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내 옆에 두고 싶은 언니

마스다 미리 <행복은 이어달리기>

by 정물

'언니'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니'라는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여자 형제가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학교나 사회에서 만난 연상의 여자들에게도 '언니'라고 한 적이 없다. 학교에서는 '선배님', 회사에서는 그 사람의 직급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회사 사람도 아니고 학교 선배도 아닌 애매한 관계에 있는 경우라도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을 대신할 다른 호칭으로 불렀다. 내가 '언니'라는 호칭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음절을 발음하기 위해 혀를 굴리고 입을 여는 것 자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언니'라는 단어만큼이나 '언니'라는 존재 자체에도 어색함을 느낀다. 언니가 있는 친구들은 언니를 자신의 가까운 미래라고 생각하고, 그를 보고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자란 친구들은 그렇지 못한 나와 달리 인생의 굴곡을 요리조리 잘 피해갔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언니가 있었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밖에 있는 '언니'들을 보면서 나의 미래를 상상하고, 그들의 시행착오를 보면서 배우려고 했다. 그 중 한 명이 마스다 미리였다. 마스다 미리는 롤모델이라기 보다 친언니 같은 존재다.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때,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될 때. 그럴 때마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었다. 책에서 마스다 미리는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이 고민해주고, 나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며 공감해줬다. 그리고 솔직하고 공감되는 이야기로 나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것이 '언니'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최근에도 여러 고민이 생겨 마스다 미리 책을 찾던 중 이 책을 발견해 읽게 되었다. 만화는 많이 읽었지만 에세이는 처음이었기에, 마스다 미리가 쓴 에세이는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다. 마스다 미리는 별거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비슷한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잔잔하게 풀어냈다. 그러면서 위트를 빼놓지 않았다. "'뚱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과 '말랐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이에는 아마존강 정도로 넓은 강이 흐르고 있겠지 따위의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암묵적인 규칙 속에서 누가 몇 살인지 추리하는 것이 어른의 세계다" 등의 문구에서는 나도 한 번쯤 해본 생각이라 피식 하기도 했다.


최근 하고 있던 고민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였기에,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책을 읽었다. 매일 도파민 터지는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이 철없는 동생의 생각에 마스다 미리 언니는 매일의 작은 행복을 찾아서 자주 행복을 느끼라고 조언해줬다. '아무 것도 없는 지금이 좋은 날'이라며 큰 이벤트를 찾기 보다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교과서적인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방식으로 정돈한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마스다 미리의 모습을 따라하고 싶어진다. 친구들과 어쩌다 한 번 고급 음식점에 가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케이크를 먹고, 혼자 영화관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등등.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런 남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닮고 싶어진다. 잘난 언니가 부러워서 따라하는 동생처럼 말이다.


이 책의 커버에는 '늘 내 옆에 두고 싶은 언니'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처럼 나에게 마스다 미리의 책은 늘 옆에 두고 고민이 생길 때마다, 심적으로 지칠 때마다 꺼내 보는 책이었다. 특히 이번 책은 작가 개인의 생각이 듬뿍 담긴 에세이여서 그런지 마스다 미리가 마치 내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 수록 위로를 받았다. 내가 힘들 때마다 한 번씩 만나서 내 고민을 다 털어 놓으며 기대고 싶은 언니, 현실 세계에는 없지만 이제 내 책장에 생겼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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