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본 글에는 영화의 결말과 핵심 장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서로 비슷한 고통을 공유한다. 오래전부터 비롯되었던 가부장제의 억압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부여하는 사회적 제약, 성적 자기 결정권의 박탈, 대상화의 공포 등은 세대를 걸쳐 끊임없이 반복된다. 또한 여성들은 가장 가까운 여성인 어머니를 통해 가정에 귀속된 여성의 삶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며 가부장제의 시스템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성들에게 반복되는 공포와 트라우마는 세대를 막론하고 공통된 양상을 보인다. 마샤 실린스키 감독의 <사운드 오브 폴링>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네 명의 여성들을 통해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 그리고 내면의 고통을 보여준다. 비선형적으로 이어지는 각 여성의 삶은 시대를 막론하고 전쟁의 폭력과 가부장제의 억압 아래에 놓여있다. 또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목격하며 죽음을 선택하거나 현실을 벗어나 자유를 갈망한다.
영화는 1940년대를 살아가는 에리카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에리카는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삼촌 프리츠 라는 남자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프리츠는 과거 1차 대전 시기에 그를 군대로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님으로 인해 다리를 절단하게 되어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에리카는 그런 프리츠를 보면서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그가 자는 모습을 관찰하는 등 호기심과 연민을 느끼고 있다.
프리츠가 다리를 절단하게 됐을 즈음의 과거로 돌아가면, 그의 여동생 알마와 자매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알마는 집안의 막내딸로 언니 리아와 할머니, 엄마, 그리고 하녀 트루디에게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하며 삶과 죽음, 고통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또한 부모님이 프리츠의 징집을 막기 위해 그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는 장면, 집안의 하녀 트루디가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모습, 언니 리아가 다른 집안에 하녀로 팔려 가게 되자 자살하는 모습 등 집안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하고 비극적인 일들을 관찰하며 성장한다. 이후 알마는 우연히 본 사진을 통해 과거에 자신과 똑같은 이름의 여자 형제가 있었고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진 속에는 이미 사망해 있던 알마의 형제와 마치 유령처럼 나온 엄마가 있었다. 이후 집안 사람들이 겪는 사건을 지켜보며 그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감하던 알마는 사진에 나온 죽은 형제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 해보며 현실의 아픔을 잊어보려고 시도한다.
1980년대를 살아가는 앙겔리카는 알마와 리아, 에리카보다 자유로운 시대에서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 역시도 여성이 경험하는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삼촌 우베는 앙겔리카가 원하는 곳을 차로 데려다주는 것을 빌미로 그를 성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우베의 아들 라이너 또한 그에게 성애적인 관심을 보인다. 앙겔리카는 그들이 자신을 은밀히 관찰하고 대상화하는 시선을 알고 있지만, 본인의 성적 자유까지 억압하지는 않는 인물이다. 사촌들 앞에서 옷을 벗으며 춤을 추거나, 우베에게 직접 클럽에 데려다 달라고 도발하며 나름대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라이너로부터 사람들이 자신과 삼촌과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관계를 들켜버린 것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느낀다. 결국 트랙터에 깔려 죽는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죽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앙겔리카는 리아와 궁극적으로 다른 선택을 하는데, 자살을 택하는 대신에 자유를 찾아 강을 건너 서독으로 향한다. 이후 앙겔리카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는지 혹은 자유를 되찾아 살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각 세대의 여성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앙겔리카 또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인물 중 가장 현대를 살아가는 렌카와 넬리도 마찬가지로 앞선 여성들이 경험한 트라우마를 반복해서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 넬리는 알마처럼 가족 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인물로 언제나 언니 렌카에게 밀려 가족들에게 2순위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 또한 이전 세대의 여성들이 겪었던 비극과 절망감을 마치 유령처럼 목격하고 리아처럼 높은 곳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렌카는 앙겔리카가 경험했던 것처럼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불쾌한 시선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친구의 말투와 싫어하는 행동까지 자신도 모르게 똑같이 따라 하는, 일종의 자기 혐오감에서 비롯된 앙겔리카의 버릇을 렌카도 똑같이 반복한다. 렌카는 강가에서 우연히 만난 또래 친구 카야를 동경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카야는 앞서 나오던 여성 인물들이 경험하는 공통된 트라우마에 관한 묘사가 나오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다. 또한 다른 여성 인물들이 죽음에 대한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자신의 엄마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며 죽음에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렌카는 이런 카야의 모습을 동경하며 그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불행까지도 부러워한다.
