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지금까지의, 지금부터의 언니'들'

<언니를 기억해> 조하영 감독 인터뷰

by 정시상영단


DSC03753.JPG 조하영 감독


단편 뮤지컬 영화, <언니를 기억해>


전작 다큐멘터리 <시스터스룸>에서도 여성들의 공간을 다루었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의 공간과 역사적 차별을 다루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를 만들 때, 요즘에도 계속 거의 유사한데 여성의 이야기가 스스로 편하게 느껴지더라. 그것에 관련 된,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더 많이 생기고. 그 맥락에서 무의식적으로 <시스터스룸>과 <언니를 기억해> 모두 여성의 공간이 등장하게 된 듯하다. 여성의 이야기를 하게 됨에 있어 여성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도 함께 포함된 것 같다.



"행동이 더 이상 행동으로만 표현될 수 없을 때 춤이 된다". 영화 제작비 모금을 위한 텀블벅에 쓰여 있던 문구다. 뮤지컬 영화로 장르를 정하게 된 이유가 있나.


가장 먼저 시작한 지점은 역사적인 주제성이었다. 이 이야기를 어떤 장르로 보여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이 가능할까 생각했을 때 뮤지컬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슬프고 분노스러운 역사를 재현할 때 말이나 이미지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적인 요소가 그런 지점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극이나 무대 경험은 진짜 어릴 때 교회에서 작게 올리는 그 정도만 있었고, 원래는 공연 쪽 연출에 크게 관심을 안 가지고 있었다가 <언니를 기억해>를 계기로 조금씩 가지게 됐다.



무대에서의 몸짓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뮤지컬 영화 볼 때, 대사를 하다가 가사로 넘어가는 지점이 특히 어색했다고 한 번씩 느꼈다. 그 어색함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변주를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현장 녹음과 후시 녹음 둘 다 같은 마이크를 사용해, 대사와 노래를 부를 때 톤 자체가 갑자기 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프리 단계에서는 연습용으로도 들을 수 있도록 녹음실에서 기존 마이크로 녹음을 했었다. 현장이랑 후반에서는 둘 다 붐 마이크로 진행을 했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안무 감독을 찾기도 했었다.


안무 감독을 구인할 때는 가사를 너무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창작자를 원했다. 다양한 장르의 춤을 접하면서 몸으로 상황이나 이야기를 표현을 많이 하는 현대무용 전공이 이런 측면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현대무용 전공가분을 조금 더 우대해서 구인을 했었다.



뮤지컬 영화의 음악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우선 뮤지컬 자체를 만드는 것도 처음이었다. 고향에서부터 친구였던 음악 감독 친구에게 같이 자취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신당동에서 방을 2년짜리 계약을 해두고 같이 살았다. 제가 먼저 전반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고, 각 씬마다 어디에 음악이 들어가면 좋은지 이야기했다. 그 씬을 넘버화시키며 음악을 만들었다. 박자나 음률, 가사나 말의 수가 조정이 돼야 될 때 극본을 수정하고. 이렇게 계속 같이 살면서, 방문 두드리면서 만들었다. 제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작 지원 받은 이후로 같이 살기 시작했었다. 촬영이 21년도, 제작지원 받은 게 20년도로 기억하는데, 아마 20년도 하반기부터 22년도 상반기까지 2년 동안 같이 산 걸로 기억한다.



연홍과 연옥의 캐릭터성


홍이를 매우 해맑고 그늘 없는 캐릭터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기지촌의 위협을 간파하거나 어느정도의 눈치를 채고 있을 법 한데. 연홍 역의 윤보윤 배우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같던 아이'라고 캐릭터를 해석했다.


