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전도법

by 최정식


"나무 이야기"(나무 전도법)


- 이 전도의 내용은 2009년 산본무지개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할 당시, 합동신학대학원에서 Th.M. 수업을 들으면서 만든 것이다. 당시 교회에서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을 가르치고 있었고, 학교에서는 교리설교와 로마서 원문 강해를 수업으로 들었다. 사영리처럼 기존에 해오던 전도 방식도 이 내용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


1. 인생

인생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예수를 믿던 믿지 않던 대부분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허무 등으로 답한다. 이것은 120세를 산 모세의 고백과도 동일하다. 그는 시편 90편 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생의 고통과 슬픔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종교와 철학마다 다르다. 우리가 믿는 성경은 이 고통이 죽음에서 왔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죽음에서 올 수 있는가? 성경은 죽음의 정의를 우리와 다르게 내리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단절을 의미한다. 단절이 어떻게 죽음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하려면 나무를 떠올리는 것이 좋다. 원나무에서 나무 가지가 잘려 나가 땅에 떨어진 모습을 그려보자. 잘려나간 나뭇가지는 죽은 것인가? 아니면 산 것인가? 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인간은 죽은 상태라고 말한다. 우리의 원나무이신 생명의 하나님에게서 끊겨, 생명과 단절되어 말라비틀어져가는 나무 가지 같은 존재가 인간이다. 결국 이러한 나무는 영원한 땔감으로 쓰인다.

이러한 죽음이 인간에게 왜 왔는가? 성경은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죄라는 정의 역시 성경은 다르게 설명한다. 성경은 불순종을 죄라고 말한다. 어째서 불순종이 죄인가? 죄라는 것은 둘 이상의 인격적인 존재 사이에서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둘 이상의 인격적 관계에서 서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의이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여기서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약속을 하는데 이것을 법이라고 한다. 결국 그 법을 지키는 것은 의가 되고 어기는 것은 죄가 된다. 나라와 국민 사이에 서로의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것도 법이다. 나라도 법을 지킴으로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국민도 법을 지켜 나라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부모는 자녀를 낳고 사랑하며 책임을 다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녀에서 무엇을 하라든가 하지 말라든가 하는 명령을 준다. 이때 자녀가 순종을 하면 의가 되고 불순종을 하면 죄가 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창조하시고 법을 주셨는데 그 법을 인간이 지키지 않은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불순종이 단절을 낳았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인간이 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는가? 이것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다. 성경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타락인가? 믿지 않는 것(불신)이 타락이다. 우리가 지금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부모를 믿지 않는 것이 타락이다. 무엇을 믿지 않는 것인가? 바로 부모의 사랑과 권위를 믿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외출하면서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꺼내 먹지만 검은 병에 든 약은 먹지 말라고 했을 때,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자녀는 그것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가 자신들만 몸에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한다'면서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는 자녀는 그것에 손을 대는 것이다. 또한 '부모가 나보다 더 지혜롭고 능력이 더 많다' 즉, 부모와 자신 사이에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부모의 권위에 순복하는 자녀는 순종하지만, “부모나 나나 오십보백보다”라는 생각을 가진 자녀는 불순종한다. 그래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에게 뱀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라고 유혹했다. 사춘기의 자녀들이 이 때문에 부모와 갈등을 겪는 것이다. 자신이 부모보다 지혜롭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부모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처럼 부모를 대하고 더 나아가서는 부모를 업신여기기까지 한다. 그러나 외적으로 그래 보인다 하더라도 어른이 될 수 없고 부모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그 안에 모든 것을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고 인간은 그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마음이 타락이고 이 타락 때문에 죄를 지었으며 마침내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끊긴 죽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정의하는 인생이다.


2. 구원

그런데 우리가 언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을 듣고 약속을 맺은 적이 있는가? 우리 기억과 체험에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약속을 맺었다. 성경은 아담이 우리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한다. 지금도 우리는 대표원리를 따른다. 가정에도 대표가 있고 나라에도 대표가 있다. 그 대표가 계약을 하면 그 효력은 그 구성원 전체에게 미친다. 상도 그렇지만 벌도 마찬가지이다. 아담은 최초의 인류로 모든 사람은 아담의 씨를 따라 태어났다. 그러므로 아담이 모든 사람의 대표이다. 나뭇가지의 예를 들자면, 잘려나간 나뭇가지의 맨 앞에 아담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담을 지으시고 명령을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


