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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식 Jul 06. 2023

"성경공부"가 아니라 "성경산책"

성경을 배우고 익힌다는 의미에서는 성경공부라는 단어보다는 성경학습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싶지만 아마도 학교에서 쓰이는 공부의 개념이 교회에도 소개된 것 같다. "공부"라는 단어에는 "수고해서 힘써서 익힌다"는 의미가 있는데 나무위키를 참고하니 선종 불교에서 오거나 옛 일본어의 개념에서 온 것이라 한다. 우리도 "공부"라는 단어를 쓸 때는 "하기 싫어도 참고 노력해서 배운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데 시편 119편 103절에서 시인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보면 공부라는 말은 성경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굳이 단어의 유래나 의미를 따지지 않더라도 성경공부라는 용어는 교회를 학교로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우리 모두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지는 않지 않은가?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자원함이 없이 피동적으로 교실에 앉아서 교육받던 것이 싫어서일 것이다.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다. 교회는 지각하면 혼나고 결석하면 수행평가 나빠지고 모르면 성적이 떨어져서 마침내 문제아 취급받는 곳이 결코 아니다. 그러니 교회가 진리를 배우는 학교이기는 하지만 교회를 우리가 싫어하는 "그 학교"로 만들면 안 된다.

   그래서 선택한 용어가 성경산책이다. 성경산책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성경에 오래도록 머물라는 것이다. 때때로 "성경달리기"나 "성경트레킹"도 필요하지만 성경은 기본적으로 천천히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하는 책이다. 성경은 "읽고 내용을 파악하고 적용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마치는 것"으로 다 읽었다고 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후다닥 먹어치우듯이 성경을 먹으면 허기는 때울지는 몰라도 그 밥상을 차리신 하나님과 대화 한 마디 없이 집을 나서는 것이 된다. 사실 하나님은 산책하시는 분이다. 창세기 3장 8절에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라는 말씀에서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죄를 지은 중차대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쏜살같이 달려오시지 않고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서" 산책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산책하시며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오셔서 대화를 나누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대화하시고자 산책하신다. 그 하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성경산책이다. 산책이 반드시 긴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산책을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산책"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여유를 주고 그 여유를 가지고 성경본문에 머물다 보면 시간의 양과 무관하게 성경을 산책할 수 있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산책은 하나님과 보내는 양질의 대화를 갖게 한다.

   두 번째로 성경산책이라는 용어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도 여유롭게 대화하라는 의미이다. 성경묵상이라는 단어는 묵상이라는 용어 때문에 상당히 개인적이고 사적이다. 묵상은 혼자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묵상에 방해가 되기 쉽다. 그러니 성경묵상은 여럿이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산책은 누구나가 동참할 수 있고 동참하면 더 여유롭고 풍성해진다. "같이 공부할래?"나 "같이 묵상할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 "같이 산책할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에게 떠오르는 그림이 너무도 다르다. 그러므로 "같이 성경공부할래?"나 "같이 성경묵상하자!" 보다 "같이 성경산책하러 가자!"가 훨씬 사교적이고 즐거운 표현이다. 성경이라는 숲을 산책할 때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즐겁다. 혼자 걷지 않으니 외롭거나 두렵지 않다. 내가 늘 다니던 길에서 놓였던 숲의 재미와 풍성함을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더해준다. 무엇보다도 그 숲을 지나고 나면 그 사람과 나는 어느덧 친구가 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소금교회는 성경공부가 아니라 성경산책을 한다. 공부는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나누지만 산책은 자주 하는 사람과 가끔 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공부에 중독된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공부라는 단어 대신에 산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바라기는 성경산책으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교회가 하나님처럼 세상을 산책하며 세상과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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