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2017년 8월 18일 13시 인천 한림병원에서 외할머니가 작고하셨다. 임종 소식을 듣고, 언니와 나는 할머니가 계시는 병실에 도착하였다. 할머니의 코와 귓속에는 이미 휴지가 꽂혀 있었고, 힘없는 턱을 고정하려는 듯, 턱 주위로 수건이 매여 있었다. 언니는 내 뒤에서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지 않았던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 이불을 열어 할머니 손을 만졌다. “언니. 할머니 손이 차가워.” 할머니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할머니와 닮은 차가운 밀랍인형만이 누워있는 것 같았다. 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방이 꽉 차고, 할머니는 하얀 천으로 둘둘 말려 들것에 실려나가셨다. 항상 할머니 추울까 더울까 걱정하며 모시던 엄마와 이모들의 정성이 무색하게, 차갑게 식은 할머니가 큰 꾸러미처럼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열여덟에 종갓집에 시집온 할머니는 집안의 맏며느리로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고추농사를 지으며, 자식 일곱을 여의고 86세의 나이에 임종하셨다.
할머니가 안 계신 첫날.
8월 19일 새벽. 남동생과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섰다. 아직 하늘은 깜깜하고 술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다녔다. "혼자였으면 위험했겠다." 깜깜한 새벽,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동생과 나는 역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기분이 이상했다. 세상이 흔들리는 기분이랄까. 위험지대 속에 우리 둘만 의지하며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떨어져 있지 말자." 동생에게 말했다. 정읍에 도착했다. 아침의 장례식장은 한산하다. 간밤에 장례식장 로비에서 불편한 잠을 주무신 아빠가 인기척에 깨어나시고 나와 남동생을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신다. 술을 많이 드셨는지, 많이 우신 건지, 눈이 빨갛다. 얼굴이 무척 수척해지신 엄마는 밥을 챙겨주신다. 남동생은 잠이 덜 깬 얼굴로 북엇국을 천천히 먹고, 온 가족이 모이는 행사여야만 볼 수 있는 7살 어린 조카가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조카는 2년 만에 보는데도 나를 기억해준다. 할머니와 싸우고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던 큰 이모부는 시골 임실부터 인천까지 한 달음에 달려오셨고, 아침에도 깨어있는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오전 11시즘,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등 돌 리던 관계들도 만나서 한 마디씩 건네고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예의를 차린다. 아빠와 이모부들의 회사분들이 자리를 매우시고 시끄러울 것도 없고 침울할 것도 없이 밥 한 끼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녀가신다. 할머니라는 강인한 아교가 사라져서 그런지, 친지들은 그 헛헛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없이 조문객을 맞이하셨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
입관의식을 치르기 위해 가까운 친지들은 지하로 내려갔다. 할머니는 돌아가시지 몇 달 전부터 기독교로 개종하셨지만, 장례절차는 불교의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입관의식 동안, 죽은 자의 귀가 아직 열려있다고 합니다. 하시고 싶은 이야기 말씀하세요." 진행요원의 절차를 듣고 우리는 통유리 너머에 있는 할머니 시신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가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쏟아내셨다. 할머니는 자기 딸의 고생길이 보여 처음 인사드리러 온 아빠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았다고 한다. 동네 분 중 한 명은 아빠가 키가 작다며, 놀리기까지 하셨다는데, 만만치 않은 성격을 가진 아빠가 그 말을 다 참았다니 엄마가 정말 좋으셨나 보다. 인사드리고 집에 오는 길에 엄마와 아빠는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보란 듯이 잘 살 거라며 크게 우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 할머니에게 너무 서운했던 엄마는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때 할머니 마음이 이해가 되어,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아무튼 아빠는 우리 세 남매가 하고 싶은데로 살게끔 부족함 없이 우리를 기르셨으니, 다짐을 이루셨다. 아빠는 할머니 생전 동안 집대소살일에 관여하시며 할머니를 불편함 없이 많이 도와드렸다. 5살에 조실모한 아빠에게 친모 같은 분이셨으니, 한없이 울고 계시는 아빠의 모습은 마치 새신랑이었던 시절로 돌아가 "어매 나왔소."라고 하고, 누워있는 할머니는 "김서방 왔는가"를 말하시는 것 같았다.
죽음이란.