캐릭터에 대한 고민들을 처음에 만들 때 많이 했었다. 초반에는 이 공간에 대해서 무지하고 진실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캐릭터로 시작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홍이의 시점을 관객의 시점으로 가져가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알아가고 진실도 알게 되는 충격이랑 감정, 관계를 관객도 동일하게 느꼈으면 했다. 특히 기지촌이라는 공간 자체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아무래도 부정적인 인식이나 그들의 선택이라는 답이 돌아오더라. 모르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차근차근하게 보여주면서 역사를 전달하고 이야기를 해주려면, 홍이의 시점을 가져가서 관객의 시점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토리 안에서의 설정상 연옥이라는 언니가 홍이만큼은 공간에 대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아이답게 살아갔으면하는 마음으로 홍이를 지켜왔다. 홍이도 진실을 모른 채 아이다운 순수함을 가지고 언니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의 삶 속 슬픔 같은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 머리도 언니가 항상 묶어주고 또 반듯하게 입혀주는 언니의 보호가 없어졌을 때의 갭과 변화를 위해 캐릭터성을 그렇게 선택했다.



연옥의 죽음으로 홍이가 180도 달라진다. 죽음이 그렇게 큰 작용을 한 이유가 있을까.


이야기를 만들 때 다양한 기사들이나 사료들을 찾아봤었는데 너무 잔혹하게 돌아가시게 된 분들이 많이 계셨다.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를 보여줘야 할까 많이 고민하다가 죽음까지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나가고 싶어 한 인물인데 결국엔 나가지 못했고, 그런 분들이 정말 많이 계셨다.

미군 같은 경우에도 죽음의 장면 없이 초반만 등장하면 그냥 놀러 온 사람 정도라고 보여질 것 같았다. 한국을 도우러 왔으면서도 동시에 가해를 한 집단의 성격도 보여주고 싶었다. 너무 캐릭터가 이분법적으로 보이진 않았을까, 이야기를 만들면서 고민했다. 단편영화이어서 선택을 그렇게 했었는데.



연옥의 죽음 장면이 꽤 잔혹했다.


사실 그것도 재현함에 있어서의 잔혹성을 최대한 낮춘 거였다. 실제로는 윤금이 사건이나 다양한 여성들의 죽음에 대한 사진과 기사를 봤는데, 너무 잔혹하게 훼손되어 있는 상태로 돌아가셨다. 이야기와 역사를 전달함에 있어서 그렇게까지 보여주는 게 필요할까 고민했다. 고요하게 죽어 있었다면 미군도 실수로 한 게 아닌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잔혹한 죽음을 당했지만, 너무 폭력적이지 않게 가져갈 수 있을지 선을 정말 많이 고민해서 선택했다.

실제 기사에 미군이 자신의 체취같은 것을 감추려고 가루세제를 뿌렸다고 한다. 그래서 극중 가루세제를 뿌리다가 홍이를 발견해서 멈추는 장면에 탈탈 소리 같은 것들도 들어가 있다.



재스민 클럽이라는 공간, 소품과 미술 그리고 의상


2016년도부터 지금까지 미술감독이나 분장, 헤어 등의 미술 분야 필모그래피가 인상적이다.

<언니를 기억해>에서 색채나 미술 분야를 기획할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두었나.


시대적인 고증을 중시하면서도 그 공간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 그리고 홍이라는 캐릭터성을 살릴 수 있도록 미술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특히 홍이의 키 컬러를 붉은색으로 잡고, 만두머리를 꼭 가져가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전반적으로 인물과 공간, 미술, 그리고 컬러를 집중했다. 그래서 다른 분야들을 오히려 미술에 비해 덜 신경 쓴 것 같아 아쉽다.



홍이는 처음에 흰색/회색 상의를 입다가 언니가 죽고 나서 만두머리를 풀고 붉은색 옷을 입는다.


홍이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가장 보여주고 싶었다. 상의 컬러는 오트밀 컬러로, 극 초반에 홍이라는 인물은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하지만 분노할 때는 홍의 붉은색 컬러가 드러난다. 그리고 홍이라는 개인이 드러난다. 마지막에는 하얀색 옷을 입고 머리를 하나로 묶는다. 만두머리 때보단 더 성장하고 성숙해졌지만 홍이는 여기서 나가면 갈 곳이 없다. 결국에는 그 공간 안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다시 한번 고민하는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지금의 우리가 해야 되는 고민의 지점이라는 생각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



적당한 공간을 찾기가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재스민 클럽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나.


