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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평 Jun 14. 2020

(4) 몽마르뜨 산책법

몽마르트르 언덕엔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잠을 제대로 설쳤다. 파리에 온 첫날밤, 시차 적응에 실패한 것이다. 새벽 3시, 5시, 7시... 살짝 잠에 들었다 싶다가도 눈이 자연히 떠진다. 아무리 여행이 기대된다지만 이건 좀 아니라며 행복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오늘따라 가벼운 눈꺼풀을 원망해봐도 결국 실패. 오전 9시, 잠에 들지도 깨어나지도 않은 애매한 몸뚱이를 이끌고 예정보다 빠르게 하루를 시작한다.


서울이라면 열대야와 찜통더위가 끊이지 않을 8월의 허리께, 창밖으로 보이는 파리지앵 노부부는 긴팔에 긴바지 차림이다. 나도 오늘부터는 프랑스식 계절을 따르기로 한다. 긴소매 블라우스에 긴치마를 대충 둘러 입는다. 잠을 설쳐서인지 눈은 새우깡 두 개를 붙여놓은 모습이다. 퉁퉁 부은 눈을 위아래로 쭈욱 잡아 뜯으며 아침부터 시끌벅적한 호텔 로비의 단체 관광객 틈을 빠져나온다.


숙소에서 나와 앞을 찬찬히 살펴보니 풍경이 어제완 새삼 다르다. 머리 위엔 파란색의 일부만 남아있고 온통 허여멀건 먹구름뿐이다. 빌라주도 생각보다 생동감이 없다. 명색이 빌라주village라고 하니 카페 테라스에 편안히 걸터앉아 흐릿한 종이 신문을 보는 파리지앵을 기대했건만. 일상인들의 바쁜 발걸음만 보인다. 일터에 찾아가는 파리지앵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울에 두고 온 나의 어여쁜 동료들이 떠올라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아이고 안타까워서 어쩐다? 후후.


오전 아홉 시의 커플




메트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파리의 지하철, 메트로에 몸을 실어본 사람이라면 그 탁 트인 시야를 알 테다. 열차 통로에 별도의 문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가장 앞의 열차에서 가장 뒤의 열차까지 볼 수 있다. 열차는 아코디언을 닮아있고, 그 통로는 풀무와 비슷하다. 그러니까 아코디언의 건반과 베이스 사이 주름진 바람통 말이다. 그 요상한 통 속에 들어앉아 풍경이랄 것도 없는 파리의 일상을 차분히 머릿속에 담는다. 일주일 뒤면 다시 그리워질 저 무지개색 의자와 나보다 눈코입이 큰 이곳의 사람들을.


허락된 시간이 짧았으므로 일정은 대부분 서울에서 계획한 대로 흘러갔다. 엑셀 속 비좁은 행과 열을 뚫고 나온 가장 첫 번째 장소는 몽마르트르Montmarte였다. 우리가 머무는 베르시 빌라주가 요즘 핫 피플들의 성지라면, 몽마르트르는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돈은 없지만 아름다움을 사랑하던 화가와 작가, 무용수와 사교계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었다. 그 시절 몽마르트르의 무도회장과 선술집, 아틀리에와 카바레의 단골들은 지금까지도 낯이 익다. 독하디 독한 압생트의 찌릿한 냄새를 풍기는 남자가 있다면 고흐일 것이다. 노동자들의 춤사위를 보고 웃는 그는 틀림없이 르누아르다.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피아노를 치는 안경잡이는 에릭 사티다.


메트로 2호선 Blanche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곧바로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물랭 루주Moulin Rouge다. 지금으로부터 131년 전에 문을 연 댄스홀이다. 커다란 빨간색 풍차가 대문을 지키는 이곳에서는 자크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이 간단없이 흘러나왔다. 그 음악에 맞춰 제인 아브릴은 다리를 번쩍 들어가며 캉캉춤을 추었고, 툴루즈 로트렉은 자신의 단골 지정석에 앉아 춤추는 제인을 포스터로 그려냈다. 이 경사진 골목은 그들이 즐기던 지독한 낭만이다. 신체와 정신의 결핍도 막지 못한 예술에의 몰두이다. 다만 어떤 철옹성도 영원할 수는 없는 법. 예술가들의 황금기는 한 세기를 돌아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 책자로 소비되고 있었다.


빨간 풍차의 전경
그 앞에서 각자의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조금 출출하지 않아?”

풍차 앞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을 때 K가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아차 싶어 앞뒤 좌우를 살펴보니 아직 문을 연 카페가 없다. 급한 대로 근처 맥도널드에서 맥머핀과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풍차가 잘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이곳의 터줏대감인 비둘기 떼에게 기죽지 않으려 빵부스러기 하나도 남김없이 해치운다. 아쉽지 않게 배를 채운 뒤 택한 장소는 몽마르트르 묘지였다.


