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생물학적 생산과 사회적 죽음

쫌쫌따리 생산일지: the beginning

by 정우안


쫌쫌따리 생산일지는 생물학적 생산으로 사회적 죽음을 맞았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착같은 한 인간의 이야기다. 아, 출산 후 육아로 피폐한 삶을 일으키는 과정을 적은 글이란 뜻이다. 후자는 너무 뻔하고 구질구질한 느낌이라면 전자는 뭔가 역경을 딛고 일어난 영웅기 같지 않나. 억척스럽게 지옥에서 기어 나와보니 특별한 영웅담은 비유일 뿐이고 결국 개인 삶의 역경은 후자의 표현처럼 뻔하고 흔하고 지루하다는 걸 깨달았다. 직접 겪은 내겐 기가 막힌 스펙터클 서스펜스 3D 영화급이지만 남들에겐 커뮤니티에 지겹도록 떠도는 신세한탄과 뭐가 그렇게 다르겠나. 그러니 은유와 비유를 통한 ‘이야기’를 엮어야 한다.


쫌쫌따리 생산일지는 생물학적 생산으로 사회적 죽음을 맞았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착같은 한 인간의 이야기다.


‘이야기’라는 표현에 주목하라. 나는 사실을 기록하는 사관이 아니다. 사실을 그때그때 기록하는 사초 격인 일기장을 가지고 있지만 드라마 안나의 명대사처럼 사람은 자기만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 나는 이걸 거짓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제 그릇에 맞게 현실을 왜곡해서 보는 천성이 있고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요컨대 나의 ‘이야기’가 세간에서 말하는 ’ 팩트‘냐고 묻는다면 빙긋이 웃을 거란 뜻이다. 이야기는 각자 알아서 듣고 해석하면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생물학적 생산을 하기 전에 이미 절반쯤 사회적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었던 그해 겨울에 사랑은 화사하다.

이야기의 전개는 이렇다.

바닥에 툭 떨어진 목련꽃 대가리 거무죽죽하듯 사랑이 지고 사회적 사망선고가 내려지다.

이야기의 절정은 이렇다.

죽어 지옥을 헤매다 악착같이 기어 나온다.

이야기의 결말은 이렇다.

그건 알려줄 수 없다. 아직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을 예고편처럼 매달아 둔다.


사무 용품을 담은 상자를 트렁크에 쿵 내려두고 문을 내려 닫았다. 지긋지긋한 이 거지 같은 곳은 그립지도 않을 거다. 시동을 걸며 거지 같이 닦아 놓은 좁고 경사 심한 길을 운전해서 나왔다. 거지 같은 소굴에서 나를 더 확실하게 죽여줄 곳으로 영문도 모른 채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나섰던 그해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