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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Jan 18. 2023

나만의 휴식을 찾아서

#낫워킹맘

아이들과 자주 찾는 장소가 있다. 벌써 3년이나 되었는데, 그곳은 시골 외딴곳에 있는 책방이다.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부담되지 않는 거리에다가 책방 오른편에는 북스테이 할 수 있는 숙소가 딸려 있는 곳이라 남편이 바쁜 주말에는 아이들과 떠나기 좋은 여행지였다. 호수가 보이는 통창과 지붕 사이 천창으로 쏟아지는 햇볕, 책과 하루 종일 노닐 수 있는 여유까지. 도심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고즈넉한 쉼이 그곳에 가면 있었다. 아이들은 여름엔 숙소에 딸린 작은 풀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겨울엔 아무도 없는 새하얀 눈꽃세상에서 볼과 귀가 뻘게지도록 뒹굴었다. 낮에는 책방에서 책을 보고 밤에는 다락방에 누워 선선한 시골의 밤공기를 맡으며 하늘의 별을 보았다. 사장님네 강아지 밀키를 너무 좋아해 아침이면 산책 가는 밀키와 같이 논두렁길을 따라 걸었고, 매년 줄지어 날아가는 철새들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렇게 계절마다 몇 번을 찾아가다 보니 이제 그곳은 제2의 고향 또는 친정처럼 편안해진 곳이었다. 


사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동안 나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했다. 예측 불가한 일이 생기면 늘 불안했다. 그래서 그전에 세세한 것까지 계획하는 사람이었고, 문서로 정리하고 깔끔하게 프린트해서 늘 그대로 움직였다. 한 번 계획이 틀어지면 큰 마음을 먹어야 했고, 아이들과 가는 곳은 안전까지 생각해야 하느라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조이고 긴장할 정도로 가는 것은 여행이라 말할 수 없지 않나? 나까지 여행지의 가이드일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이곳으로의 여행이 익숙해질 때쯤 나는 다짐했다. 쉼이 필요한 순간에는 늘 이곳을 찾으리라고. 내게 능동적인 휴식을 부여하겠노라고.  




내가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휴식은 무엇인가.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 긴장만 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들이 커서 나무 그늘이 있어도 쉬어가질 못하고 지나친다. 자신을 이완시키는 방법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계속 수축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일까? 행복은 억지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혼자 여행을 통해 마음껏 자연을 누리고 걷는다.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그곳을 느끼고 어린 날을 추억한다. 좋아하는 책을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깊은 사색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아름다움을 찾아본다. 새소리, 꽃잎, 작은 돌멩이, 바람. 너무나 당연하게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전시회에서도 시간을 오래 쓴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점점 변하는 것이 있다. 내가 점점 더 느슨해지고 있다는 것. 늘 가고 싶은 곳 몇 군데만 정해두고 나머지는 그냥 흘러가게 두었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지 않으니 느끼는 것은 더 풍요로워졌다. 


휴식에도 나만의 루틴이 생기면 좀 더 여유로워진다. 나의 휴식법은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이고, 아이들의 휴식법은 주말 하루는 자유를 만끽하며 TV를 보는 것이다. 남편의 휴식법은 매일 일기를 쓰고 밀린 잠을 잘 때라고 한다. 저마다의 휴식을 취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모두 다 자기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껏 가족에게도 지켜야 할 기준을 너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다. 




가끔 친정집에 가면 마음이 편안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익숙한 그곳의 냄새와 공간이, 그리고 비빌 언덕이 있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친정엄마는 반대로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불편해하셨다. 집이 너무 깔끔한 게 불만이라고 하셨다. 


"너무 반듯하게만 살다 보면 날카로워서 사람들이 너를 떠나. 조금은 둥글게 살려고 노력해봐. 허점이 보여도 괜찮은 거야.”


이제 나는 나를 빡빡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조금씩 버려보고 살려고 한다. 청소할 때 정리정돈에 목숨 거는 것을 버리고,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아도 의연해하고, 노트 정리를 예쁘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하는 것. 사람들의 시선 따위를 의식하지 않고, 자녀양육에서 일어나는 이슈들을 나 혼자 결정하거나 처리하지 않고,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터놓는 법을 연습하고, 내 하루를 정해진 틀 안에 넣지 않을 것이다. 편안한 쉼이 내게 선물을 주듯, 나도 편안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내게도 모델하우스보다는 고향집 같은 냄새가 풍겼으면 좋겠다. 



#엄마에세이 #일하지않는엄마가하고있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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