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36년 전에 어른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처음 드렸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예배순서를 전혀 알지 못해서 언제 일어서고 앉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를 빼고는 모두 찬송가책을 들고 찬송을 힘 있게 하는데, 나는 찬송가를 모르니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사도신경을 외워서 신앙고백을 하는데 나는 그저 눈을 감고 웅얼웅얼 소리를 내며 따라 하는 척했다. 장로님께서 열심히 기도를 하시는데 기도가 무척이나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당황했던 시간이 왔다. 헌금 바구니가 앞에서부터 전달돼서 오고 있는데 나는 헌금이 없었다. 따로 용돈이라는 것이 없던 나로서는 그 후로도 헌금 바구니를 한 동안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어지는 목사님의 설교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종종 성경 어디를 펼쳐 읽으라고 하면 성경이 66권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도 모르던 나로서는 내 신앙의 밑천을 다 드러내는 것 같았다. 가끔씩 언급되는 구약의 인물들은 모두 낯선 이름이었고 누가 더 오래된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고 목사님께서 축도를 하셨는데 나는 목사님께서 두 손을 들고 우리들을 축복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어색하고 낯설다 못해 당혹스럽고 창피하기까지 한 주일낮예배였지만 나는 계속해서 출석을 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처럼 "은혜를 받으면" 창피함을 무릅쓰고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 토요일에 중고등부예배가 따로 있었지만 나는 장년부예배라고 하는 주일낮예배에도 참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일저녁예배에도 참석하고, 수요기도회와 당시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하는 새벽기도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주일학교에 나가지 않은 것이 후회돼서 당시 중3이었지만 주일학교에도 참석을 하고 초등학교 5-6학년과 함께 공과공부도 했다. 담임목사님께서 다른 교회에 설교하러 가실 때면 목사님 가방을 들고 따라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읽었다. 아침에 나오는 극동방송에서 나오는 설교를 들으며 당시 곽선희목사님의 설교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교회 어른들이 걱정할 정도로 미친 듯이 교회를 다니니 어느덧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줄줄 외고 있었고, 교회 신년부흥회에서 북을 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다음 해에는 주일학교 교사가 됐고, 성경공부만이 아니라 설교도 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응축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좋았다.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자원해서 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깨닫게 되면 누구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처럼 반응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 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전에, 처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들이다. 나는 종종 교회에 다니는 것이,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다른 나라에서 타문화를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같은 한국어를 쓰는데 그 의미가 모호하게 들린다. 게다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때로는 손을 드는 행위가 어색하게 다가온다. 콘서트장에서 떼창을 하는 것과도 다른 느낌이다. 목사가 자신의 말에 근거처럼 인용하는 여러 성경구절들을 들을 때는 그저 성경 어딘가에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목사가 하는 말이 매번 비슷하게 들린다. 무엇보다 예배가 끝나고 인생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환하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 자신이 어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나는 친구 따라 교회를 처음 나온 사람들이나, 가족을 따라 교회를 처음 나온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36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혹 당황하지 않을까 싶어 신경을 더 쓴다.
"Non-Believer Friendly Church" 즉, 비신자가 당황하지 않는 교회 혹은 비신자에게 친화적인 교회가 되려면 교회를 오랜 다닌 신자들에게 "덜 은혜로운" 변화를 주어야 한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일예배다. 우리는 더 은혜로운 주일예배를 만들기 위해서 기존에 있던 많은 순서들을 없애고 찬양하는 시간이나 기도하는 시간을 더 많이 넣었다.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은 예배의 형식과 순서가 있어야 덜 당황한다. 예측 가능한 것이고 그것들을 따라가면서 자신도 예배에 참석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장 당황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손을 들고 찬양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 내서 "은혜롭게"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 낯선 광경 앞에서 나도 은혜를 받아서 저들처럼 찬양하고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방문자들 중에 거의 없을 것이다. 예배 때, "믿음이 좋은 사람들"의 "은혜로운 행동"은 어쩌면 방문자들에게 이질감만 더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금요기도회"와 "부흥회" 그리고 "경배와 찬양 집회"까지 합쳐놓은 주일예배 분위기를 지양한다. 예배 순서가 단순하면서 어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예배 분위기를 갖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리고 내가 설교를 할 때는 너무 많은 성경구절을 인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성경구절을 인용할 때도 책 이름 정도만 말하고 장과 절은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교회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우리가 들어 오린 손이나, 감성적인 노래 그리고 유창한 기도에서 "은혜"를 받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배려해서 표현을 절제하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며 "은혜"를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