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본 글에는 영화의 결말과 핵심 장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영화를 보는 순간은 '영화를 보는 나'와 '스크린' 사이의 고독하고 농밀한 관계가 이어지지만, 크레딧이 올라간 후는 어딘가에 끄적이고, 옆 사람과 "어때?"하며 묻고, 같이 나가는 관객의 수다를 귀동냥하며 관계의 폭이 넓어집니다. 특히 '어려운' 영화라면 문제의 답을 구하듯 어딘가 물어보러 인터넷을 뒤지기도 합니다.
2025년 12월 17일에 개봉한 마샤 실린스키 감독의 <사운드 오브 폴링>은 근래 한국 영화관에 개봉했던 '어려운' 영화 중 한 편입니다. 영화는 각기 시간이 다른 네 명의 여성에 걸쳐 한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표현 방법이 지금까지 관람했던 영화들과는 무척이나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4:3이라는 영상 비율, 갑자기 등장하는 인서트, 굉음과 노이즈, 희뿌연 화면, 특히 시간순으로 배열되지 않은 장면들의 연속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도대체 이건 어떤 의미일까? 뭔가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왜 감독은 이렇게 찍었을까, 의도가 있었겠지?'하는 의문, 영화를 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만큼 이 의문을 풀어가는 명쾌한 해결책은 없겠죠.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을 관람한 정시상영단은 그런 의문과 궁금증을 잔뜩 안고 한 시간 조금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실체가 명확한 컷들을 선호해왔고 선형적 정렬로 재구성해 영화를 이해했던 방법을 잠깐 내려놓고, 영화적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샤 실린스키 감독의 도발적인 초대에 기꺼이 응해보면 좋겠습니다.
박채원: 저는 처음으로, 어안이 벙벙했어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시네필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네요.
박종연: 저도에요. 이야기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각 세대 여자들이 비선형적으로 나와서 혼란스러웠어요. 공통적인 주제가 계속 반복되는 건 느껴졌어요.
옥지민: 채원님이 말씀 하신 것과 비슷하게 어쩌면 저희를 도발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소설 <토지>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인물 관계도를 그려서 해석해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구요. 그리고 대사가 많지 않아요. 여러 대사가 생략된 거 같아요. 압축된 부분들을 한번 너희가 메꿔 봐라고 던져주는 느낌이에요.
박종연: 이해해 볼 테면 해봐 이런 느낌. 이해하기보다 감성으로 느껴야할 거 같아요. 영화 속에서 겪는 일이나 고통, 자기 나름대로 이겨내 나가려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좋겠어요.
박채원: 너무 재밌는데요. 정말 한국판 토지예요. 평화로운 척하는데 절대 평화롭지 않아요. 그 부분도 토지스러워요.
옥지민: 영화에 몸을 맡겨야 된다는 거. 머리로는 좀 이해가 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박채원: 저는 영화 맨 처음에 나오는 돼지를 하녀와 완전히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둘 다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그 돼지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하녀와 같은 위치의 인물을 상징한다고 봤어요. 그리고 또 흥미로웠던 게 앙겔리카가 등장할 때마다 장어가 꼭 나오더라고요. 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도 그렇고 영화 전체적으로 반복되고요.
박종연: 저는 가부장제와 여성 억압의 메타포로 봤어요. 특히 앙겔리카의 어머니가 전쟁 후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건너가려다가 장어에게 물려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상징적이었거든요. 장어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장어를 잡는 대회에서도 끝내 실패하는 모습은 여성들이 상처받고 억압당하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남성 인물인 우베는 장어를 잡고 과시하는 게 남성들이 지배하는 권력 구조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영화 전반적으로 장어가 헤엄치는 인서트가 반복되는데, 시대를 초월해 여성들이 공유하는 트라우마를 표현한 거 같았어요.