윤금이 사건이 일어났던 실제 클럽은 너무 오래되고 촬영의 위험성이 커서 옆에 있던 다른 클럽을 선택했는데, 그 클럽 안에서도 비슷한 사건은 계속 이어져 왔다. 위에는 빌라고 아래는 클럽인 공간이었다. 위에는 예전에 상가로 쓰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주변 건설 노동자분들이 원룸으로 묵고 있다. 촬영할 때도 실제로 거주하고 계셨다.

건물에 주인분이 계셔서 대여 관련한 협조를 구했었고 허락을 해주셔서 촬영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너무 흔쾌하셨다. 심지어 위에 있던 빈방들도 함께 빌려주셔서 대기실로도 쓸 수 있게 해 주셨다. 동두천 외에도 다양한 기지촌을 찾아 전국을 다녔다. 동두천이 그 공간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하겠다라는 생각으로 선택했다.

다른 지역의 기지촌 클럽은 아직도 주한미군분들이 사용을 하고 계셨다. 여성분들도 대부분 다 외국 여성분들이 계셨고, 리모델링도 신식이었다. 동두촌은 클럽을 이용하지 않고 남아있는 상가들도 다 빠졌다 보니 리모델링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가장 그 시대를 보여주기 적합한 공간이었어서 선택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공간을 기록하는 아카이빙 영화라고 볼 수 있었다. 극 중 재스민 클럽 공간은 빨간 줄이나 천으로 구획된 부분이 많았다. 불투명하고 모호한 경계로 공간 구성을 가져갔던 이유는.


발簾, 주렴은 공간감과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인테리어라 미술 감독님에게 요청을 드렸다. 연옥의 방에도 그런 느낌을 같이 주고 싶었다. 창문의 방범창도 구매를 해서 달았다. 갇혀있는 느낌, 군데군데 막혀있지만 바깥은 보이는 요소들을 많이 배치를 했다.

언니가 그의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없을 때는 홍이가 언제든지 오갈 수 있게 열어두었다. 언니의 방에서 각각의 행위들이 이뤄질 때는 홍이가 오지 못하게끔 문을 걸어둔다. 놀다 오라고 하거나 홍이가 클럽 안에서 일을 할 때는 잠궈두는 설정을 생각하고 썼다.


3.jpg


방 안에는 달러와 동전으로 만든 모빌도 있었다.


IMF 시절 때도 그 공간만큼은 달러가 넘쳐났다고 하더라. 언니에게는 그 달러가 생존이고 홍이와 함께 나가거나 탈출하기 위한 것이지만, 홍이에게는 언니와의 시간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홍이에게 장난감처럼 느껴지게 보여주고 싶었다.

연홍은 초반에 테이블을 쏘다니며 달러를 훔치는데 연옥이 달러를 모으는 모습을 본 홍이는, 언니한테 주고 싶기도 하고 놀 때도 사용하려고 훔친다. 그 돈이 없어지든 말든 클럽의 어른들은 그냥 잃어버렸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연홍을 혼내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그 정도의 달러가 엄청 큰 게 아니라는 공간성이랑 캐릭터성을 보여주고 싶어 넣은 설정이다. 홍이의 장난스러운 캐릭터성도 보여주고 싶어서 넣었다.



극중 초콜릿은 홍이의 달콤한 것에서 연옥의 피로 변한다.


유사한 의미로 초콜릿 소품을 시나리오 안에 넣었다. 주한미군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초콜릿이다. 주한미군이 왔기 때문에 우리가 다행히 재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교육을 많이 받기도 하고. 그런데 모든 달콤함에는 대가도 함께 따라온다. 단순한 선의로 도와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가는 계속 지불된다. 사실 전쟁도 원해서 한 게 아니라 외부의 거대한 세력들, 사상이나 국가같은 압력에 의해서 싸우게 됐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피해는 그 땅에 살고 사람들이 받는다. 그런 것들이 초콜릿에 대한 대가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소품을 넣었다.



영화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어항과 함께 나오는 성화 모양의 빨간색 물체다.



당시 주문을 할 때 쓰는 벨 같은 물체다. 들면 불빛도 나온다고. 어항 씬에서 깊이감과 액팅을 위해서 뒀던 시대적인 소품이다. 제가 렌탈 해왔던 건 조금 오래되어 불빛은 안 들어왔지만 그 시대상, 그 공간 안에선 자연스러운 물건이다.



