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랑해, 사요나라> 홍선혜 감독 인터뷰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문득 지나간 인연이 떠오르는 계절. 지난 24일 일본에 계신 홍선혜 감독님과 화면 너머로 사랑 그리고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서툴고 불완전하지만 서로에게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히토미’와 ‘나호’를 통해, 미처 끝내지 못했던 어린 날의 이별에 마침표를 찍은 그녀의 이야기.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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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본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감독까지 맡게 된 동기와 해당 각본이 나온 계기가 궁금합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 ‘TV MAN UNION’이라는 로고가 나오는데, 이 작품은 그 회사에서 주최한 공모전이 계기가 되었어요. 그때 감독을 직접 맡는 것이 조건 중 하나라고 해서 처음으로 연출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제일 잘 알고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어떤 경험으로 연출을 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영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제가 어릴 때 제대로 된 이별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거에 대한 불만이라고 해야 되나요? 일본어로 얘기하면 ‘もやもや(모야모야)’라는 마음에 좀 끈적하게 남아 있는 그런 느낌을 이야기하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동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비교적 빨리 깨달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주변의 시선이나 외압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채 헤어지는 일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스스로 정한 타이밍에 이야기를 털어놓고, 이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30살인데 그런 불만을 아직도 끌고 있다는 거에 대한 반성도 조금 있었거든요. 그래서 청춘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 여기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히토미’와 ‘나호’ 두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 과정에서 특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히토미는 ‘남성이 되고 싶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다만 주변에 레즈비언이라는 존재가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지켜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주변에 잘나가는 남자애를 따라 하려고 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걷는 느낌이나 취미, 말투 등을 비슷하게 하려고 했어요. 실제로 제가 그렇게 따라 했었거든요. (웃음)
나호는 사실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설정을 많이 만들지는 않았어요. 다만 남에게 의지하고, 사랑을 통해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 귀엽지만 조금은 귀찮은 여자애로 그리고 싶었거든요. 제가 그런 ‘귀찮은 여자애들’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신발끈도 묶을 줄 알면서 일부러 못 하는 척하는 그런 아이요. (웃음)
그리고 두 캐릭터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둘이 서로 좋아하는 걸로 의심치 않는 것으로 하고 싶었어요. 서로는 정말 서로를 사랑했고, 거기에 대한 사회의 불만이나 이런 걸 표현하기보다는, 그저 서로에 대한 사랑만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현재 이전의 시점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데, 그 배경에 대해 따로 설정해 두신 부분이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처음에 들어가기 전에 배우분들한테 인물 설정 자료를 드렸어요. 둘은 유치원 때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고요. 나호는 “예쁘다, 예쁘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사람들을 좀 경계하는 캐릭터로 만들었고, 남자애들이 괴롭히면 히토미가 계속 나호를 지켜주면서 친해지는 설정이었어요. 고백해서 사귀었던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인데, 나호가 히토미에게 고백한 설정을 잡았었어요. 히토미는 남녀를 불문하고 굉장히 인기가 많은 여자애라, 고백을 받으면 사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일단 고백 받은 사실을 나호에게 이야기했거든요. 그래서 나호가 거기서 질투를 느끼고, 결국 나호가 사귀자고 한 것이 제 안에서는 중요한 포인트였어요. 배우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하고 진행했습니다.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영화 속 이별의 서사가 한층 더 깊게 다가왔습니다.