옥지민: 어떤 면에서는 남성성의 상징이기도 한 것 같아요. 미끄럽고 잡기 어렵다는 그 물질적인 이미지 자체가, 남성의 성적 힘이나 폭력성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대회 장면에서 문가에 기대서 바라보는 여성이 비춰지잖아요. 위협적인 분위기나 성폭력을 암시하는 듯했어요. 임신 가능성이나 육체의 통제 같은 대사도 오갔고요.
박종연: 영화 속에서 '손 안쪽을 무는 장면'이 계속 반복되잖아요. 앙겔리카의 엄마뿐 아니라 앙겔리카 자신도 그런 행동을 하죠. 저는 자해처럼 보였어요. 아픈 기억을 스스로 되새기거나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는 듯한.
옥지민: '무는 행위'를 폭력과 연결해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전 세대가 겪은 폭력이 다음 세대 여성에게로 재생산된다는 암시인 거 같구요.
박채원: 실제로 손을 그렇게 물어봤는데, 말을 못 하게 되더라고요. 해야 할 말을 삼키는 행위, 침묵의 상징처럼 느껴졌어요. 자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강요된 침묵이라는 점에서 여성의 내면적 억압을 표현하는 거 같아요.
박종연: 결국 그 모든 행위들이 여성들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억누르고 감내해야 했던 시대의 구조적인 폭력과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옥지민: 장어와 같이 파리 이야기가 계속 나오잖아요. 살아 있다기보다 죽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파리라는 게 보통 움직임이 없는 시체 같은 데 붙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영화가 꿈 같으면서도 죽은 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파리가 죽음을 알려주는 신호처럼 보였어요. 겉으로는 움직이는 것 같아도 죽어 있는 상태를 알리는.
처음에 베스타가 아이들이 장난쳐 놓은 신발을 신었다가 넘어지잖아요. 그때 너무 움직임이 없어서 저는 죽은 줄 알았거든요. 근데 곧 장난이었다고 해요. 그런 식으로 죽음인 듯하다가 아닌 듯하고, 허무하게 꺾일 것 같은 순간들이 계속 스치더라고요.
박종연: 파리가 물에 들어가서 죽어 있는 모습도 나오잖아요. 파리가 당시의 상황에서 억압이나 착취를 못 이기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여성들을 상징하는 메타포 같았어요. 파리가 허무하게 죽는 것처럼 여성들도 삶을 이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현실을 파리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옥지민: 저는 첫 장면이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게 상징적으로 느껴졌어요. 뭔가를 계속 따라다니고 있는 느낌이 영화 전반에 있었거든요. 화면이 기울어져 있거나 떠다니거나 부양하는 듯한 느낌도 많아서 "이게 귀신이 보고 있는 건가, 어떤 혼령이 이 집의 상황을 보여주는 건가"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방 안을 비출 때도 방문 사이 열쇠구멍 같은 틈으로 숨어서 보는 컷이 많아요. 혼령이 볼 수 있는 틈새일까요. 한편으로는 토속 신앙적인 느낌도 들었어요.
박종연: 감독 인터뷰 영상을 봤는데, 감독이 서로 다른 시대의 여성들이 시간은 달라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에서 누군가 지켜보거나 몰래 들여다보는 시점 쇼트가 많이 나오는 것도, 다른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려는 의도처럼 느껴졌어요.
박채원: 맞아요. 촬영감독이랑 감독은 이게 기억인지 꿈인지 알 수 없게 만들고 싶었대요. 등장인물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서로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여성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해요. 저도 유령이랑 엮어서 봤어요. 유령이 보는 것처럼 찍는 느낌이 있는데 감독도 유령을 언급하거든요. 저는 그 유령을 좀 더 구체화해서 유령이 시대적인 폭력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가 일부러 죽음과 삶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아요. 장례 장면이 세 번이나 나오고 의식 과정이 되게 자세하게 나오잖아요. 염하는 장면도 나오고 가족사진 찍는 것도 나오고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창문 열고 눈에 돌을 얹는 장면도 있고. 저는 그 돌이 마음에 남았어요. 카야가 잠수하고 나서 보드 위에 누워 있을 때 주변에 돌을 쌓아놨잖아요. 반복 때문에 더더욱 산 사람도 죽은 사람 같고 죽은 사람도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옥지민: 전통 신앙이나 무속에서 눈을 통해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은유가 있잖아요. 그래서 돌을 얹는 게 영혼이 빠져나가는 걸 막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동시에 "이제는 그런 것들을 보지 마라, 세속적인 것들을 보지 말고 편하게 지내라" 같은 뜻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잠 자체가 일시적인 죽음 아닐까요? 여성들이 뭔가를 공유하고 있었다면 그게 잠을 통해 죽음과 기억을 공유하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단지 이미지나 분위기만이 아니라 시점 자체에서도 흐릿하게 나타나는 것 같았어요.
