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냄새

가난의 냄새와 그리고 나

by 정남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첫 비 냄새.

처음 놀러 간 펜션 야외 바베큐장 장작 냄새.

아직도 장소와 시간을 냄새에 빗대어 기억을 더듬곤 한다.


어릴 적 생활을 돌아보면 가난의 냄새가 많이 기억난다.


아주 어릴 때는 누구 하나 나에게 집의 경제사정이 힘들다는 걸 이야기하지 않아서 잘 몰랐기도 했고,

옷을 사는 경우보다 물려 입는 경우가 많아서 약간의 서러움이 있는 정도였다.

약간의 서러움 정도라 명확한 냄새로 기억되진 않는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고, 머리는 점점 커져서 친구들의 스포츠 브랜드의 새 신발과 새 옷들이 내 것과는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것들에 비교되는 시장에서 산 짝퉁 신발과 어디선가 얻어 온 회색 후드티.


특히 집 화장실을 가는 것을 싫어했다.

동네에 몇 없던 집 밖 푸세식 화장실로 갈 때마다 각종 벌레들과 지독한 냄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이런 냄새를 잡기 위해 집안은 나프탈렌의 진한 냄새가 여기저기 배어있었다.


한 번은 외삼촌네 식구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는데, 화장실을 보고 기겁을 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내가 왜 이런 집에 살아야 하는지 누구 하나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왜 가난해야 되는지,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을 듣기 전 몸으로 온전히 겪었다.

으레 그렇듯,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깊은 사정은 이해하기 힘들뿐더러, 잘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어머니도 일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현실을 더욱 뼈저리게 깨달았다.


가난은 어린 내게 냄새와 함께 강한 기억을 남겼다.


어느 가정에서나 있는 가난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는 일반적이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시에 우리 가족은 달동네 언덕 꼭짓점에 있었다.

예전 집이라 방도 하나에, 씻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부엌도 모두 구식 형태에 겨우 가스레인지 하나 들어가 있는 모양새였다.

마당이라는 구색을 갖추고 있지만, 콘크리트가 여기저기 깨진 관리가 덜 된 모양새로 기억한다.


마당의 쓰임새는 보통 빨래를 말리거나, 작업을 끝낸 통발을 쌓아놓는 용도로 쓰였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래전부터 우리 가족은 통발 작업을 해야 했다.

통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지막 사람 손으로 꿰매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 일감을 가정에 배달해 주고 작업완료 된걸 기준으로 일정 부분의 수수료를 받았다.

누나와 나는 저녁마다 작업을 도왔고, 한 개당 백 원 남짓한 돈을 집에다가 벌어 줄 수 있었다.


그즘에 우리 달동네 언덕에 아파트가 들어왔다.

지금으로 따지면 큰 아파트는 아니지만, 어린 나에겐 그렇게 큰 콘크리트 건물은 산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아파트에는 초등학교 친구 몇 명이 살았는데, 제일 앞 동에서는 우리 집 마당에서 무얼 하는지 훤히 다 보였다.

마당 한편에는 빨래가 걸려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통발이 쌓여 있었다.


그 아파트 쪽을 바라볼 때마다, 저 집이 친구들이 보지 않을까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저 안의 사람들은 우리 집을 보고 싶을 때 훤히 들여다 보고 수군수군 댈 것만 같았다.

알게 모르게 내 학교 생활은 자신감이 없어졌고, 성격부터 친구들 관계까지 조금씩 날 변화시켜 갔다.


남의눈을 의식한 시점부터 가난은 나에게 거슬리는 존재가 되었고, 가난의 냄새와의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