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강연, 그리고 내가 느낀 것들에 대한 회고
2025년은 이전까지 느꼈던 시간의 흐름과 삶의 깊이가 달라지는 해인 듯하다. 어제까지 3월을 보낸 듯한데, 벌써 6월이 되어있더라. 가속도가 붙은 시간 속에서 내가 만나고 겪은 경험들은 거듭 배로 사고의 전환과 아이디어를 창조하게 한다. 내가 왜 매일매일이 기대되고 설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에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선배님의 제안으로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 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다른 분야의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풀어보는 초청강연이었다. 지난 2023년부터 '마케팅 컨퍼런스'를 온/오프라인으로 연 2회 정도 꾸준히 진행한 이력은 있었으나 주제는 항상 "업(業)"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자리는 온전히 내 이야기로 채워야하는 강연이었기에 조금 더 긴장했던 것 같다.
6/3(수)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초청강연
이번 초청 강연에서의 내용 흐름은 ‘내가 서른 살에 CMO가 되기까지 겪어온 여정’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과 같은 미니 프레젠테이션 강연 세션이라고 보았고, 청중들이 의과대 대학원생이라는 틀 안에서 기존 생활반경에서 보거나 듣지 못하는 내용들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던 것 같다.
특히, 큰 주제는 ‘경험의 확장’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기록(글, 영상, 메모 등)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많은 글보다는 여러 시각적인 자료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발표를 준비했다.몇 주간의 노력은 6월 4일(수)에 90분이라는 시간 동안 펼쳐졌고, 다양한 질의응답을 통해 나의 과정을 칭찬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를 포함해 수많은 청년들이 중력을 딛고 이기며 서 있는 동안, 각자의 색을 가지고 삶을 입증해나가며 살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발표를 마쳤다.
강연 종료 이후, 느꼈던 감정은 한국어 표현으로 가장 적절한 단어가 ‘경외로움’이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경외(敬畏)’는 깊은 존경심과 동시에 두려움을 뜻한다고 한다. 이 자리에 서서, 그리고 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쉽게 표현되지 않던 감정이었는데 끝내 찾은 ‘경외심’이라는 단어가 그날의 내 마음을 가장 정확히 표현해주었다.
강의실 앞에서 마주했던 청중들, 그리고 풀어낸 이야기들은 아마도 올해 가장 큰 추억으로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듯하다.
이번 초청강연이라는 큰 틀에서 내가 느꼈던 6월 3일, 그 날 하루에 대한 회고를 해보고자 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라는 것은,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이나 직무뿐 아니라, 지니고 있는 사고나 사명감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하다. 회사 대표님께서도 작년부터 내게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것이 ‘신념’이라는 부분이었는데, 이번 강연을 추진해주신 경희대학교 김도경 교수님과 잠깐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한 개인은 학교 졸업 이후, 여러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고 만들어간다. 예를 들어, 나를 보면, 엄마의 딸이고, OO의 친구이며, 아이기스랩의 팀장이자 이사이고, KMBA의 대학원생이며, 글·영상 크리에이터로서 하나씩 역할을 넓혀나가는 듯하다. 이 과정 속에서 각각의 역할을 관통하는 하나를 나는 ‘신념’이라 정의한다. 시기나 상황에 따라 각각의 롤(role)에 비중을 달리하며 선택과 집중을 하고, 본인만의 가치관과 명확한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 곧 그 사람을 만든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가 만나뵈었던 김도경 교수님은 산하의 연구원분들을 이끌며 제자들을 교육하는 역할 속에서, 내가 배우고 싶었던 스승이자 리더였다. (정말 다시 공부를 한다면, 경희대학교를 가고싶다..!) 마케팅이나 숏폼과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해부학 관련 대학원생들과 나와의 접점을 만들어주신 것이 가장 큰 특이점이었다. 그러나 ‘삶’이라는 접점에서는, 인간사 전반을 들려주는 이야기로 접근해주신 부분이 내게도 가장 큰 통찰이었다.