박채원: 애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는 공간 있잖아요. 애들끼리 모여서 있는 그 공간 자체도 꿈속 같았어요. 그래서 역사적인 피해자들이긴 한데, 그냥 '피해자'로만 보이게 두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도 서로 뭔가를 하고, 어떤 주체성이 드러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꿈꾸듯이 보면 될 것 같아요. 뭐가 죽었고 살아 있고, 뭐가 진짜고 이런 걸 굳이 구분할 필요 없이, 느껴지는 그대로. 꿈이면 꿈이고 현실이면 현실인 거죠. 감독이 그런 식으로 의도했고 촬영도 그걸 노린 거니까, 그걸 그냥 즐기면 될 것 같아요.
옥지민: 처음에는 영화 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인 것 같았어요. 계속 듣다 보니 빗소리 같기도 하고 빈 공간에서 나는 소음 같기도 했어요. 왜 이런 소리를 넣었을까 생각 들었어요.
박채원: 파리 소리도 굉장히 크게 들렸던 것 같아요. 바람 소리나 배경 소리 같은 작은 것들의 볼륨을 일부러 키운 느낌이 들었어요.
박종연: 맞아요. 영화 전반적으로 부차적인 소리들이 계속 나오는데, 후반부에 렌카랑 친구 카야가 강에서 수영할 때는 분위기가 확 달라요. 이전엔 바람 소리 같은 것만 나왔는데 그 장면에서는 노래가 크게 들리면서 소녀들이 자유롭게 헤엄쳤어요.
박채원: 저도 그 장면 떠올랐어요. 비지엠이 너무 강렬해서, 극 중 음악이 그때 처음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앙겔리카가 춤출 때도 이미 있었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해방의 순간에만 음악이 크게 나오는 것 같아요.
옥지민: 멀리서 북을 두드리는 것 같은 '둥둥' 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리는데, 그게 영화 속에서 들리는 소리였을까요, 아니면 옆 상영관의 소리였을까요. 어찌 되었든 그 울림이 인상적이었어요. 피리 소리나 바람, 비 소리, 그런 울림이나 체인 소리 같은 것들이 왜 계속 반복되었을까요?
박채원: 보는 걸 많이 줄이고 소리에 집중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보면 놓치는 소리가 많을 것 같아요.
옥지민: 처음에 에리카가 프리츠 배꼽에 고인 물을 찍어먹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박종연: 그게 에리카의 성애적인 욕망인지 아니면 연민인지 명확하진 않더라고요.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후에 배꼽에 손가락을 넣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그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일단 연민으로 느꼈어요.
박채원: 그런데 연민이라고 하기엔 눈빛이 너무 이글거렸어요. 캐릭터의 눈빛이 오히려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박종연: 인물 관계가 헷갈리네요. 앙겔리카의 엄마가 에리카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으려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리고 앙겔리카 엄마의 삼촌이 프리츠라고도 해서, 혈육 관계인지 하녀인지 어느 게 맞는가 싶더라고요.
옥지민: 그쵸. 모녀인지 딸들인지 하녀인지 헷갈렸어요. 저는 하녀라고 생각했어요. 다들 사랑이라기보단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관계처럼 보였거든요.
박종연: 당시 침묵해야 했던 여성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느낌이에요. 알마의 엄마도 아들이 징집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다치게 만들잖아요. 본인도 원하지 않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감내해야 했던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요.
