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했고, 우리 가족은 인도에 내려진 봉쇄령(lock-down)을 피해 4월에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들어와서 우리 가족은 어머니께서 사시던 시골집에서 6개월 가까이를 살았고, 이후에 2달은 서울에 있는 선교관에 머물렀다.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인도에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와 아내는 우리의 다음 사역을 놓고 고민했다. 때마침 인도에서 사역하기로 계획한 10년이 마쳐져 가는 때였기 때문에, 나는 한국 사역을 그때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관심을 가졌던 사역은 하숙사역이었다. 인도에서 교사와 기숙사 사감을 한 경험을 살려서 학생들을 돌보는 사역이다. 지방의 초중고 학교 근처에 넉넉한 집을 얻고 학생들을 위탁받아서 돌보는 사역이다. 교육은 공교육 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하고, 하숙집처럼 학생들을 데리고 살면서 생활과 신앙 그리고 영어와 독서 교육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서 틈틈이 시골집들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15명 정도가 살만한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땅을 사서 집을 짓는 방법이 있었는데, 내 고향인 공주는 세종시 때문에 땅값이 오를 만큼 올라 있어서 우리 형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향에서 농사짓던 선배가 나에게 귀농을 신청하라는 조언도 했는데, 귀농해서 용지 변경하고 집 짓는 데는 적어도 5년 이상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사역은 나중에 중미를 다녀와서 하기로 미뤘다. 두 번째로는 자연스럽게 크리스천 기숙학교에 취직해서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었다. 지방에 있는 대안학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지만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었으니 새로운 선생님을 뽑을 일이 만무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인도에서 교사로 8년을 직장생활을 했는데 또 그런 직장생활을 하는 것에 그리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당시 우리 부부는 주중에 인도에 있는 헤브론학교의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헤브론학교 월급과 선교사 후원금을 합해서 우리 수입이 월 200만 원 정도였는데 그 돈으로는 5인 가족이 한국에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감사하게도 고향 교회 후배와 친구의 도움으로, 나는 4명의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부수입을 얻어 생활비에 보탰다. 주일에는 우리 가족끼리 예배를 드리다가 군포에 있는 준언이네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당시 준언이 동생인 이언이는 장애로 예방접종을 맞을 수 없는 상태여서 더더욱 외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면서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어떤 사역을 하든 준언이네 가까이 있으면서 그 가족에게 힘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준언이네 가까이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사역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나는 새 교회를 설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에게 내가 어느 교회에 부목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나는 부목사로 있었던 두 교회에서 모두 담임목사들과 갈등이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성도들이 나를 선호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넉넉하게 바라봐주는 담임목사들은 많지 않다. 그러면 기존 교회에 청빙 받아 가는 것은 어떨까? 아내의 대답도 내 생각과 같았다. 기존 교회에 청빙 받아 가서 주어진 역할만 하라고 요구할 때,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즐겁게 그 역할을 감당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본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하고, 자유분방하게 사고하며 사역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내 사고와 사역 스타일을 용인할 수 있는 기존 교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새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나에게는 그게 더 맞을 것 같다며 내 생각에 동의했다. 다만 자신은 담임목사의 사모가 되는 것에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교회는 애당초 기존의 담임목사와 사모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 교회니까. 나는 아마 우리만이 아니라 성도들도 처음으로 경험하는 교회가 될 것이라며 아내를 설득했다.
나는 함께 예배를 드리던 준언이네와 종종 함께 하던 가흔이네(준언이 이종사촌)한테는 교회를 함께 하겠느냐고 공식적으로 묻지 않았다. 이미 우리 부부를 목사와 사모로 부르고 있었고, 6개월 가까이 주일 예배를 함께 드려온 터라서 묻지 않아도 우리 마음을 알 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청년 때부터 15년 이상을 알고 지냈고, 이전에도 목사와 성도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해서 이 두 가정과만 교회를 이루는 것은 왠지 매우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 용인에 살던 소울이네한테 묻기로 했다. 소울이 아빠는 고향 교회 후배이자 주일학교 제자였다. 형제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연락이 다시 닿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인도에서 10년 동안 사역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우리를 후원했다. 나는 그런 후배가 고마워서 한국에 들어올 때면 종종 연락을 했고, 그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목사와 성도로 인연을 맺은 것이 아니니 소울이네가 함께 하겠다고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하나님께 "이 가정이 함께 하겠다고 하면 새 교회 설립이 주님의 뜻인 줄 알고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전화로 '함께 교회를 이루겠느냐'라고 물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소울이네는 '함께 교회를 하고 싶다'라고 답을 주었다. 우리는 곧바로 2020년 11월에 몇 주일에 걸쳐 교회 설립을 위한 준비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6일 첫째 주일에 소금교회 첫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