플라스틱 통을 씻고, 그것을 모아 비행기를 만들고, 논밭으로 뛰어드는 그 일련의 과정이 마치 이별의 의식처럼 느껴졌거든요. 감독님께서 ‘이별 세리머니’를 구성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장면은 일종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저도 그걸 일종의 ‘세리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 사람 안에서 진짜 마침표가 찍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히토미가 했던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했냐면, 제가 생각하기에 ‘청춘’이라는 게 사실 엄청 노력하고, 뭔가 잘해보려고 하지만, 돈도 없고 능력도 부족해서 잘 안 풀릴 때가 많잖아요. 멋도 안 나고, 간지도 안 나고, 조금 쪽팔린 순간도 많고요. 어떤 멋있는 세리머니를 준비할 수도 있었지만, 실패할 게 뻔하면서도 그 애들은 너무 진지하게 그걸 하고 있으니까, 웃을 수도 없고. 그러다가 또 진흙탕 안에서 서로 웃고, 또 갑자기 울기도 하고. 그런 모습들이 제가 생각하는 ‘청춘’이랑 닮아 있다고 느껴서 그렇게 연출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며, 저 장면이 과연 ‘제대로 된 이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끝낼 수 있었을까, 친구로는 남을 수 없었을까 하는 의문도 남았고요. 결국 이건 히토미와 나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깊은 관계 속에서 ‘제대로 된 이별’이 가능할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이별’은 어떤 의미인가요? 또 그런 ‘제대로 된 이별’이 정말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사실 저렇게 크게 난리를 치고 이별 세리머니를 해도, 히토미도 나호도 결국은 서로를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히토미는 집에 돌아와 더러워진 작업복을 벗으면서도, 씻으면서도 계속 나호를 떠올릴 것 같았어요. 미련이 철철 남아있을 거예요. 어른이 되어서도 문득 샤워하다가도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해요. 근데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첫사랑이라는 것도 어떤 이별이든 청춘이 끝나면 사실은 대부분이 이별을 맞이하잖아요.
원래는 결말이 하나 더 있었어요.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나빠져서 ‘돌아오라’는 전화를 히토미가 받는 설정이었는데, 결국 그 장면은 넣지 않았어요. 왜냐면 저는 ‘좋은 이별’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좋은 이별이든 나쁜 이별이든, 서로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후의 감정은 관객들에게 맡기고 싶었어요. 저는 일단 이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이별의 순간을 제대로 담아내는 데 집중했고, 그다음은 관객이 각자 상상하길 바랐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캐릭터에 감독님의 경험이 많이 투영된 것 같은데요.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이나, 창문을 두드려 나오라고 하는 장면들도 감독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이런 장면들을 통해, 두 캐릭터의 어떤 부분을 보여주고 싶으셨는지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되게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쓴 장면들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신발끈을 묶어준다는 것이 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사실 연애 상대가 바뀌어도 데이트하고 그런 루틴 같은 것은 바뀌지 않는데 그 상황에서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식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습니다.
단편 영화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30분 안에, 그것도 초반에 잡아줘야 하는 필요성이 컸어요. 그래서 말씀해 주신 장면들을 섬세하게, 좀 더 많이 찍으면서 감정선을 보여주려고 했었고요. 배우 두 분도 촬영 일주일 전에 시부야에서 만나서, 진짜 고등학생들처럼 놀았어요. 공차도 마시고, 스크램블 교차로를 사람들 사이에서 한 번 건너보고, 프리쿠라도 같이 찍고요. 그런 시간을 가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성을 미리 쌓아두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배우분들 이야기 나온 김에 여쭤볼게요. 두 배우분 모두 정말 매력적이고, 감독님께서 그 매력을 아주 잘 담아내셨던데요. 캐스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히토미 역할의 마키타 아쥬 배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로 데뷔를 했죠. 또 가와세 나오미 감독님 작품에서도 주연을 맡았던 배우라, 일본 오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팬이었어요. 그래서 솔직히 가능성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연락을 시도했어요. 히토미라는 인물이 사실 연기를 굉장히 잘해야 하는 역할이거든요.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계속 장난으로만 표현하는데, 그 안의 감정을 표정으로 보여줘야 했어요. 그런데 마키타 아쥬 배우가 그걸 너무 잘해줘서, 제가 컷을 외치는 걸 까먹을 정도였어요. 그때 조감독님들한테 엄청 혼났죠 (웃음).
