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정과 소금교회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내가 성도들에게 당부한 말은 헌금에 관한 부분이었다. 나는 성도들에게 "여러분들은 기존에 하던 대로만 헌금 생활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작고 자립이 안 된 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할 때, 헌금 생활을 가장 열심히 하시던 집사님이 교회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교회가 빚에 허덕이거나 목사 가정이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편한 성도는 없다. 처음에는 안쓰럽기도 해서 성도 본인도 힘에 지나도록 헌금 생활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형편이 나아지지 않으면, 그 성도는 어느덧 교회에 대한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결국 조용히 교회를 떠나는 일이 벌어진다. 목사 가정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성도라면 누구나 목사 가정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이 쓰인다. 그러니 목사 가정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든데도 자신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가난한 목사 가정을 보는 것에 부담이 된다. 이런 성도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목사 가정이나 교회 형편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세 가정이 우리 가정을 책임질 수 없으니, 저나 아내는 일을 하겠습니다!"
처음 교회 예산을 세우면서 성도들에게 월정헌금을 작정하라고 했다. 월정헌금은 기존의 십일조에 해당하는 것이다. 첫 해에 우리 가정을 포함해서 4가정이 작정한 월정헌금은 모두 120만원이었다. 그 가운데 월세 40만원을 빼고, 20만원은 예비비로 적립해 가기로 하고 나니 내 월급은 60만원으로 책정이 되었다. 당시 나는 여전히 매월 100만원 정도의 선교후원과 헤브론학교에서 주는 부부 월급 100만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260만원으로 5인 가족이 한국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온라인 영어과외 일을 시작했다. 한국 학생들과 인도 선생님들을 연결해서 온라인으로 영어과외를 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는 학부모를 상대하고, 교사들을 지도하는 일을 맡았다. 한 때는 학생들이 20명이 넘어서 월 수입이 100만원 정도까지 되기도 했다.
우리 부부가 헤브론학교를 그만두고 인도를 완전히 떠났을 때, 우리 수입의 100만원 줄었고 기존에 나가지 않았던 세 아이의 학비를 학기당 1000만원씩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사이 6개월 이상 교회 재정이 운영되면서 수입재정이 안정되었다. 나는 헤브론학교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끊겼으니 교회가 월급을 올려달라고 했고, 성도들은 흔쾌히 내 월급을 100만원으로 올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6개월이 지나 우리 부부는 선교사직을 사임했다. 이제 교회 월급 100만원과 온라인과외 수입 100만원, 총 200만원이 우리 가정 수입의 전부가 되었다. 그 무렵 교회는 "7가정 30명 성도"로 성장을 했다. 그리고 교회는 새 해 예산을 책정하면서 내 월급을 교회가 줄 수 있는 최대치인 200만원으로 상향시켰다. 나는 성도들에게 목사의 월급은 한 번 정해지면 계속 인상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형편에 따라 언제든 변경이 가능한 것이니 6개월간 교회 재정을 지켜보고 교회가 감당하기 어려우면 낮추자고 했다. 다만 교회가 담임목사인 내가 프라이드(pride)를 느낄 수 있는 결정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내가 그 해 3월부터 기숙사 사감 선생님으로 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수입원이 생겼다. 나의 온라인과외 일은 그 무렵 코로나 엔데믹이 되면서 점점 줄어들었고, 나도 교회 사역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그 일은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 부부의 수입은 비슷하다. 첫째인 아들이 헤브론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군복무를 하고 있어서 지난 2년 반동안 용돈 한 번 받지 않고 잘 살고 있다. 올해에는 둘째가 헤브론학교를 졸업했고 내년 3월에 대학에 진학한다. 내년에 아들이 전역하고 후년에 대학에 입학하면 부모로서 학비는 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셋째도 내후년이면 헤브론을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한다. 걱정이 덜 되는 것은 한국에는 국가 장학금 제도가 잘 돼 있어서 우리처럼 재산 없는 사람들의 자녀들은 장학금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셋째부터는 대학등록금이 전액 무료이니, 셋째는 오히려 등록금 비싼 대학을 가야 하지 않을까 하며 농담을 한다. 그러나 월 400-500만원의 수입으로 5인 가족이 수도권에 집을 얻어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그 사이에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마이너스가 없이 살 수 있었다. 아이들의 학비를 돕는 손길도 있었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후하게 주는 성도들과 친척들도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급하게 인도에 들어가야 할 때에 항공료를 후원하는 분들도 있었고,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손길도 있었다.
나는 최근에 온라인영어과외 일을 다시 시작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고, 효용이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는 정도다. 큰 수입은 아니지만 재테크를 할 수 있는 30-40만원의 수입은 된다.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때부터 지금까지 청약저축과 국민연금을 빼고 재테크를 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전혀 없었다. 나는 언젠가 교회를 사임할 때, 교회와 성도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목사의 가정만이 아니라 목사의 미래도 그 목사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이 모든 일 즉, 목회와 생계 사이에서 삶의 우선순위와 분배를 지혜롭게 하려고 노력한다,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라는 기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