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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얼리 Jul 12. 2022

박해일이라는 문장과
탕웨이라는 마침표.

완벽한 이야기, <헤어질 결심>에 대한 짧은 단상

해준(박해일 분)의 삶,

지독한 불면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잠을 못 자면 피곤해서 하루 종일 축 쳐져 있을 것 같지만, 산처럼 꼿꼿한 각성이 도무지 스러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한 밤 잠도 제대로 못 다루는 사람이, 어떤 결심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긴장과 불만족이 공존하는 불면의 하루하루를 표현해내는 해준의 모습에서 시종일관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떤 체념이다. 맘대로 할 수 없는 것들 - 수면, 부부관계의 여러 측면, 더 나아가서는 (꼿꼿하지 못한) 인간 - 따위에 관한 깊고 깔끔한 체념. 불혹이라는 나이는 아마도 내가 어찌할 수 없기에 내려둘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는 나이가 아닐까, 그래서 40대 해준(박해일도 마찬가지)의 인생은 간결한 모양새다.  






그에 비해 젊은 서래의 삶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해 보인다. 서래에게 확실한 것은 할머니의 유골함과 할머니가 말씀해주신 산, 그리고 죽음 정도였을까. 불확실한 것들 사이에서 치밀하게 생존을 생각해야만 하는 서래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 뿐이었을지 모른다. 극 초반에서 해준에게 보이는 망설임 없는 태도는 오랜 기간 목적만을 생각해온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묵직한 서래(탕웨이 분)의 마침표


그런데 극 중반, 깔끔한 해준의 추리가 닿지 못했던 미결 사건에 서래가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살인사건의 진범 홍산오(박정민 분)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 영화를 볼 때는 사랑에 관한 직관이었나 했지만 죽음에 관한 직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준과 산오의 마지막 눈빛 교환은 꽤나 인상적인 분위기 전환 장치였다. 

분위기 전환에 이어 해준과 서래의 삶도 완전히 뒤바뀐다. 마침내. 


영화를 다 보고서 대본을 꼭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과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했다. 


모호한 감정은 모호한 대로 두고 지나가야 할 때도 있는 것이리라. 다만, 박해일이라는 문장과 탕웨이라는 마침표를 마음에 새긴 채 진짜 문장과 글로 이루어진 극본에서 박찬욱을 떠올리고, 또 감탄하고 싶다. 




마침표는 동그란 점일 수도, 네모난 점일 수도 있다. 영화를 보기 전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평을 많이 만났으나, 크게 와닿지 않았다. 탕웨이의 한국어 실력이 어떻든, 마침표는 마침표였다. 





덧. 을유문화사에서 대본집을 발매한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차질없이 잘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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