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추락의 외면, <사운드 오브 폴링>

by 정시상영단


[스포일러 주의] 본 글에는 영화의 결말과 핵심 장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1. 세대를 초월하는 역사 트라우마

영화는 독일 역사의 굴곡진 지점마다 존재하는 트라우마의 흔적을 섬세하게 더듬는다.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알마(1910년대), 나치 정권하의 에리카(1940년대), 분단된 동독의 앙겔리카(1980년대), 현재의 렌카와 그녀의 동생까지. 영화는 100년이라는 시간을 가로지르며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비춘다. 단순히 한 가문의 연대기가 아니다. 세대를 초월하여 전승되는 트라우마로 상처받은 개인들이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폭력을 묵인하고 합리화하는지에 대한 서늘한 기록이다.


2. 가족주의: 침묵과 폭력의 합리화

극을 이끌어가는 여성 캐릭터들을 지배하는 정서는 깊은 우울이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한다. 심장이 멈추길 기도하고, 익사를 생각하고, 트랙터에 갈리고 싶어 하며, 사진 속 죽은 자의 모습을 흉내 낸다. "누구나 뭐로든 죽잖아." 자살을 시도하는 아이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은 행복을 연기해야 한다. 이 공고한 가족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기제는 바로 '외면'이다. 불편한 진실을 삼키고 평화를 가장하는 것, 폭력의 징후 앞에서도 하하호호 웃으며 모른 척하는 것. 그것이 이 병든 가족들이 유지되는 유일한 방식이며 기만이다.

가족 내부의 기만은 외부의 약자를 향한 착취로 이어진다. 알마의 집 하녀 트루디는 남자 하인들에게 성추행당하고, 장애를 가진 아들 프리츠의 성욕을 해소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하지만 이 끔찍한 폭력은 시스템 안에서 교묘하게 세탁된다.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다리를 잃은 프리츠도, 다른 농장으로 팔려가다 절망 속에 투신한 리아도, 그저 ‘일터 사고’일 뿐이다. "일터 사고, 일터 사고, 일터 사고..." 주문처럼 반복되고, 진실은 은폐된다. 밤새 고통에 소리치는 프리츠의 '환상통'은, 잘려 나갔으나 여전히 느껴지는 통각처럼, 애써 덮어두었으나 삶에 깊게 배어 있는 트라우마를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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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축 같은 존재들

당시 하녀와 아이는 집안의 자산으로, 마당을 돌아다니는 돼지 즉, 가축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트루디가 유린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녀 리아는 노동력으로서의 가치가 생기고, 자식 재생산이 가능한 나이가 되자 부모에 의해 다른 농장으로 팔려간다. 볏짚에 실려 가축처럼 이송되던 리아는 결국 스스로 추락을 택한다. 알마를 바라보던 공허한 표정 그대로 죽은 리아. 그러나 가족들은 죽은 리아의 눈을 바느질해 억지로 뜨게 하고 기어코 사진을 남긴다. 부모에게 죄의식은 없다. 하녀들이 “남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조정”되는 것과 아이를 파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 말 못 하는 엄마가 눈을 깜빡여 사랑을 전한다는 알마의 믿음은, 그렇게라도 사랑받고 있다고 믿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아이의 애처로운 자기기만일지도 모른다.


4. 서늘한 욕망과 시선

억압된 환경 속에서도 여성 캐릭터들은 주체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항상 누워있는 프리츠를 욕망하는 에리카, 특히 그녀가 프리츠의 배꼽에 고인 물을 찍어보는 행위는 모체와 연결되었던 생명의 원초적 흔적을 탐닉하는 듯하다. 1980년대 동독의 앙겔리카 역시 억압적인 체제와 가정 폭력 속에서도 섹시해 보이고 싶은 욕망에 솔직하다. 하지만 카메라는 이들의 욕망을 종종 폭력적인 시선으로 가로막는다. 수영을 마친 앙겔리카의 몸을 노골적으로 훑는 빛과 렌즈, 어린 렌카를 향한 남자의 불쾌한 응시. 영화는 타인을 대상화하는 이 끈적하고 불쾌한 시선을 관객이 그대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몸을 훑는 시선이 그 자체로 얼마나 폭력적인지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이 영화는 서늘하고 차가운 분위기로 일관하지만,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따뜻한 촉각'을 전시하며 ‘감각’적이다. 렌카 엄마가 기댄 남편의 체온, 자해 후 발에 흐르는 피의 따뜻함, 알마의 이불 속 온기, 심지어 미꾸라지에게 물리는 감각이나 수의의 부드러운 질감까지. 시각과 청각을 넘어 촉각과 미각까지 자극하는 이 영화의 연출은 마치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연상시킨다. 잔혹한 현실과 대비되는 이 안락하고 따뜻한 감각들은 관객의 오감을 곤두세우며 더욱 기이한 불편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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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추락, 들리지 않는 소리

영화의 제목은 <사운드 오브 폴링(Sound of Falling)>, 즉 '떨어지는 소리'다. 영화 속 많은 존재들이 떨어진다. 비명 없이 조용하게. 이것을 온전히 자해 또는 자살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들의 추락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좁은 공간, 유리나 열쇠 틈, 창문 틈을 통해 숨어서 몰래 보는 듯한 구도를 자주 취한다. 이는 아이의 관찰 시선이기도 하지만,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계급적 착취라는 '구조적 폭력의 유령'이 인물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압박하는 듯하다. 이 유령의 계략에 의한 즉 체제화된 폭력이 그들의 등을 떠민 타살이다. 마지막 장면, 밭에서 노동하던 여자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공중으로 둥둥 떠오른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노동과 중력에서 해방된다. 가족만이 죽음을 애도할 자격을 독점하는 이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추락하고 있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그들을 모른 척하고 있는가.



- 정시상영단 박채원

독립예술영화의 언저리에서, 사라지면 안 될 이야기를 오래 기억되게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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