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제겐 쉬어가기 너무 좋았네요.
요즘 나는 많은 것들에 욕심을 부리고 있다. 이렇게 욕심나기도 오랜만이었다.
아침에 프레드문트 말릭의 '경영의 본질'을 읽다가 머리를 울리는 문장을 봤다. 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밖에 없다는 결과지향적인 내용을 풀면서, '결과'가 지닌 의미를 설명하면서 나온 내용이다.
30년 간 양육과 교육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대학을 졸업한 내가 이 세상에 빚진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는 인풋 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기들은 이렇게 묻는다. '내가 태어난 이 세상은 내게 무엇을 빚지고 있을까?' 아기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아기를 태어나게 했으니, 우리는 아기에게 영양을 공급해주고 안전하게 양육을 하며 사랑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아기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15-25세 정도가 되면 이와 같은 질문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세상은 나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을까?'가 아니라 '25년 간 양육과 교육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대학을 졸업한 내가 이 세상에 빚진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p.100)
경영에 대한 어떠한 맥락을 다 생략하고 해당 문단은 나에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기존에 샤르트르 "기투존재"에 대한 철학을 따른다. 즉, 인간 실존에 대한 내용인데 인간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스스로 본인의 삶을 만들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로 살자는 그런 내용이다. 이러한 가치관으로 살아오면서 세상에 자유롭고 내 의지대로 살라고 선고된 '나'라는 대상은 모든 것을 선택해왔기에 감사할 대상은 오로지 '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던져진 내가 되려 이 세상에 빚지며 살고 있다는 것은 감히 내가 상상조차 못한 그런 내용이었다. 해당 내용이 나를 불편하게 했냐?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의 삶을 회고하고 점검할 시간을 주었다. 태어날 때는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온 게 아닌데..' 하는 의문으로 살아오면서 커서는 이제까지 누린 것들이 특권이자, 혜택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세상에 보답할 때'라고 인식을 하게 하는 첫 두드림인 셈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요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하면서 욕심을 부리고 있다. 인간관계, 건강, 취미, 일 등등. 이러한 것들도 어떻게 보면 내가 누리고 있는 세상이 준 혜택이 아니었을까. 하나라도 놓칠까, 뻇길까 아둥바둥하면서 챙기면서 세상에 줄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거창하게 '세상'이라고 하지만, 좀 더 좁혀보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반성이다.
욕심의 크기는 줄여지지가 않고, 욕망의 깊이는 깊어지는 요즘, 너무나도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다는 확신으로 매일매일이 기대의 연속이었다. 이래도 되나싶을 정도로. 제한된 지식으로 세상을 봤을 때 보이는 것만 보기에 마냥 행복하고 평화롭더라. 그런데 오늘은, 그동안 내 세계를 지켜왔던 한 커튼을 걷은 느낌이다. 다른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겠끔.
오늘 받은 충격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구체화하여 푸는 것이 서툴지 모른다. 그렇지만, 최대한 내가 느낀 떨림에 대해서 가장 잘 풀 수 있는 수단이 이렇게 남기는 글이더라. 거창하게 풀었지만, 지금의 멍함과 공허함을 남길 수 있는 수단이 글이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