영화는 네 명의 여성 인물들의 시점을 통해 주변 여성 인물들을 조명한다. 그들이 가까이 바라보는 대상 중 하나는 바로 어머니인데, 알마의 어미니 ‘엠마’와 그리고 앙젤리카의 어머니 ‘일름’은 둘 다 전쟁의 영향으로 인한 아픔과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엠마는 알마를 닮은 어린 막내딸과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이 있다. 이후 아들 프리츠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징집될 위기에 처하자, 그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징집을 막는다. 다리를 잃게 된 사유를 일터 사고로 위장하여 아들이 군에 들어가지 않을 수는 있었지만 이를 계기로 프리츠는 다리를 절단하고 평생 의족을 신고 살아가야 했다. 이후 엠마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며칠간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는데, 이는 프리츠의 다리를 망가뜨리며 얻게 된 죄책감이 엠마의 다리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름와 에리카 또한 전쟁의 비극적인 피해자로 묘사된다. 두 자매는 종전 직후 동독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위협을 피해 강 반대편의 서독으로 향한다. ‘다른 마을 여자들이 겪은 걸 들은 그들은 닥쳐올 일이 죽음보다 더 두려웠다’라는 자막처럼, 당시 동독은 여성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2차 대전의 종전 직후에 동독을 점령했던 소련 연합군은 나치에 대한 보복으로 동독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강간했던 역사가 있다. 피해자의 수가 무려 200만 명에 달할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나이 또한 8세부터 80세까지로 다양했으며, 여러 번에 걸쳐 윤간을 당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을 정도로 잔인한 전쟁 범죄가 일어났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피해 에리카와 일름은 서독으로 넘어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기 위해 강을 건너던 도중 일름이 장어에게 물리는 사고가 일어나며 결국 일름과 에리카 모두 서독으로 가지 못한다. 이후 에리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역사적 사건과 연관 지어 봤을 때 소련군에 의한 강간과 죽임을 당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일름은 장어를 직접 자기 손에 물려 자해하며 과거의 트라우마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일름은 즐거운 일에는 언제 웃어야 할지 모르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오히려 폭소하는 버릇이 있는데, 엠마 또한 마찬가지로 걷지 못하는 불행이 닥쳤을 때 실성한 듯 웃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엠마와 일름은 서로 비슷한 캐릭터 특징을 공유하며 전쟁의 비극으로 반복되는 아픔과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장어에 대한 이미지가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극 중반부에서는 앙겔리카의 가족과 일가친척들이 자전거를 타고 통에 든 장어를 잡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이때 우베를 비롯한 다른 남자들은 의기양양하게 장어 잡기에 성공하지만, 일름은 장어를 잡지 못하고 실패한다. 일름이 과거에 장어와 관련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으며, 우베가 앙겔리카에게 부적절한 관심과 행동을 보이고 있음을 생각하면 장어는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폭력과 강간에 대한 공포를 은유하는 메타포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죽음과 장례식에 대한 장면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알마와 이름이 같은 형제부터, 어린 남동생, 리아, 에리카 등 각 세대의 인물들은 반복해서 어린 나이에 죽음을 겪는데, 이러한 일정한 죽음의 반복이 가족 내에서 피할 수 없는 어떠한 비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헛간에서 죽은 남동생을 관찰하던 알마와 자매들은 헛간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람이 저승에 끌려간다는 장난을 치는데, 마지막으로 나온 리아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이때 리아는 신이 알마 대신 자기를 데려갔다고 언급하며 헛간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다면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후 에리카도 마찬가지로 언니 일름 대신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었으며, 앙겔리카 또한 확실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사라진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다는 묘사가 나온다. 이러한 비극은 렌카와 넬리 자매에게도 똑같이 반복되는데, 넬리도 리아가 마차에서 뛰어내렸던 것처럼 헛간의 높은 곳에서 스스로 뛰어내린다. 