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날들은 나에게 독약이다.
고양이 쿠로랑 방구석에 보내는 추석 연휴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의 24시간은 나의 24시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평균적으로 새끼 고양이는 16시간 이상을 잔다고 한다. 하루의 절반을 잠으로 보낸다. 서른 살인 나는 18시간 정도를 잤다. 같이 잠을 자던 쿠로가 이런 집사가 있나 싶을정도로 쳐다보다가 옆에 와서 깨울 정도다.
잠
잠은 무엇일까. 인간은 죽을 때 돌아보면 잠자느라고 인생의 1/3을 쓴다고 한다. 이번 추석 연휴, 나는 5일치 휴일에 3일치를 잠을 자느라고 쏟은 듯하다. 어려서는 잠은 죽어서 자라고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었고, 커서는 잠은 나중에라도 잘 수 있으니깐, 취업 준비를 한다고 미루고, 취업해서는 승진한다고 미뤄온 게 잠이 되었다. 푹 잔 연휴의 잠은 달달했다.
명절
추석 연휴, 명절. 왜 남들 다 가는 고향을 안 내려가고 하다못해 해외여행이라도 안 갔을까. 끌리지 않아서. 내 알고리즘에 선택을 받지 못했다. 우리 가족의 명절은 한달 전부터 시작한다. 설이나 추석 같이 긴 연휴가 있는 날은 표 예매도 빡세고, 여행계획하는데도 숙박이니, 비행기니, 식사니 다 비싸진다. 우리 가족이 선택한 전략은 한달 전 여행이다. 그래서 친척 분들과 함께 한달 전에 안면도 여행을 가서 5일을 푹 쉬고 왔다.
여행
여행, 언제부터 나는 백팩을 매고 훌렁 떠나는 그런 일상을 저버렸을까. 스무살부터 스물 일곱, 여덟까지는 세계는 내 무대였고, 여권은 나의 입증물이었다. 수없이 찍은 도장과 붙인 비자들은 마치 내가 쌓아올린 훈장이나, 상장같았다. 어려서는 그것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릴만한 자랑거리였고, 커가면서는 그런 여행보다는 멍떄리고 숨통이 터지는 곳을 찾아서 가게 되더라. 최근에는 류시화 작가의 책을 보면서, 여행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게 되었다. 내게 떠남은 세상과의 회피였고, 그렇기 때문에 스무살때는 부딪힐 용기가 없어, 매년 회피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서른인 지금, 여자라면 직진아닌가.
서른
서른, 윤석열 덕분에 만으로 스물여덟, 세계나이로 스물아홉, 눈치보면 서른이라고 할 수 있는 운수 좋은 95년생. 나이는 거져먹는게 아니라, 먹어가는 게 아닐까. 마흔이라도 어린 사고와 성숙치 않은 마음이라면 열세살이라고 보고, 열아홉이라도 세상에 대한 개방성과 마음가짐이 크다면, 서른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 말이다. 한 해 한해가 가면서 나이를 그저 먹는게 아닌,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가져갈 수 있는 특혜이자, 자격증같은 것 말이다. 나이를 꽁으로 먹은 게 아니라는 게 요새 느껴진다. 쌓여가는 글들, 느껴지는 체력, 늘어가는 수면시간. 그래 나는 제대로 먹어가고 있구나.
다시 돌아가, 고양이. 쿠로랑 어서 다시 자러가야겠다.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듯한 이런 고요함이 난 좋다.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시끌벅적한 소음을 내는 알람이 싫다.
그냥 혼자 뒹굴거리면서 쿠로랑 눕는 오늘 내 방구석 하늘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