박채원: 저는 그 엄마 캐릭터가 너무 짜증났어요. 가족을 위한다면서 폭력을 정당화하잖아요. '숭고한 척'하는 완전히 가부장적인 인물이에요. 폭력의 가해자임에도 스스로를 희생자로 포장하는 모습이 너무 불쾌했어요.
박종연: 앙겔리카의 엄마와 알마의 엄마가 묘하게 닮았어요. 앙겔리카 엄마 생일 때 웃지 못하고 오히려 슬플 때 미친 듯이 웃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알마의 엄마도 나중에 프리츠가 다리를 다친 뒤 걷지 못하게 되면서 그런 비슷한 모습을 보여요. 둘 다 슬픔과 억압을 웃음으로 비튼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옥지민: 세대 간의 폭력과 트라우마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계속됨'을 보여주는 걸까요.
박채원: 1910년대 알마 시점부터 트루디가 계속 나와요. 트루디는 프리츠를 돌봐야 하고 계속 성추행을 당하면서 그 장면을 목격당하기도 해요. 결국 트루디는 그런 '억압된 존재'로 그려지는 것 같아요. 감독이 말하길, 하녀들은 남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조정'되어야 했다고 해요. 사실상 중절 수술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베르타라는 인물도 원래 불임이어서 괴롭힘을 당했고 트루디는 중절을 강요받았죠.
박종연: 저도 트루디 이야기가 너무 마음 아팠어요. 나중에 리아가 비슷한 상황을 겪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잖아요. 트루디와 리아의 서사가 겹치면서 그 시대 여성들이 겪은 사회적 억압과 착취가 뼈저리게 느껴졌어요.
박채원: 트루디나 다른 하녀들이 겪는 일(조정, 중절, 억압)이 다 연결되어 있죠. 이 인물들은 모두 역사 안의 피해자들이잖아요. 여성의 억압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역사적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프리츠 같은 남성들도 포함해서요. 감독은 에리카, 앙겔리카, 렌카 같은 인물들을 통해 단순히 피해자로만 그리진 않았어요. 그들은 욕망을 품고 숨겨진 방식으로라도 그것을 실현하려 하죠. 감독은 그 주체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박채원: 영화 속 강은 실제로 동독하고 서독을 가르는 '엘베 강'이래요. 앙겔리카가 있는 시기가 1980년대고 그 당시에 동독에 있었다고 해요. 근데 이 동독이 사회주의였고 그리고 계획 경제에다가 국가가 통제하고 감시했지만, 서독은 자유민주주의에 시장 경제와 표현의 자유가 있어 다양한 예술을 하던 시기였어요.
동독이 서독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통일이 되었는데 1인당 GDP 차이도 엄청 컸고, 그 시절 동독에 살았던 사람들은 억압과 통제가 심했고 생활도 많이 힘들었던 걸로 보이고요. 그 집안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어요. 영화에서 '강'이 계속 중요하게 나오는데 독일 역사에서 강이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상징처럼 작동해왔던 것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박종연: 맞아요. 사회는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상황이 많았지만, 여자들은 그 안에서도 자기 길을 모색하고 빠져나오려고 하고 자유를 찾아 움직이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앙겔리카가 나중에 강을 건너서 서독으로 갔다고 묘사되는 부분, 그리고 마지막에 카야랑 렌카가 강에서 같이 수영하면서 잠깐이나마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도 그렇고요. 카야는 또 렌카가 부러워하거나 존경할 만한 지점을 가진 인물처럼 보이기도 해서,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들의 주체성이 점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 걸 캐릭터로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박채원: 처음 보시는 분들은, 아주 러프하게라도 독일의 중요한 역사적 굴곡점들을 한 번 체크하고 보면 영화에서 연결선을 찾거나 흐름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옥지민: 그래서 이 영화는 놓칠 장면이 꽤 많을 것 같아요. 러닝타임 내내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빠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N차 관람을 해야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박종연: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봤나 찾아보기도 했는데, 예전에 개봉했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처녀 자살 소동(The Virgin Suicides)'이랑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여러 번 봐야 해석이 가능한 지점들이 많아서 N차 관람이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박채원: 맞아요. 다시 보면 캐릭터도 다르게 보여요. 놓쳐선 안 될 캐릭터들이 너무 많아요. 두 번째 관람 때는 트루디만 계속 눈에 들어왔어요. 처음 볼 때는 리아와 카야가 인상 깊었는데, 두 번째 보고 나니 트루디에게 시선이 갔어요. 트루디 역의 배우가 눈빛과 입매 하나로 너무 많은 감정을 표현하더라고요.
