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니면 다르게 갈 곳이 없다. 항구는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디아스포라 적 장소지만 어민들의 일터인 바닷가는 속성이 다르다. 항구와 같은 바다지만 천 리 낭떠러지처럼 배수진을 치고 생계를 이어간다. 시작점이자 새로운 삶의 출발점으로 작용하지 않고 삶의 끝, 종착지로서 인식된다.
이러한 역설적인 의미는 이주 여성인 영란에게 더 잘 와 닿는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곳이지만 그 세계는 닫힌 세계다. 같은 친구에게 토로하듯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방인 같은 자신의 존재는 안전하지 않다.
사고 후 그는 어촌계 사람들에게 남편이나 그의 몸'값'으로 환원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짐멜이 언급했듯,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따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사람'이 가지는 가치와 존엄성에 대해서 둔감해진다. 남편을 잃은 영란이 잔업을 하던 중 다가왔던 어촌계 남성의 매춘 시도는, 그만큼 가치를 제공하면 대체가 가능하다는, 값으로 환원될 수 있는 공동체 내에서 문화를 보여준다.
영란은 어촌계라는 공동체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판례와 용수의 가족 공동체에 속한다. 판례가 그토록 바라보던 용수가 사라진 가족에서, 영란은 판례의 챙김에 잠시 안전하다가도, 사망보험금을 챙겨 아들을 팔아먹는다는 판례의 시선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영란을 내 가족처럼 생각했다는 판례의 마음 역시 용수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감정이기에, 영란은 결혼 후에도 한편에 불안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전통적 가족이 아니라 대안 가족의 형태로 확장된 집단에 속하는 영국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삶을 찾아 나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베트남 등 동남아에 배타적인 영국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고 남성성이 드센 캐릭터지만, 자기 딸을 거쳐서 영란을 이해해 간다.
갇힌 세계 안에서 최 씨(향락)는 마을 사람들에게 배신자다. 간척 사업을 할 때 먼저 배를 팔고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지만,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지만, 서울에서 삶이 녹록지 않았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그래도 회장을 맡으며 어촌계를 바로잡아보겠다고 했던 그의 열정은 마을 공동체에 대한 회의로 바뀐다. 영국의 딸이 그랬듯 나무에 몸을 묶여 구타하는 집단의 문화에 질린 것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야만적이기도 하지만, 마을의 문화라고 본다면 어촌계 내의 사람들에게서는 별로 거리낄 게 없다.
결과적으로는 남편의 보험금을 갖고 야반도주한, 어촌계 사람들의 선입견을 몸소 실현한 '그런' 사람인 영란이라는 사례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닫힌 세계는 더욱 닫힐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닫히고 갇힌 세계에서는 타인에 대한 것이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자신의 영국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마을 의사의 언급에 너를 직접 들고 키웠다고 가볍게 으름장을 놓는 영국이지만, 정작 의사는 영국의 팔에 새긴 군대의 문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영란이 보험금을 갖고 도망치는 것(으로 보이는)을 보고 어촌계 사람들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동시에 '이게 사람 새끼가 하는 생각이냐'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역시 그럴 줄 알았다'라며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듣고 있던 영국은 꾹 입을 다물고 우직하게 배를 몰고 나간다. 용수가 처음에 영국에게 대꾸한 '이게 사람 새끼가 사는 건가'하는 대답을 그제야 이해한 듯이.
- 배급아카데미 6기 옥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