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 <아이스크림,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나는 아이스크림을 제일 좋아한다. 일이나 사람에 많이 치인 날이나 가슴이 답답할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면 하루의 고됨이 같이 녹는 것 같다. 시중에 파는 아이스크림은 물론 젤라또도 좋아하며,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커피나 디저트도 좋아한다. 여름보다 겨울에 더 아이스크림을 찾는, 진정한 아이스크림의 제철이 겨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제목부터 매력적인 책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이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다니. 나보다 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어떤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썼을까 궁금해졌다.
글은 아이스크림 먹듯 쉽게 쉽게 읽혔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흔하게 파는 아이스크림부터, 배스킨라빈스, 하겐다즈까지 다양한 아이스크림에 얽힌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생각이 적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한 아이스크림에 대해서 침이, 아니 펜이 마르도록 칭찬할 땐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사먹어 보기도 하고 추억의 아이스크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나도 그 때의 추억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나라면 어떤 아이스크림에 대해서 어떤 글을 써볼까 생각했다. 슈팅스타나 레인보우샤베트, 엄마는외계인 등 배스킨라빈스에서 자주 고르는 맛에 대해서 쓸까, 메로나, 엔초, 빙빙바 등 어렸을 때 자주 먹었던 아이스크림에 대해서 쓸까, 아니면 옛날에 너무 좋아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와쿠와크나 키위아작에 대해 쓸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여러 제품이나 주제가 생각나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엄마다. 엄마도 나만큼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매일 밤 냉장고 문을 열어 아이스크림을 두어 개 먹던 엄마. 그 때 엄마가 자주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앙꼬바나 빙빙바, 비비빅이었다. 늦은 시간에도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로 '전원일기'를 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러던 엄마가 위암에 걸렸을 때, 역시 밤에 아이스크림 같은 걸 먹어서 그런 게 생겼다면서 아이스크림을 탓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 여러 고민과 외로움으로 잠들지 못해서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을 때가 있었다. 그 때의 엄마처럼 나도 늦은 밤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이다. 그 순간 엄마 생각이 나면서 아이스크림이 엄마의 건강을 방해했던 게 아니라 오히려 위로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의 엄마도 힘들었구나, 그리고 외로웠구나, 그때 곁에 있던 것은 아이스크림밖에 없었구나. 지금의 나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쇼파에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수다를 떨던,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오면 스푼으로 조금씩 아껴가며 먹던 그때의 엄마와 내가 생각나 울적해졌다. 이제는 영원히 할 수 없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엄마와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라면 밤늦게 아이스크림을 찾아야 했던 엄마를 좀더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더 비싸고 좋은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을 수 있을 텐데. 이런 아쉬움을 아이스크림과 함께 녹여 보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