통통 튀는 피아노 소리로 어항은 처음 등장하지만 나중에는 어항 속 금붕어가 사라진다.


기지촌 여성이 금붕어의 모티브다. 이순이나 연옥 같이 그 공간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언니분들. 그들의 의상 모티브가 금붕어였다. 금붕어는 자신이 있는 공간에 따라서 사이즈가 달라진다고 한다. 큰 개울 같은 곳에 가면 몸집이 더 커질 수 있는데, 어항 안에서 살면 평생 어항 사이즈에 맞춰서 작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들의 모티브로 금붕어를 두고 싶어서 어항도 함께 존재하게 되었다. 극 중간 금붕어가 사라지는 장면은 연옥의 죽음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죽어서야지만 그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메세지도 같이 담고 싶었다.



영화의 제작 과정, 배우 캐스팅과 연기 연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년에 걸쳐 제작이 진행되었다. 코로나19 시기에 어떻게 촬영을 진행했나.


제작 지원을 받기 전 여러 개의 기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까 말했던 음악감독 친구에게 물어봤다. 기획 중인 작품들이 있는데, 이 중에서 어떤 걸 같이 할 때 만듦에 있어서 의욕이 생길 것 같느냐. 그 친구는 그중에서 언니를 기억해를 같이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때쯤 아마 코로나19 터졌던 걸로 기억을 한다. 그래서 그 친구 자취방에 주로 있을 때가 많았다. 재학 중인 학교도 온라인 수업이다 보니까. 그러던 중 제천에서 제작 지원이 있어, 한번 같이 넣어보자고 했다. 보통은 피칭을 PD님이랑 많이 하는데 음악감독 친구랑 피칭을 같이 갔다. 제작할 때 연습함에 있어서도, 인원 제한이 계속 바뀌어 인원수에 맞는 연습실을 구했다. 배우님들도 마스크를 계속 끼고 연습하느라 힘드셨다. 그리고 음악 전공인 친구가 연습을 위해서 썼던 업라이트 피아노가 친구 집에 있었다. 피아노 방에 배우님들이 한 분 한 분 오셔서 1대1로 연습을 했다. 단체 연습 때만 한 번씩 큰 연습실에서 마스크를 끼고 연습을 했다.


1.png


촬영 중 경찰이 오는 소동도 있었다고.


건설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극중 자스민 클럽 로케이션의 주변에 거주하고 계셨다. 술에 취하신 행인분께서 촬영 현장을 구경시켜 달라고 요청해서 어렵다고 말씀드리니 경찰에 클럽 안에 아이가 있다고 신고를 했다. 물론 운영하지 않는 촬영을 위한 클럽이다. 배우님의 부모님께서도 경찰분들께 말씀을 하고 영화제에서 제작 지원도 받은 작품이라고 설명드리니, 경찰분께서 오히려 취객분을 잡아가셨다.

극 중간에 아이들이 언니들이랑 같이 노는 장면에서 콘돔 물풍선이 나오는데, 그거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무엇이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프리 때도 어머님께 어떻게 설명을 할 거라고 말씀드린 다음, 아역 배우님들께도 콘돔 물풍선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또, 언니랑 홍이가 살고 있는 방이 용산이었는데 폭우가 내렸다. 건물 실내로 폭포처럼 물이 들어와 장비방에도 물이 들이쳤다. 조명 전기 공급해주는 장비가 맛이 가가지고 장비 보수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한 회차를 거의 날리고 추가 회차를 찍었다. 진짜 쨍쨍했는데 비가 확 내려가지고.



윤보윤 배우와 김태희 배우는 무대 연기 중심으로 활동했다. 영화라는 매체 연기를 연출할 때 주요했던 부분은.