한편으로는, 제자이자 연구원분들인 대학원생들이 어떻게 나아가고 성장하길 바라는 기대감(나는 이것을 ‘꿈’이라 본다)도 구체화하고 계셨다. 성인이 되어서도 꿈을 꾸고, 이를 함께 만들어갈 팀원들을 뽑고 같이 성장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교수님께서는 정당한 직책과 이상적인 꿈을 꾸며, 의학에 대한 깊은 생각들을 상세하게 보여주셨다. (여러 논문이나 해부학 관련 이야기들을 자세히 풀어주셨는데, 정보의 정확성을 위해 여기서는 간단히 생략해본다^^)
이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코로나 시기 당시 직접적인 실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방법(VR)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갔다는 이야기였다. 좋든 나쁘든 상황은 계속 변하지만, ‘방법’을 고민하고 학생들이 교육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결해나가셨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고, 동시에 교수님이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도 보였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 실습 수업을 VR로 도입한 교수님]
https://www.yna.co.kr/view/AKR20230929038800004
[경희대학교 산학협력단] 김도경 교수님 관련
https://www.youtube.com/watch?v=oYe0Z7kQDZI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인생이 뭔가 힘들게만 느껴질 때 ‘하루의 감사한 일’을 하나씩 적어보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동안 나는 ‘감사함’이라는 감정이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느끼는 것이라, 괜히 엄숙하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은혜나, 매일 숨 쉬며 마주하는 공기의 소중함조차 무심히 지나쳐온 시간이 길었던 듯하다.
그러던 중, 작년 말부터는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더 자주 쓰게 되었고, 매일 밤 일기를 쓸 때도 짧게나마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하루의 감사한 일을 3가지씩 간단히 적어보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은 팀원이 내 머리 스타일이 달라졌다며 밝아보인다고 해주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대표님이 탕비실에 여러 종류의 과자를 채워두셨다. 그래서 너무 감사했다. 납기일에 맞춰 콘텐츠가 모두 업로드되어 캠페인이 무사히 종료되었다. 그래서 너무 감사했다… 이런 식으로.
이번 초청 강연에는 의과대학 대학원생들과 교수님들이 청강자로 오셨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강연 중에 나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청강자분들이 정말 인상 깊게, 집중해서 들어주셨다. 발표를 하면서도, 내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신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감사했다.
나를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였고, 그 청중이 교수님과 대학원생 분들이라서, 그날 나는 수백 번, 수천 번 ‘운이 참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첫 강연을 마무리할 때, 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받았고, 격려와 응원을 함께 받았다. 강연 이후에도 많은 분들이 질문을 주셨는데, 그 모든 질문들이 내겐 마치 ‘강연평’ 같았기에 더욱 흥분되고 즐거웠다.
다시한번, 바쁜 시간을 쪼개서 한 공간에서
웃고 고민했던 시간들을 보낸 청중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시 날씨가 정말 좋았다. 든든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강의실로 향할 때,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날씨는 선선했다. 여름이 깊어지기 전에 마주하는 시원한 날은 모든 것을 행복하게 만드는 듯했다.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들은 적이 있다. 행복감은 자율성의 증가, 유능성(성장한다는 느낌)의 충족, 그리고 연결성의 증가, 이렇게 세 가지가 함께 충족될 때 가장 크게 느껴진다고. 아마 나는 이 종합 선물세트 같은 세 가지를 한 번에 느꼈기에, 그날의 강연이 지금도 머릿속을 맴도는 게 아닐까 싶다.
강연을 마치고 나서 오히려 긴장감이 풀렸고, 날씨가 좋아서 회사 복귀를 늦췄다. 화창한 하늘 아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오늘이 그저 벅차고 기뻤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던가, 삶은 연속적인 투쟁이라고. 삶은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던 그였지만, 어쩌면 그의 내면에는 삶을 절실히 살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에 그런 말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도 그때 강연을 마치고 나서는, 이 투쟁을 더더욱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의지가 커졌다. 강연 중, 누군가 “본인 꿈은 무엇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답했다. “저는 꿈이 없어요." 거짓되거나 과장된 말보다는, 가장 솔직하고 진솔한 말을 하고 싶었다. 질문자가 기대하던 답변이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지금도 나는 내 꿈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내 삶을 ‘잘’ 살고 싶어졌고,
‘제대로’ 만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게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래서, 날씨만큼 좋았던 그날이 지금도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