아오키 아이리 배우는 최근에 연기를 시작한 배우인데, 오디션에서 처음 만났어요. 나호는 자칫 보면 ‘쟤는 왜 저러지? 조금 이기적인가?’라고 보일 수도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걸 상쇄할 만큼 사랑스러운 배우여야 한다고 느꼈어요. 미워할 수 없는, 어디서든 사랑받았을 것 같은 배우요. 그런 감정을 일으켜주는 배우를 찾고 있었는데, 아오키 아이리 배우가 딱 그랬어요. 현장에서도 정말 밝고, 스태프들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 분위기를 살려줘서 두 배우님한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촬영했습니다.
컷을 잊을 정도로 빠져들었던 그 장면이 구체적으로 어떤 신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히토미와 나호가 집에서 싸우는 장면이었어요. 그때 히토미 배우가 눈을 네 번 정도 깜빡이는데, 자기는 어디에 있어야 되냐고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원래 그때 제가 컷을 외쳤어야 했는데, 너무 좋아서 그냥 계속 보고 있었어요. 싸우는 장면 전체가 정말 좋았어요. 편집하면서도 이걸 다 쓸 수가 없다는 것이 아쉬워서 편집하시는 분이랑도 계속 의견을 주고받았던 신이에요. 아마 최종본에서는 조금 잘렸을 텐데, 잘린 부분에서도 마키타 아쥬 배우님께서 너무 잘해주셨어요.
두 배우분들의 앞으로의 필모그래피도 정말 기대가 됩니다.
두 배우 모두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꼭 한번 일을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고. 진짜 두 배우 모두 최고예요.
사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국적이나 배경이 달라져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 두 주인공이 일본인으로 설정된 점이 궁금했는데요. 이 부분은 일본 회사의 공모전으로 시작된 제작 과정과도 연관이 있는 건가요?
맞아요. 제가 일본에 살기도 하고, 일본에서 스태프를 구하는 게 훨씬 수월했어요.
그런데 한국어로 각본을 썼다면 지금 같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모국어로 쓰면 아무래도 감정이 더 실려서 거리감을 유지하기 어렵거든요. 오히려 일본어로 썼기 때문에 영화 속 사건을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듯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일본에서 여고생으로 살아본 적이 없고,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같은 것도 대부분 영화나 책으로만 접했기 때문에 결국 이 작품을 약간의 판타지처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은 주제를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훨씬 더 어둡고, 날것의 결이 드러나는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아예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한국에서 영화를 전공하시고, 지금은 일본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두 나라의 영화 제작 환경이나 연출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은 제가 한예종을 다닐 때 학생 현장을 가도 다들 굉장히 꼼꼼하게 콘티를 그리고, 샷 리스트도 다 만들어 놓았어요. 근데 일본은 영화나 감독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콘티를 거의 안 만들어요. 글 콘티도 잘 안 만들고요.
저도 이번에 촬영감독님과 ‘이런 장면을 만들고 싶다’, ‘이런 표정을 담고 싶다’ 정도로만 이야기했고, 세세한 건 현장에서 배우들과 만들어갔어요. 일본에는 ‘단도리(段取り)’라는 게 있는데, 배우가 의상과 분장을 마친 뒤 실제 감정 이입된 상태로 리허설을 몇 번 하고, 그걸 모든 스태프가 함께 지켜본 다음, 원을 만들어서 어떤 컷을 찍을지 현장에서 바로 정하거든요. 물론 한국도 연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일본은 현장에서 생기는 에너지나 즉흥성을 더 흡수하려는 분위기가 큰 것 같아요.
