잘 먹는다’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떠올라서. 아빠에게 김치어묵국을 해드렸다. 서투르게 만든 것인데도 아빠는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아빠도 먹으면서 엄마 생각이 났을까. 엄마를 많이 걱정했을까. 겉으로 잘 티 내지 않는 전형적인 무뚝뚝한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엄마를 위하고 걱정했으리라 생각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축 쳐져 있는 아빠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을 때면 김치어묵국을 끓였다. 이렇게 오늘처럼 날씨가 쌀쌀해지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엄마의 따뜻한 음성과 팔팔 끓는 매콤 새콤한 김치어묵국. 옆에서 잘 먹는다고 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엄마의 맛을 똑같이 낼 수는 없지만 이것으로라도 아빠의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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