이 외에도 알마의 할머니가 ‘모두 죽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할머니의 자매도 젊은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등장 인물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세대를 걸쳐 반복되는 것처럼 보였고, 영화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파리의 의미도 인물들이 마주하는 비극적이고 허무한 죽음을 뜻하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하녀 트루디는 과거 여성 하층민에게 가해졌던 사회적 억압과 착취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집안의 하녀로서 노동력의 제공과 더불어 성적 도구로도 착취당했던 트루디는 남성 하인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불임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남성들에게 유린당하던 트루디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리아는 이후 자신이 다른 집안에 하녀로 팔려 가게 되자, 스스로 마차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선택한다. 이처럼 집안의 하인이자 여성으로서, 그리고 계급적으로도 가장 억압받는 위치에 있던 트루디는 다리를 잃은 뒤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된 프리츠를 보고 그의 삶이 헛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아가 보기에, 사회적 배경(전쟁, 성별, 계급)으로 인해 자유를 잃은 트루디와 프리츠의 삶은 누가 더 헛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은 것처럼 보인다. 또한 트루디가 프리츠를 향해 느끼는 연민, 내지는 동질감은 에리카에게도 반복된다. 집 안에서 하녀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에리카는 프리츠의 방을 종종 찾아가며 자는 그를 관찰하기도 하고, 본인도 다리 한쪽을 묶어 목발을 짚어 보는 등 그의 처지에 호기심과 연민, 그리고 어떠한 욕망 등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반복되는 소재(파리, 장어, 강)와 캐릭터 특성을 통해 각기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이 사회적,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억압과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강은 여성들이 현실에서의 억압과 트라우마를 벗어나 해방과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먼저 에리카와 일름이 종전 후 강간의 위험을 피해 국경을 넘어갈 때도 강을 건너가야 했으며, 앙겔리카가 가족들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떠난 곳도 강 건너편의 서독으로 묘사된다. 또한 극 후반부에는 렌카와 카야가 강 속에서 수영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때는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흐르던, 절제되고 어두운 음향과 달리 희망적이고 밝은 느낌의 노래가 배경으로 흐른다. 더불어 영화 내내 트라우마의 상징으로 나왔던 장어가 등장하지만 카야와 렌카 모두 별다른 사고를 겪지 않는다. 이처럼 강은 여성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마샤 실린스키 감독의 <사운드 오브 폴링>은 시대별로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겪었던 트라우마를 인과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파편화된 기억처럼 표현한다. 이처럼 파편적으로 흩어진 서사 구조는 여성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하나의 사건으로 명확히 규정되기보다, 시대와 환경을 달리하며 반복되고 변주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개인의 트라우마가 개별적이면서도 동시에 집단적 기억의 일부로 기능하며, 각기 다른 시간대의 인물들과 보이지 않는 감정으로 이어져 있음을 나타낸다. 등장인물들이 처한 시대적 조건은 서로 다르지만, 가부장제의 억압과 폭력의 시스템 아래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두려움과 무력감은 영화 내에서 유사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따라서 여성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특정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축적되었으며, 이러한 고통이 세대를 걸쳐 공명하고 있음을 파편화된 구조와 감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불규칙한 전개와 상징적인 연출, 다양한 메타포들이 난해하고 혼란스럽게 다가왔지만, 감독이 마치 추상화를 그리듯 여성들의 내면과 트라우마를 묘사한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처럼 〈사운드 오브 폴링〉은 여성들의 삶을 하나의 직선적 서사로 설명하는 대신, 감정과 기억의 파편을 조각조각 맞춰나가는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전개의 혼란스러움마저 감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 작품은 서사와 인물들 인과적으로 이해하려고 감상하기 보다, 그들의 감정선에 동화되어 그대로 체감해야하는 영화에 가까운 것 같다. 따라서 인물들의 내면의 고통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집중한다면, 여성들의 침묵과 상처가 어떻게 시대를 넘어 공명해 왔는지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