작품 자체의 전반적인 연기 톤을 하나로 통일하고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초반에 했다. 두 아역 배우님들 외에도 어른 배우님들 같은 경우는 매체 중심으로 하신 분과 공연 중심으로 하신 분들이 섞여 계셔서 매체 톤으로 가져가고 싶다라는 통일성을 두었다. 아역 배우님인 보연 배우님, 태희 배우님 모두 매체를 낯설어하진 않았다. 톤도 자연스러워서 굳이 교정할 부분은 없었다. 특히 보윤 배우님은 매체가 처음이었는데 그럼에도 정말 낯설어하지 않고 잘 소화해 주셨다. 복 받았었다.

지금 계속 같이 작업하는 이순 역할 가현 배우님 같은 경우에는 매체랑 공연을 동시에 하고 계신다. 톤이 엄청 튀거나 매체를 할 때 공연 같거나 공연할 때 매체 같거나 이런 건 없으시다. 각각의 장르에 대해 보여줌과 표현함을 많이 고민하고 연습했느냐 차이인 것 같다. 대극장, 중극장, 소극장 각각의 연기 톤이나 사이즈가 달라서 소극장 연기 주로 하셨던 분은 매체에서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기지촌 여성이라는 성적 맥락이 있는 이야기를 어린이 배우가 맡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했다.


지금 태희 배우님이 고3이고 보윤 배우님이 중3인데, 촬영 당시 두 분 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으로 배우님들 영상을 찾아보다가 보윤 배우님에게 캐스팅 제의를 드렸다. 시나리오 드렸을 때 어머님과 보윤 배우님이 너무 하고 싶고, 너무 좋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추가적인 설득이나 어려움은 없었다. 태희 배우님은 처음에 홍 역할로 지원을 해주셨는데 선야 역할로 제안을 드렸다.

배우님의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배우님이 미성년자인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지 말씀해주셨는데, 시나리오에는 오히려 홍과의 관계성이 좀 더 두드러지는 역할이라 걱정하시는 장면은 없다고 말씀 드렸다.



작중 잔인한 장면을 발견하는 씬이 홍 역 배우님에게 있었다.


창문을 열 때 백에서 찍으니까 눈을 감고 있어도 괜찮다고 했는데, 오히려 재밌고 할로윈 같은 느낌으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귀신 같이 두 손을 들며 이러고 막 다니면서 좋아하셔가지고. 최대한 케어를 하려고 한 지점이 그 지점이다. 그리고 선야 역 배우님은 춤추는 장면에서 의상을 최대한 노출 없게 진행할 수 있도록 의상 감독님께 말씀을 드렸다.



각 장면 마다의 연출과 지점


초반의 놀이터 같던 무덤이 실제 연옥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으로 변하지만 색감과 구도가 많이 차이나지 않는다.


편집 감독님이 촬영 감독님과 동일한 분이라, 촬영하면서 같이 얘기했던 부분들을 후반에서도 반영을 많이 해주었다. 무덤에서의 동일한 구도와 유사한 공간을 보여줬을 때 관객이 각각 다른 감각을 느끼고, 진실을 알기 전과 후에 감각이 달라짐을 경험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유사하게 가져갔다. 콘티 작업할 때부터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기지촌 여성분들이 묻혀 계신 곳도 서칭과 방문을 했다. 아직까지도 무연고지로 많이 남아 있는데, 당연히 관리는 안 되고 국가 소유의 땅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뭔가 그곳에서는 촬영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 노는 등의 씬들이 있다 보니, 유사하게 그냥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당시 학교에 야외 촬영장이 있어서 학교 옆에 같이 있는 산에 무덤을 여러 개 만들었다. 무덤 팻말의 숫자들은 기지촌 여성들의 보건증 번호다.



작중에서 미군 혹은 남성 인물의 얼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공간 안에서의 여성들을 조명하고 싶다라는 의지가 컸다. 그 외의 다른 인물들은 여성들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주변 정도로 보여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홍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과 심적인 교류를 쌓아왔던 언니들이다. 언니들이 이제 더 많이 등장하는 게 스토리 안에서도 자연스럽다라고 생각을 했다. 작년에 찍었던 작품도 유사한 지점이 있다. 조명되어야 할 부분과 조명되지 않아도 될, 오히려 배제시키고 싶은 부분을 나누어 놓은 게 그렇게 드러난 것 같다.





