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내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by 정예예


엄마가 처음으로 내 아이를 안았을 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남편 외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던 분만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꼬박 3주. 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는 긴 기다림 끝에 해나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그 3주간의 기다림은 엄마 마음속에 손녀를 향한 사랑을 얼마나 더 키웠을까?


엄마는 아이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아이들을 보면 언제나 먼저 말을 걸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을 보면 언제나 눈을 뗄 수 없어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아이를 낳으면 엄마는 당연히 애를 예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손녀니까 얼마나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하실까’ 하는 마음도 들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선은.


엄마가 내 딸, 해나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할머니라 칭하며 내가 낳은 아이에게 한없이 쏟아지는 사랑을 보낼 때.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엄마가 날 어떻게 사랑했을지.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고, 또 품에 안았을지를. 내가 아기였던 시절의 시간과 내 아이의 지금 시간이 포개어지는 느낌. 어릴 적 엄마 품에서 느꼈던 온기, 따뜻함, 심장소리 같은 것이 시공을 넘어 다시 느껴지는 듯했다. 어떤 생각나는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온몸이 기억하는 듯했다.


사실 자라면서 엄마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애당초 엄마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고, 나 역시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미처 내가 몰랐던 사랑의 지대를 발견한 것 같았다. 난 아직도 엄마가 날 얼마나 사랑했는지, 사랑해 왔는지 몰랐구나. 감각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쌓여온 사랑, 한 번도 멈추지 않았을 사랑.

이제야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엄마가 보내온 사랑을 느끼는구나.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낄 수 있는 엄마의 사랑은 실제 그 면적에 비하면 얼마나 일부일까.

아마도 아주 작은 영역만 겨우 엿보고 있을 것이다. 이제야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해나를 바라보는 엄마를 통해서 비로소 보고 느낄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난 엄마로서 해나를 얼마나 더 사랑하게 될까.

우리 엄마는 나와 해나를 또 어떻게 사랑해 주실까. 그리고 난 우리 엄마를 얼마나 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우리 세 사람의 사랑은 앞으로도 겹치고 또 겹치며 자라날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랑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질 테지.


기대한다. 매일매일 가닿게 될 이 미지의 사랑이 우리 삶을 더 따뜻하고 충만하게 채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