상조 직원이 할머니의 몸을 정성스레 닦고 한지로 몸을 겹겹이 싼다. 작은 외할머니는 자신도 데려가라며 목놓아 우시고, 넷째 이모는 탈진하여 쓰러 진다. 다른 이모들은 할머니에게 울며 불며 혼잣말을 하고, 엄마는 탈진된 몸으로 넋을 놓고 할머니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할머니 발에 꽃신이 신겨지자, 엄마가 꺼이 꺼이 눈물을 흘린다. 할머니가 더 이상 이승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아, 덧없고 덧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엄마의 힘없는 뒷모습이 나중의 내 모습이 될 것만 같아 감정표현 서투른 나는 웬일인지 엄마를 부둥켜안고 슬픔을 표현하며 울었다. “사람은 다 죽어.. 어서 정원이 데리고 올라가라.” 엄마가 말했다. 죽음은 내가 살아온 모든 부분을 통틀어봐도 거창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할머니를 보고 있는데도 더 이상 할머니를 느낄 수 없어서, 그것이, 슬플 뿐이었다.
할머니와 나만 아는 이야기.
할머니와 선명하던 기억이 있다. 4살이었던가. 5살이었던 내가 노란 멜빵 치마를 입고 있었다. 남동생이 막 태어나 나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엄마는 틈을 내어 나에게 하얀 블라우스에 노란 멜빵 치마를 입힌 것을 내심 뿌듯해하며 할머니에게 나를 맡기고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 나는 시골 평상에 앉아 검지 손가락으로 고추장에 손을 푹 찍어 혀끝으로 고추장을 조금 맛보고 나머지는 멜빵 치마 앞주머니에 묻히길 반복했다. 아마 내 5살 난 조카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주문서에 계속해서 낙서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일 테지만. 잘못된 행동이란 걸 느끼고 있음에도, 빨간 점 하나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멈출 수 없었다. 아마도, 남동생의 탄생에 대한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풀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엌에 있던 할머니가 나의 빨간 점들을 보고 노발대발하시며 달려 나오셨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농사로 검게 그을은 얼굴이 너무 무서웠고, 주름진 얼굴과 전라도 특유의 큰 목소리는 작은 나를 위협하는 것만 같았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거실 대청에 있는 벽에 기대어 감정을 추스르려고 노력했다. 사촌오빠의 달렘과 할머니의 분주함이 느껴졌지만, 그때 내 마음은, 모욕감과 수치감으로 점철되어 혼란스러웠다. 할머니는 미안하셨는지 울지 말라며 오이 속살만 먹기 좋게 다듬어서 나를 주셨는데, 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단호하게 할머니의 오이를 거절했다."안 먹어요." 그때, 할머니의 깜짝 놀란 듯한 얼굴이 내 기억에 선명한데, 늘 내 얼굴을 보시면 그 표정을 지으셨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걱정 많았던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시 바로 전날, 장시간 할머니 곁에 있는 엄마가 걱정되기도 하고 위독하신 할머니도 걱정이 되어 찾아갔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할머니는 힘없이 손을 드시며 나를 반겼다. 처음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아보았다. 따뜻했다. 나는 주섬주섬 예술의 전당의 모리스 드 블라맹크전에서 녹음했던 눈 내리는 전경의 영상을 보여드렸다. 왠지,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의 겨울 집과 닮아있을까 봐 보여드리고 싶었다. 하얀 막으로 덮인 할머니의 두 눈은 영상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고통으로 얼룩진 얼굴이 조금 편안해 지신 것 같아, 데이비드 호크니의 숲을 모작한 그림도 가져올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남동생은 그날 아침, 할머니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리며, 영계에 대해 긴 설명을 해드렸다고 말했다. 아이 기르기 바쁜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둘이 전날 찾아뵈었는지 신기하다고 말하는데, 정말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어떠한 이끌림도 없었다. 오히려, 찾아뵙고 나온 뒤에, 평생 고추농사만 걱정해오시며 사시다, 갑자기 몸이 불편해지면서 동네 산천에만 계속 살아온 할머니께 새로운 것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염원.
엄마가 조는 틈에 편히 누워 자라고 말씀하시듯 엄마를 깨우지 않고 떠나셨다. 예전에 재미로 사주를 보던 지인이 있었는데, 현생에서 이루지 못했던 염원이 있다면, 그 염원이 후대에게 전해져 후대가 그 바램을 이뤄준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생존하기 바빴던 시대에 태어나셨고, 가세가 기울어져도 억척스럽게 농사일을 하시며 자식 일곱을 기르셨다. 잘 먹고 잘살고 싶었던 할머니의 염원은 일곱 자녀들에게 전해졌고, 엄마와 이모들은 할머니의 염원을 이루었는지, 조문객으로부터 받은 화한들을 병원 앞 차도로까지 길을 내어 세웠다. 할머니는 소원했던 식구들을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이게 하였고, 염원도 이루었다. 할머니는 정말 육신을 잘 빌려 쓰시고 떠난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