영화의 포스터 디자인 때 '누군가의 이야기보다 모두의 이야기로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언급했었다. 공감과 이해를 끌어내려 특히 공을 들이거나 고민한 컷이나 신이 있는지.


가장 마지막 부분, 홍이가 혼자 앉아있는 씬에서 관객들에게 어떤 생각과 감정을 요구하려 했다. 그전까진 홍이를 계속 따라갔다. 마지막은 함께 앉아있게 된다. 홍이도 앉아 있고 관객들도 다 같이 앉아서 이 이야기와 역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감정을 돌아보는 순간으로 잡았던 신이다.

언니의 죽음 이후로는 동적이던 이미지들이 정적으로 변화하는데 오히려 그 대비를 통해서 관객들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겠다고 의도하긴 했다. 홍이가 원래 놀 때는 디지털 줌도 들어가고 빠르게 전환되던 이미지들이, 똑같은 구도에서 거진 픽스로 보여진다. 마지막에 앉아 있을 때도 정적으로 흘러가는 구간들이 이 이야기 안에서는 오히려 효과적이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





'기억하자'는 말이 어떻게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나아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영화를 떠올렸을 때 관객이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나.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파급력이나 효과 같은 것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영화가 만들어져 딱 세상에 나왔을 때의 파동이나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억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본인 삶 살아가기에도 바쁜 세상이고 너무 다양한 이슈들이 있어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바꿔가며 실천하기란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잊고 있다가 일상에서 다시 한번 떠올릴 때, 떠올림의 힘들이 기억이 되지 않을까. 관객의 감정을 제한하거나 규정을 두고싶진 않지만, 제가 이 영화를 떠올렸을 때는 가슴이 아릿한 느낌이다. 만들 때도 아릿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런 감정들을 느끼면 좋을 듯하다.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가 있다면.


영화 크레딧에 나오는 실제 사료들까지 꼭 보시면 좋겠다. 그것을 보고 퍼즐이 맞춰지는 감각을 느낄 때가 많다고도 주변 관객분들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보통은 영화 볼 때 크레딧까지 안 보고 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크레딧 뒤에 홍이의 모습도 보면 좋을 듯하다. 실제로 몇몇 영화제에서는 홍이의 등장 전 크레딧까지만 상영하고 짤린 경우가 많았다. 끝까지 감상한 다음에 감정의 여운을 느끼시면 좋을 것 같다.

사료에 나오는 분들 모두 지금은 대부분 돌아가신 분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보단 이 공간에 있었던 분들의 이야기로 인식됐으면 했다. 그래서 모든 분들의 얼굴을 가려놓았다. 본 영화 포스터에서 얼굴 부분만 지워놓은 맥락과도 동일하다. 그리고 제가 당사자 한 분 한 분께 허락을 받을 수 없기도 하고, 그분의 가족이 계실 수도 있다. 만약에 제가 그 당사자였다면 제가 죽었더라도 제 얼굴이 허락도 없이 쓰이길 원치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사료들을 전달하지 않으면 그 상황들을 기억하고 보존하고자 했던 분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이에서의 고민 끝에 중간 지점을 찾았던 게 모자이크였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안에 사료가 올라왔었다. 방송국이 가지고 있는 그 사료들을 활용해도 될지 처음에 여쭤봤을 때는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몇 초에 몇십만 원 이랬다. 마침 학교의 다른 과에 KBS에서 일을 오랫동안 하셨던 교수님이 계셨다. 교수님 통해서 허락을 구해서 무료로 사용해도 된다고 답을 받아서 사용을 했다.



단편영화와 배급, 앞으로의 이야기들


배급사가 따로 없이 자체로 배급을 했다.


배급이 참 힘든 일이구나 라는 거를 많이 알게 됐다. 이전에 <시스터스룸> 같은 경우에도 자체 배급이었다. 그때는 영화제 출품을 딱 두 곳만 넣었나 그랬는데 두 곳 다 선정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영화 배급영화제 출품에 대해서 잘 몰라 배급을 더 하진 않았다. <언니를 기억해>는 2년 동안 계속 열심히 배급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거의 매주마다 영화제 뭐뭐 올라오나 중독자처럼 보고, 내야 되는 양식도 조금씩 달라서 챙기기가 어려웠다.