저는 첫 연출이라 시행착오도 많았는데, 한 번은 해가 지기 전에 급하게 찍어야 하는 샷이 있었거든요. 배우들이 옷 갈아입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냥 메이크업하면서 설명하겠다’고 했더니, 조감독이 ‘아직 현장도 안 봤는데 어떻게 설명하냐’고 하더라고요. 맞는 말이었죠. 저는 이번 작업에서 NG가 아니면 3테이크 이상은 가지 않았어요. 대부분 1~2테이크로 갔고요. 두 사람의 어색함이 보이면서도 좀 서먹서먹함이 보이는 게 이 영화의 중요한 결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즉흥성을 좀 더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이런 부분은 일본 감독님들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후반 작업에서는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어요. 다만 제가 느끼기엔 한국은 전체적인 전환이나 리듬이 굉장히 빠른 편인 것 같아요. 반면 일본은 여백의 미를 더 중시하고, 조금 템포가 늦어도 괜찮으니까 음악 같은 것도 ‘너무 채우지 말자’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그래서 후반보다는 오히려 각본을 쓰는 방식이나, 현장에서의 접근법에서 차이가 더 크다고 느꼈어요.
그러면 연극 무대처럼 배우분들한테 자율성을 더 맡기고, 배우의 표현력을 더 존중하는 분위기인 건가요? 한국보다 그런 느낌이 드네요.
네, 맞아요. 액션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콘티를 세세하게 짜지 않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두 배우가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감정을 만들어가는지. 즉흥성을 가장 우선으로 두고 싶었어요.
각본을 쓸 때도 두 나라의 방식이 꽤 달라요. 한국은 감정선을 굉장히 자세하게 쓰고, 소설처럼 서술하거나 카메라 워크까지 표현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도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식으로 썼는데, 일본에서는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배웠어요. 그건 배우의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침해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문도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감정도 직접적으로 쓰지 않아요. ‘한숨을 쉰다’ 정도는 괜찮지만, ‘안도의 한숨을 쉰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감정을 써서는 안 된다고 교육받았어요. 물론 졸업 이후에는 현장을 겪으면서 좀 더 자세히 써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좀 더 모든 스태프들이 해석의 여지를 가질 수 있게 모든 걸 감독이 정하는 느낌은 아니에요. 감독이 탑이라는 생각보다도 감독은 정말 누군가에게 지탱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배움을 받는 그런 느낌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관객들에게 소개하신다면, 특히 어떤 점을 관람 포인트로 짚어주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또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거나 애정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애정하는 신은 나호랑 히토미가 싸우는 장면이에요. 집에 놀러 갔다가 싸우는 신인데, 나호가 히토미한테 상처를 많이 줘요. ‘학원이라도 좀 다녀오라’고 하는데, 히토미는 화가 나서 본인 집인데 자기가 도망가면서도 ‘슈퍼 케이팝 스타라도 되시라고요’라고 하는 장면이 너무 슬펐어요. 제가 쓰면서도 ‘진짜 사랑하면 욕도 제대로 못 하고, 저주도 제대로 못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요.
비슷한 맥락으로, 마지막 이별 신에서 히토미가 나호에게 진흙을 묻히려고 하다가 멈추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제가 지시한 게 아니라 배우의 애드리브였어요. 그럴 정도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사랑하면 상처도 제대로 주지 못한다는 감정이 잘 드러나서 저는 그 신을 가장 좋아합니다.
관람 포인트는 역시 ‘어떻게 이별하는지’, ‘두 사람의 이별을 좀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집중해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차기작이나, 현재 준비 중이신 작업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은 각본가로서 주어지는 일은 다 하고 있고요. 감독으로서는 연말까지 한 번, 아무런 투자 없이라도 장편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서른이 되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저는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좀 써보려고 합니다.
각본은 의뢰를 받아서 저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도 쓸 수 있지만, 감독으로서의 작업만큼은 제 섹슈얼리티나 제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비추는 거울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제 삶과 마주하는 영화를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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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흘러가지만, 홍선혜 감독의 시선은 그 흐름 속에서도 오래 머문다. ‘이별’과 ‘성장’, 그리고 ‘관계’의 잔상을 따라 걷다 보면 결국 그 끝에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남는다. 이제 그 다음 장면은 관객의 삶 속에서 이어질 것이다.
INTERVIEWER 박채원
INTERVIEWEE 홍선혜
WRITER 이다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