그러나 우리 대표인 아담은 이 명령에 불순종했다. 죄를 지은 것이다. 그 결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밖에 없다. 문제는 아담이 우리 대표라는 것이다. 우리 대표인 아담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은 곧바로 아담을 대표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가가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다. 죄를 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죄는 단순히 책임만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에 오염도 일으킨다. 이것을 죄의 오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를 미워하라고 배우지 않았는데도 미워한다. 이것이 죄에 오염된 상태다. 죄의 책임과 죄의 오염이 아담을 대표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다. 이것을 원죄(Original Sin)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람은 살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서 끊임없이 죄를 짓는다. 이것을 스스로 짓는 죄라 하여 자범죄라고 한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이 죄의 문제는 내가 괴롭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죄인인 모든 사람에 대하여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진노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집을 나간 아들과 같이 그 죄의 결과인 죽음 가운데 고통스럽게 살다가 영원한 형벌인 지옥에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한다. 앞서 설명한 나무 그림을 떠올려보자. 잘려나간 가지에 붙어있는 내가 구원받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잘려나간 아담이라는 가지에서 다시 끊겨 하나님이라는 원 가지에 다시 붙는 것(접붙임)이다. 성경은 우리가 다시 접붙임으로 붙게 되는 나무를 예수라고 말한다. 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한 나무이다. 예수님은 결혼을 하지 않는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잉태됐다. 그러므로 그는 아담과 법적으로 상관이 없으며, 그 결과 아담의 죄에 대한 책임과 그 죄로 인한 오염이 없다. 즉, 원죄가 없다. 또한 예수님은 범죄 하기 전에 아담처럼 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면서도 죄를 짓지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않고 순종했다. 하나님의 명령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라고 요구를 하셨다.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신 것이다. 또한 이웃인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죽으심으로 이웃사랑도 지키셨다. 놀라운 사실은 아담이 모든 사람의 대표인 것처럼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대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가 가진 죄의 책임이 그의 후손들에게 빠짐없이 전가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순종함으로 얻은 의가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전가된다. 이것을 칭의(稱義)라고 한다. 이렇게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다시 연합하여 생명을 공급받으며 죄의 오염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거룩해져 간다고 해서 성화(聖化)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생명에 이르는 것을 성경은 구원이라고 말한다.


3. 구원자

태어날 때부터 아담을 대표로 하는 모든 사람은 죄의 책임과 오렴을 가지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형벌 중에 살아가다가 결국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반면에 죄와 사망 아래에서 벗어나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 가운데 사는 것이 구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왜 꼭 예수님이여만 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앞서 설명한 내용 중에 우리가 아담이라는 가지에서 끊겨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담에게 끊기려면 죄의 책임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죄의 책임은 사망이다. 그렇게 때문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 대신에 죗값을 치르기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우리를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면서 또한 죄는 없어야 한다. 만일 죄가 있다면 자기 죄 때문에 죽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죄 때문에 죽고 끝나면 안 된다. 또한 그 누군가는 죽었다가 부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죽음으로 그를 대표로 하는 우리도 죽고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담을 포함한 모든 사람 가운데 죽음에서 부활해서 지금까지 산 자가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부활을 할 수 없다. 결국 구원자는 하나님이어야만 한다. 정리하면, 우리의 구원자는 사람이면서 죄가 없는 의로운 자이며, 동시에 하나님으로서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분은 단 한 분밖에 없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예수 밖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말한다.


4. 믿음

지금까지 설명한 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사는 사람이 그 진노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의 의를 의지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죄는 없어지지도 감해지지도 않는다. 다만 그 죄를 더할 뿐이다. 내가 죄인인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법을 준수하는 일은 죄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율법요구가 백 가지가 있다면 그중에 하나만 어겨도 죄가 된다. 그리고 그 백 가지 법을 평생 잘 지켜오다가 오늘 하루 한 번만 어겨도 나는 죄인이 된다. 게다가 우리가 지은 죄는 아무리 착한 일을 한다 해도 처벌을 받기 전까지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죄인에게 구원 얻을 길이 생겼으니 어찌 복된 소식(복음)이 아닌가!

이제 이 복음을 들은 인간의 정당한 반응을 살펴보자.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 자녀의 정당한 반응은 믿음과 사랑이다. 앞서 설명한 예수라는 생명나무에 우리가 접붙임을 받는 것을 연합이라고 한다. 예수와 우리는 어떻게 연합하는가? 믿음으로 연합을 한다. 부부가 결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남자를 내 남편으로, 이 여자를 내 아내로 믿는 믿음으로 부부가 연합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는 것인가? 앞서 설명한 내용들을 믿는 것이다. 먼저, 내가 죄인이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므로 죽음이 억울하게 여겨지지 않고 마땅하게 여겨져야 한다. 두 번째로는 죄가 없으시며 의로운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한 나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예수님께서 그 피로 내 죗값을 치르시고 나를 사셨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의 것이 되고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것을 진심으로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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