그때 다행히도 영화 학원에서 사무직을 하고 있어서 중간중간 배급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이 아니었다면 배급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하시는 일이 시나리오 쓰기 말고는 일상 속에 아무 일도 없으시면 자체 배급을 추천드리는데, 아니라면 가능한 배급사가 제일 좋을 듯하다. 물론 전 배급사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지만. 배급사도 원한다고 구할 수 있는 건 아닌 걸로 안다. 그럴 경우에 자체 배급을 하게 되시면 공모전 사이트나 영화제 같은 것들이 작년에 어느 시기 정도에 했나 보시면서, 이 시기쯤에 올라오겠지 하면서 계속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DSC03720.JPG


작업할 때 이미지와 스토리 중 어디에 더 집중하나.


이런 이야기 재밌겠다까지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항상 뭔가 찍고 싶다까지 마음이 갈 때에는 주제나 소재가 가슴을 뛰게 할 때다. 그럴 때 마음이 거기까지 갔다. 이야기가 꼭 필요하고 내가 너무 하고 싶은 말일 때 시작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계속 주제와 소재로부터 시작을 할 것 같다. 그것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미술이라면 미술에 중점을 두고, 음향이라면 음향에 중점을 두고, 이런 방식으로 계속 만들어 갈 것 같다. 작년에 그래서 찍었던 영화도 전쟁이 남기고 간 것들에 대한 이야기 중 하나이고, 지금 구상한 작품도 동일한 맥락에서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단편 영화가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장편도 찍고 싶고 단편도 찍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서 느꼈던 것이 있다. 단순히 짧아서 매력이라기보다 그 호흡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장편 영화는 다르다. 장편은 구조 자체가 여러 번 반복되면서 큰 구조 하나를 그리는 느낌이라면, 단편 영화는 딱 하나의 구조로 승부를 하는 느낌이다. 단편은 구조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이미지가 매력적이면 작품의 매력이 될 수도 있지만 장편은 이미지만으로는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편은 손익분기점에 부담이 없다 보니까 다양한 실험도 할 수 있다. 작은 단위의 이야기라는 게 가장 매력적인 것 같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나.


반전에 대한 메시지도 계속 가져갈 것 같다. 이거는 꼭 해야 돼라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저한테 있어서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생각이 들더라. 나중에 상업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그런 메세지도 함께 가져갈 수 있을지 생각도 계속한다. 반전 외에는 더 미시적인 얘기들도 많이 만들어 보게 될 것 같다. 특히 <언니를 기억해>를 만들었던 20대 초반을 지나 후반 나이대로 오다 보니 순간순간 벌어지는 상황 안의 감정들이 있었는데, 그걸 보여줄 때 뭔가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다. 연극으로는 보여줬는데 영화로는 항상 거시적인 이야기들만 해온 것 같다. 물론 시스터스룸은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번갈아 가면서 만들어 나갈 것 같다.



영화 제작은 힘들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가장 크다. 특히 그렇게 느끼게 해주는 분이 촬영 감독님이신데, 작년 작품도 같이 작업을 해주셨다. 무너질 것 같을 때 혹은 이걸 찍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 들 때 가능하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나 동료, 그런 사람 하나만으로도 계속 영화를 해나갈 수 있다. 외적으로는 영화나 이야기를 보여준다라는 행위 자체가 가장 즐겁다. 이 사회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 같은 느낌이라 이것 외에 다른 일을 하면 삶의 가치나 보람을 못 찾거나 즐겁지 않기도 하다.

예술이 없었으면 그냥 넋놓고 살아갔을 것 같다. 그만큼 좋아하는 일이다. 산업이 망해간다고는 이야기하는데 그래도 사비 모아서라도 찍을 수는 있는 거니까. 혹시, 영화관도 다 없어진다면 옥상에 빔을 설치해서 보여줄 수도 있는 거니까, 끝까지 할 수 있다.



INTERVIEWER, WRITER 옥지민

INTERVIEWEE 조하영

PHOTO 양지영



작가의 이전글[INTERVIEW] 거울 속 ‘나’와 마주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