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 <납작한 말들>
'누칼협'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때, 이렇게 험한 말도 유행어가 되는 구나 싶었다. 누군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면 건설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라고 당사자 책임으로 돌리는 것. 이것만큼 잔인하고 몰상식한 말이 있을까.
하지만 의외로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마음 속으로 '누칼협'을 외치고 있다. 육아로 힘들어하는 주부에게는 '누가 애 낳으라고 했냐'라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불편하다고 데모하는 장애인에게는 '몸이 불편하면 밖에 나오질 말아야지'라고, 취업이 잘 안 돼 힘들어하는 지방대 학생들에게는 '억울하면 너도 열심히 공부 했어야지'라고 말을 꺼낸다. 이들의 속사정이나 고착화된 사회적 문제를 고려한 풍부한 말이 아닌, 자신의 입장과 가치관으로만 구성된 납작한 말들을 던진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누칼협'으로 끝날 문제일까? 육아, 장애인 이동권, 취업난 등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 중 일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이것을 인지해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사람들은 해당 문제의 원인을 당사자 탓(구체적으로는 당사자의 '노오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며 사회가 아닌 개인을 비난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른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을 탓한다. 그렇게 한국의 자살률은 2024년 기준 1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개인을 비난하는 건 쉽지만 사회를 바꾸는 건 어렵다. 그리고 남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쉽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 개인의 능력과 선택을 탓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편견으로 둘러싼 성 안에 갇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 서로를 탓하고 자신을 책망하고, 배려받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사회는 더 불행해진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개인이 아닌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겪는 불편함을 계속해서 표현하고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외쳐야 사회가 바뀐다. 그리고 타인의 불편함을 잘 듣고 이들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생각 없이 내뱉은, 혹은 나름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며 내뱉은 말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반복되면 대단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서로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작가는 "좋은 사회란 어떤 개인이 대단한 결심 없이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다"라고 말한다. 이 주장에 대해 몇몇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아니냐고, 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공산주의적 생각을 하느냐고 작가의 정치적 성향을 의심한다. 이 책에서도 작가가 여러 번 이 부분을 언급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말 자체가 '인종, 성별, 신분, 신체 조건과 무관하게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고유한 가치'라는 뜻이다. 언제부터 인간의 존엄성이 서울대를 다녀야, 대기업을 다녀야 누릴 수 있던 것이었나. 태어날 때부터 전투적으로 노력해서 서울에 자가가 있고, 대기업을 다니고, 부장 정도의 직급을 가져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이 경로를 이탈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이렇게 그럴싸하게 글을 적는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마음 속으로 '누칼협'을 말하며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외면한 적이 많았다. 이동권을 주장하며 출근길을 방해하는 장애인에게 짜증을 냈었고, 서울 취업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억울하면 서울에 살든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마음 속으로 했었다. 이들의 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지 깊게 듣지 않았고 어떤 점이 사회적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렇지,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었지'라고 깨닫게 되었다. 또 책에 나온 여러 사례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있구나, 이런 불편함도 있을 수 있겠구나, 이런 것들이 편견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배웠다. 그러면서 개인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기 보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 보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울에 자가를 가지고 있지 않고, 대기업에 다니는 부장도 아니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존중받고 행복하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