옥지민: 그렇게 오롯이 감성으로 느껴야만 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전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식의 접근은, 사건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시도해 볼 만한 좀 더 어렵지만 굉장히 새로운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직접적인 폭력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은 그렇게 표현하기 어려운 방법이 아닙니다. 폭력의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이나 관객이 느끼는 선정성을 생각에서 배제하면 쉽습니다. 그렇게 어떤 영화의 폭력 표현은 '예술'이나 '영화'를 논란의 방어막으로 활용합니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 표현 방법이 있지는 않지만, 많은 고민과 토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습니다. 극 중 에리카의 언니는 "기억할 리 없는 일" 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기억할 리 없는 일도 엄마는 다 아신다 /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일도 말이다 / 예를 들어 엄마 동생 에리카가 / 한 발로 걸을 수 있는지 보려고 프리츠의 / 목발을 훔쳤던 걸 엄만 기억한다 / 하지만 그 일이 있었을 때 어디 있었냐고 하면 / 기억하지 못한다 / 우린 밖에선 타인만 보기 때문일 거다 / 자기 자신은 볼 수 없다
자세히 문장을 뜯어보면 '알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알았는가'의 의미가 아닙니다. '기억'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어떤 감각이나 장면 등의 생각이 머리에 입금(기억)되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거나 하는 이유로 생각을 출금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누군가(당사자, '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가 생각하는 것을 전제로 나올 수 있는 말(~할 리 없다)입니다. 혹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가 보기에 그건 기억하지 않을 것이고, 기억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 세대에 걸쳐서 기억은 공유 또는 전승되었습니다. 폭력의 고통과 위기감 혹은 경험을 담은 기억을 "그 자리에 있지 않았"어도 전할 수 있었던 매개는 무엇이었을까요? 집이라는 공간의 감각이나 지박령이 전해주었을까요? 물 속을 희뿌옇게 만드는 알갱이와 산소 방울? 높은 곳에서 땅으로, 혹은 '높은 곳이 된 땅'에서 '땅이 된 높은 곳'으로 뒤집혀 떨어지는 순간의 주마등이 전했을까요?
영화에서의 폭력은 쉽게 알아챌 수 없게, 쉽게 알아들을 수 없게 정교하게 연출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희미한 시간의 비선형성으로 나타납니다. 경계의 흐릿한 부분들,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 같은 부분들을 복구하려고 들여다보면, 뒤에 있는 게 앞인지 앞에 있는 게 뒤인지 잘 모르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잔상을 살려냈고 결국 우리는 정확한 순간이 아니라 잔상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되면서 시간의 구분이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감정을 대사가 아니라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며,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방법으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합니다. '확실한'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아 관객은 '이랬겠다'고 짐작해야하지만, 감독은 그렇다고 외계어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 이름과 '해석'이라는 키워드를 붙여 검색하게 만드는 영화는 번거롭고 까다롭긴 해도, 기억에 남을 것은 확실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기억할 리 없다'고 부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게 영화를 없앨 수도 있죠. 하지만 '영화에 대한 기억'을 삭제할 수는 없습니다. 감독은 그렇게 망각에 저항하여 영화를 만들어 전승하고 기억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 정시상영단 옥지민
영화의 매 순간에 떠다니며 영화의 주변인을 자처한다.
현장에서는 PD와 동시녹음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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