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는 결혼을 하면서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남편들이 여럿 있다. 연애할 때 애인의 맘을 사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한 형제는 그 사이 20년이 흘렀고 이제는 교회에서 찬양 인도를 맡고 있다. 결혼 전에는 교회에 다닌 일이 전무했던 다른 형제는 결혼하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아이가 태어나니 더더욱 교회를 안 다닐 수 없다가 3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첫 세례교인이 되었다. 다른 두 형제는 교회를 다니겠다는 약속을 하고 결혼을 했고,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이 형제들이 교회에 나올 때마다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참 착한 남편들이다.
얼마 전에 늘 솔직한 둘째가 교회에 안 다니면 안 되냐고 내게 다시 물었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자신은 믿음이 없는데 교회에 다니는 것이 위선처럼 느껴진단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안 믿어도, 교회 다녀도 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위에 언급한 형제들을 언급했다. 그리고 교회에 오기 싫을 때는 언제든 교회를 빠져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그럼, 다닐게"하고 딸이 대답했다. 그 사이에 가슴을 졸이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화의 요지는 위와 같았다.
교회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다니는 곳일까? 믿음이 없는 사람이 다니는 곳일까? 내 대답은, "누구나 다니는 곳이다"는 것이다. 교회를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다니는 곳으로 제한하면 아마도 지금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교회를 못 다니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믿음이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문제시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따르면 구원을 받는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것이다(롬 10:17). 그러니 믿음이 없다면 더더욱 예배에 참석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설교도 듣고 성경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특성들 중에 다음의 두 가지가, 우리가 믿음이 없어도 교회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하나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고(엡 2:8), 다른 하나는 믿음이 씨앗과 같이 자란다(마 17:20)는 사실이다.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은 믿음이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믿어진다!"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믿어지는 것은 "어느 시점"이 있고, 이것을 스스로든 타인이든 강요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선물"이니 "하나님의 때"에 주어진다. 그러니 내가 지금 "믿음이 없다"라고 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을 그만둘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때를 기다리며 교회를 다니는 것이 더 겸손한 태도일 것이다. 두 번째로 믿음은 자라나는 씨앗과 같다는 의미는 그 시작을 우리가 잘 느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믿음은 우리 마음밭에 심기는 씨앗과 같다. 우리는 그것이 땅 속에 있을 때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그 씨앗이 자라서 뿌리가 깊어지고 그 나무가 자라면 우리는 믿음의 실체를 부인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파리가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으면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풍성한 삶을 경험한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이 우리 마음에 심겨서 믿음이라는 나무를 자라게 하고 의라는 열매를 맺는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니 나 자신이 보기에 혹은 가장 가까운 아내나 부모가 보기에, 믿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교회에 안 다닐 필요는 없다. 머지않아 그 믿음의 싹이 보일 것이고 마침내는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교회에 계속 다니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