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일이 싫어질 때 사랑이 화사하다

쫌쫌따리 생산일지: the beginning

by 정우안



사무 용품을 담은 상자를 트렁크에 쿵 내려두고 문을 내려 닫았다. 지긋지긋한 이 거지 같은 곳은 그립지도 않을 거다. 시동을 걸며 거지 같이 닦아 놓은 좁고 경사 심한 길을 운전해서 나왔다. 거지 같은 소굴에서 나를 더 확실하게 죽여줄 곳으로 영문도 모른 채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나섰던 그해 겨울이다.



24살부터 10년을 내리 일하니까 일이 같잖아졌다. 성장가능성이 없고 존경할만한 선배는 멸종하고 어리고 경력 적은 젊음이 착취당하는 거지 같은 곳. 무슨 일을 했냐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일하는 곳을 거지소굴이라고 묘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때마침 세상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던 2019년. 우한폐렴은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변모하며 세기말적 분위기를 자아냈고 실제로 세상이 멸망할 것 같았다


하는 일이 같잖아지고 세상이 어수선하자 사랑이 화사하게 찾아왔다.


로맨틱한가.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아니다. 물론 그때의 관점으로 사랑은 화사하다. 2019년 겨울 화사한 사랑은 총천연색으로 찾아왔다. 자연에서 화려한 색의 생물은 독을 품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적용 가능하다. 독을 품은 사랑은 마침 일이 같잖았던 내게 적절치 못한 판단을 선사했다. -라고 표현하지만 그 결정은 순전히 내가 내렸다- 사랑의 결실이자 내 삶의 족쇄가 될 결혼은 코로나를 뚫고 속전속결로 치렀다. 1년 후, 나는 휴직했다. 휴직 직전 나는 커리어 하이였으며 온갖 오퍼가 날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휴직할 예정임을 알리며 사회적 자살을 시도했다. 으이그 이 멍청아.


사랑에 관해 말해볼까. 사랑 그런 건 난 몰라요. 이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사랑에 빠졌다 빠져나온 후에도 사랑이 무엇이냐 물으면 사랑 그런 건 난 모른다고 답할 작정이다. 한때 사랑은 서로의 영혼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자 행위라고 믿었다. 우리의 사랑이 그러하다 믿었다. ‘믿었다’는 표현이 반복됨에 주목하라. 믿음과 실제는 몹시 다르다. 몹시. 나도 나를 모르는데 하물며 나 아닌 타인의 마음이 그러하리라 믿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가.


얼마나 지독한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사랑을 말할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바람이나 불륜, 폭력 그런 건 없다. 정말 별 거 아닌 일상에 사회적 죽음을 맞고 지옥에서 기어 나올 수 있다는 걸 흥미롭게 전달하는 게 내 목표다. 여러분. 생각보다 사랑의 종말은 극적인 사건 없이 조용하고 성실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그때는 그랬던 화사한 사랑으로 나는 전에 없이 활동했다. 낯선 사람을 만나고 낯선 운동을 하고 로드 트립을 떠나고 밤새 이야기해도 또 이야깃거리가 생길 수 있다는 즐거움에 비명 질렀다. 자정 넘어 텅 빈 고속도로를 매일같이 달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피곤하지 않았고 눈은 별처럼 빛났고 내가 듣는 모든 음악은 귀에 아름다웠다. 그지 같다 욕했던 일터에서 그지 같은 일을 당해도 나는 잡초처럼 되살아났다. 상사가 나를 밟고 또 밟아도 눈을 마주하며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그런 용기는 내게 없던 것이고 화사한 사랑의 힘에 기대 솟아났다.


이만하면 사랑할 만 하지. 나날이 얼굴에 빛이 나고 에너지가 넘치는 나를 보며 지인은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의 사랑은 특별하니까. 뭐 그런 웃기지도 않은 착각을 했다.


내 일이 싫어지자 사랑은 화사하게 나를 감싸며 모든 건 괜찮다고 속삭였다. 사회적 제도도 내 사랑과 손잡고 속삭였다. 결혼하면 쉴 수 있는 법적 제도가 참 많아. 원하는 명분을 가져다 쓰면 되는 거야. 그리스인처럼 마치 신이 내 행동을 조종하는 것처럼 썼지만 전적으로 내 선택이었다. 그러나 나는 회고록이나 반성문을 쓰는 게 아니고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거듭 밝힌다. 사랑과 사회와 법이 손잡고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몇 안 되는 웃긴 결정을 내렸다.


휴직한다. 그리고 아이를 가지자.


오 맙소사. 신이여 이 어리석은 젊은이를 굽어 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