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가면산장 살인사건>
최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찐팬에게는 죄송하지만 최악이었다. 팬이라고 할 정도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히가시노 게이고에 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 '너무 자주 읽어서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에 익숙해져서 진가를 못 알아보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은 최악이었다.
앞의 전개는 흥미진진했다. 한 남성의 약혼자가 의문의 교통사로고 사망한다. 이후 그 남자는 약혼자의 가족들과 다른 인물들과 함께 별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은행을 털고 도망친 2명의 범인이 별장에 침입한다. 이들은 별장에 있던 사람들을 인질로 삼고, 그러는 중 여러 일이 발생한다.
갑자기 나타난 범인의 존재에 '잉?' 싶었다. 의문의 사고에 대한 추리는 어디로 가고 범인 2명이 등장해 인질극이 시작된 것이다. 갑자기 이건 무슨 흐름이지 싶었다.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 의미가 있어서 넣은 것이겠지 싶었다.
적어도 그 별장에서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할 때만 해도 흥미진진했다.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고, 외부인이 칩입하기 힘든 상황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그렇다면 결말 쯤에는 뒤통수를 세게 칠만한 충격적인 결말이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별장 내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전개는 이전과 달리 지지부진했다. 별장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과 더불어 약혼자가 일반적인 교통 사고가 아닌 살해됐을 가능성까지 고려해서 범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범인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도 잘도 떠들어댔다. 범인에게 시체를 떠넘기려고 하다가 되려 사태가 심각해진 장면에서는 화까지 났다. 왜 저렇게 불필요한 일을 할까 싶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입장에서는 독자들을 충격적인 결말로까지 데려가기 위해서 전개를 질질 끄는 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무미건조한 모래 바람이 불지라도 끝에는 분명 오아시스가 있으렸다. 이렇게 생각하며 지루한 추리 과정이 담긴 장면을 참고 읽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오아시스라고 데려간 곳에서 나는 맘껏 물을 마실 수 없었다. 나에게 그곳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형체가 없는 신기루와 같았다.
일장춘몽.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가장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도 안 되는 글을 써도 결말 부분에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꿈이었다라고 하기만 하면 용서되기 때문이다. 이 글도 마찬가지였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지지부진한 추리 과정과 이해가 안 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허무한 결말로 마무리해버렸다. 설령 결말이 일장춘몽이다 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전개가 이해가 되는 수준이어야 했다. 왜 이 인물이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었어서 실망감이 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히가시노 게이고 책에서는 충격적인 결말과 함께 이전의 내용들 속에 사건의 단서가 있었다는 흐름으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책장을 거꾸로 넘기면서 그래서 그랬구나, 이런 말을 했었구나 이런 것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책은 그렇지 않았다. 이 결말을 보려고 내가 여러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사연을 되새기면서 범인에 대한 힌트를 찾으려고 했던가. 나의 노력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읽으면서 항상 만족했었으니까 이 책도 크게 기대했지만 그만큼 실망감이 컸다. 내가 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지저분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일장춘몽으로 도망가는 소설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돌아올 때까지 당분간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읽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