몽마르트르 묘지는 페르 라셰즈 묘지, 몽파르나스 묘지와 함께 파리 3대 묘지로 꼽힌다. 넓은 면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유명인들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몽마르트르 묘지에는 에드가 드가, 귀스타브 모로, 자크 오펜바흐, 스탕달 그리고 에밀 졸라가 기다리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넓은 구역에 걸쳐 숨어있는 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보물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여행에 임한다. 공원 초입에서 제공되는 코팅된 안내도를 쥐어 들고 곳곳을 누빈다. 그러다 보면 내 앞을 지나는 익명의 행인은 곧 동료가 되어 묻는다.


"혹시 드가의 묘 찾으셨나요?"

"오, 방금 다녀오는 길이에요. 이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엉성하고 시끄러운 철교를 거쳐 도착한 묘지는 이 세상의 공간이 아닌 것처럼 고요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오고 가는 새들의 지저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이 나의 귓가를 간지럽힌다. 생소한 것은 분위기만이 아니다. 묘의 모습도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형태다. 기도실에서 집, 동상, 평범한 비석까지 다 다르다. 무덤의 주인과 그 가족들의 색을 반영하듯 각기 다른 형상에 눈이 심심하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고양이들과 함께 나의 예술가들을 찾아 헤매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른다.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묘지엔 꼭 가본다는 작가 김영하의 심정을 알겠다. 먼지와 소음에 북적이는 명소, 상인과 관광객들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거리, 젊은이들이 시원하게 맥주파티를 여는 공원까지. 공동묘지는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다.


일단 조용하죠. 고요합니다.
산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유명한 관광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도시가 주는 온갖 소음에 지치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때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죠.

- 김영하, 알쓸신잡 시즌3


묘지의 고요함에 자연스러움을 덧대어주는 책 읽는 어르신
자신만의 근사한 집에서 쉬는 영혼들과 그들을 둘러싼 무성한 나무를 느낀다
여기저기 보이는 냥님들에게 시선을 빼앗길 수도 있다
에드가 드가는 이제는 푹 쉬고만 싶다는 듯이 나무 뒤편에 숨어 있다




"잠깐만. 꼭 들려야 할 곳이 있어.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정표도 제대로 없을 이곳을 찾기 위해 구글 지도를 켜 주소와 GPS를 확인한다. 목적지는 1886년부터 1888년까지 반 고흐 형제가 살았던 집이다.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도르 반 고흐가 둘도 없는 형제였다는 것은 고흐 형제의 수많은 팬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빈센트는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수가 총 668통에 달할 정도로 그들의 유대는 남달랐다. 유일하고도 영원한 지지자 테오와 함께 했던 몽마르트르에서 빈센트의 일상은 사교와 정열, 독한 술로 채워졌다. 그림 세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가족이 있는 누에넨에서의 그림은 어두운 색조로 가득했던 반면, 몽마르트르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빈센트는 선명한 녹색과 청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대표하는 색인 노란색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이 호시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비로소 나 자신으로 돌아간 것 같다.’


호텔 Terrass를 지나 레스토랑 Le Basilic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니 파란색 대문이 금방 보인다. 사연 있는 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명판이 떡하니 붙어있다. 4층 창가를 바라보는 나에겐 자꾸만 다른 모습들이 떠오른다. 간단한 캔버스와 화구를 챙겨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빈센트의 말간 표정이. 파아란 대문을 열고 나와 언덕 골목의 카페와 술집을 누비는 그의 뒷모습이 내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았다. 그가 이런 말을 건네는 것도 같다.


"기억하게. 자네에게 유일한 등불이 되어줄 이는 오늘 자네 옆에 있는 가족이라네."

 

여러 번 덧칠한 파란색 문이 인상적인 반 고흐 형제의 집




몽마르트르 언덕의 최고 명소를 꼽는 일은 어렵지 않다. 초록창에 '파리 여행 지도'를 검색해 나오는 이미지들의 공통점은 18구에 성당 캐릭터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이다. 상아색의 성당은 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비잔틴 양식으로 돔 모양을 하고 있다. 성당의 유명세만큼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줄을 지어 오르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얼음물과 팔찌를 파는 상인들부터 피부색과 말씨가 각기 다른 관광객들까지. 그렇게 성당 앞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성당에 입장하는 줄은 빙글빙글 돌아 수십 명을 거친 뒤 내 앞으로 이어진다.


"꼭 들어가야 할까?"

"글쎄, 성당이 거기서 거기 아닐까 싶은데. 너무 번잡하고 말야."


K의 쿨한 동조에 신이 나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파리 전경을 눈에 담고자 언덕을 완전히 내려오기 전에 계단에 잠시 걸터앉아 물을 나눠 마신다. 지나가는 고국의 여행자들에게 ‘저..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라는 심심한 말을 걸어 이 여름 파리에서의 사진을 남긴다. 역시 사진은 한국인이다. 탁 트인 시야에 익숙해져 눈이 시원해질 때쯤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우아한 모습은 언덕 아래 멀리서 더 잘 느껴질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언덕을 마저 내려온다. 우리는 미련 없이 부르델 박물관으로 향했다.


언덕 아래에서 바라본 상아빛 성당의 모습
언덕 중간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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