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말고 '기절'이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말은 괜히 나온 표현이 아니었다.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야 그 말의 절실함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아마 이 관용표현의 어원은, 어디선가 한 부모가 내뱉은 깊은 한숨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100일 직전의 일주일이 딱 그랬다. 남편과 나는 아이 앞에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이제 그만 울음을 멈춰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은, 그 직전 일주일이 너무 힘들어서 마침내 기적처럼 느껴질 만큼의 시간이어서 붙은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답답한 마음에 검색을 하다가 새로운 말을 알게 됐다.
‘100일의 기적’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100일의 기절’로 환장하는 부모들도 있다는 사실을.
100일 무렵, 아이가 신생아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밤새 울고 좀처럼 달래 지지 않는 시기를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그대로였다. 유튜브 영상 속 부모들의 얼굴은 거울 속 우리 모습과 닮아 있었다.
해나는 겨우 잠들었다 싶으면 금세 깨어났고, 울음은 점점 더 커지고 길어졌다. 이제는 신생아 때보다 체력도 좋아져 좀처럼 지치지도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울음. 없는 인내심을 계속해서 끌어올려야 했던 날들의 연속. 이 시간을 지나며 잊었다고 생각했던 신생아 시절을 다시 떠올렸다.
자주 먹고, 자주 울고, 돌아서면 기저귀를 갈아야 했던 날들. 울음을 멈추지 않는 해나를 달래기 위해 헤드셋을 번갈아 끼고, 세워서 안아보고, 흔들어보고, 마사지를 해보던 시간들.
자지 않는 아이를 잠시 남편에게 맡기고 소파에 앉아 울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땐 정말 힘들었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그런데 문득,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세 달 전과 너무나 달랐다.
아이의 똥을 손으로 씻겨주는 것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고, 기저귀를 갈다 말고 아이가 오줌을 쌀지 말지를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다. 아이의 울음에도 경우의 수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에 맞는 대처법도 생겼다. 물론, 지금처럼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날도 있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건 아이에 대한 마음이었다.
신생아 시절에는 사랑보다 책임과 놀라움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아이, 해나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보다 몸무게가 두 배가 된 것처럼, 나 역시 부모로서 자랐다는 걸 느꼈다. 100일의 시간 동안 아이만 큰 게 아니었다.
우리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100일의 기적은 아이가 밤잠을 자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을 통과하며 비로소 내가, 우리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마음의 성장 자체가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부모에게 찾아온 가장 위대한 기적일지도 모르겠다.